지나간 세월속에 축적되어진 사랑의 연가(戀歌)를 한줄 한줄 폐부로부터 토해내는 바보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교수의 얼굴은 찬찬히 바라 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독하다는 프랑스 커피를 우리는 월남 국수집에서 물먹듯이 들이기며 열정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고 있었다.
평범한 한국 여성이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 부시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절대 아니다 레인 에반스 의원과의 순애보(純愛譜) 그리고 미의회 위안부 결의안은 분리될 수 없는 동지적 ‘이도합일지행’의 발원이다.
필자는 그녀가 가슴의 만년필로 레인의 천국 도화지에 써내려간 담백하면서도 순정적이며 미 정계의 비사를 알 수 있는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를 읽고서야 알았다. 서교수가 태평양을 건너 워싱턴에서 사랑도 잊은 채 책속에 파묻혀 지내는 영혼에 하느님이 호출하셨을까. 일제 치하에서 피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의 한을 안은 채 종군 위안부로 생을 다한 원혼들이 불러서였을까.
아주 오래전 다섯살백이의 당돌한 여자아이는 "헬로 기브 미 츄잉 껌" 하며 배운 영어를 사용했을때 그 말을 알아들은 미군이 손에 쥐어준 츄잉 껌에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여 이 세상 전부를 얻은 것 같은 기쁨을 가졌다.
영어에 겁먹지 않고 타문화와 소통하는 방법을 영등포 샛강을 바라보며 익혀갔다. 왕눈이 천좍쟁이, 예수쟁이 학생은 미션스쿨인 정신여중에 입학하고 기독교에 입교했다. 그녀의 기도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백마탄 왕자님 같은 남자친구 사귀게 해달라는 기복(祈福)의 기도가 아니라 " 대한민국과 민족을 위하여 이 몸과 마음을 쓰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 속에 지평의 문이 크게 열리고 있었다.
정신여고 시절부터 꿈꾸었고 성취위해 노력하던 연세대 영문과 학생은 "구름사이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끝없이 날고 싶다는 욕망으로 피어오르던 꿈"을 이뤘다. 그 시절 선망의 대상이던 스튜어디스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외교관의 포부를 펄쳐보기도 전에 첫 비행 업무에서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삶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하며 새 세계에 몰두해 나갔다.
그러나 이국의 밤은 안정적인 스튜디어스 생활에도 가족과 고국이 그리움속에 하얏트 호텔 창립멤버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 칠 수 없었다. 외국 마케팅부를 맡은 관계로 외교,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등 유명인사와 친분을 맺으면서 왕눈이 여성은 이제 민간외교 대사 별칭인 ‘엠버서더’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정열의 용암(鎔巖)이 솟구치는 만큼 자신의 내면에 고독과 허전함이 몰려오고 부와 권력과 명예가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가 하는 깨달음의 파도가 동심의 샛강에 몰아치고 있었다.."
화려한 이력 속에서도 그녀의 터지는 용암수를 가슴에 품고 포용해줄 남자가 없어서 활짝 피기 시작한 꽃의 향기는 외로운 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고독과 사색의 바다에 폭풍이 몰아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직장을 떠나고 만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놓고 더 큰 도전으로 인도하심을 믿었어요.” 그녀의 얼굴은 거친 바다를 물리진 안식과 평화 속에 말을 이어갔다.
1987년 미 워싱턴에서 로비스트로 일하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행을 결심했지만 친구와 아무일도 아닌 것 갖고 우정에 금이 가버린 상태가 되었다. “네 땅의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내가 너를 창대하게 하고 복을 주리라”라는 기도의 응답을 듣고 아무도 없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워싱턴에 새 길을 개척하리라 굳센 맹세를 하고 첫발을 내디뎠다.
내면에 잠재(潛在)된 의식이 워싱턴에 온 후 수면위로 부상했다. "신학공부에 대한 열망이었어요. 참 인생살이 재미있죠." 그녀의 입가에 붉은 동백꽃이 피고 그녀의 영혼에 화려한 돔박새 날아 들어 노래를 부른다.
샛강에서 훌렁덩 옷 벗고 동심을 키우던 여자아이, 정신여중 천좍쟁이 예수쟁이, 정신여고 왕눈이 범생소녀, 연대 영문과 이팔청춘소녀, 그리고 스튜어디스와 호텔 매니저.. 화려한 삶 모두 강물에 흘려 보내고 신학 공부의 결단은 그녀의 인생에 대전환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늦깎이로 워싱턴 바이블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여름이면 매년 서울을 방문하고 나약해질 때마다 ‘나의 기도’를 수천번 읊조리며 나의 길을 가기 위해서 매일 매일 낮아지고 작아지는 훈련을 해야 했어요.”
순정 소녀의 마음에 영성(靈性)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1%의 천재성과 99%의 노력을 믿고 실행하면서 인류가 공유하는 도덕성과 인간의 고귀함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높은 언덕위로 항해하는 나를 보았어요.”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를 읽으며 그녀가 “기브 미 쥬잉 껌”하던 시절부터 앰버서더, 전도양양한 직장을 그만두고 태평양 건너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 예비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고행의 길 또는 선지자적인 길의 운명을 예견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2001년 6월 워신턴정신대위원회(정대위) 2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에반스 의원과 함께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청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 전역으로 공론화 시키는 역할을 자임했다. 대학과 각종 단체들을 누비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위안부 소송을 전개하며 탄원서 제출 등 최선을 다했으나 안타깝게도 미 법원에서 기각(棄却)되었다.
“일본의 로비력은 대단했어요. 케네디 판사는 일본의 주권 제외를 인정하였으나 일본이 저지른 행위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야만적인 것이며 전쟁범죄 또는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의 성격’이라고 규정하는 성과를 얻었고 진실을 많은 미국인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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