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바람이 부는 9.11 메모리얼 뮤지엄.
2백여 그루의 상수리나무에서 바람이 쏴아 불 때마다 후드득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날 한시에 고귀한 생명을 빼앗긴 혼을 위로하는 그라운드제로의 추모풀은 작은 폭포수의 포효(咆哮)가 되어 울부짖고 있다.
교황의 추모 방문이 있던 25일 이곳엔 9.11 희생자 유가족, 구조대 등 관련된 1000여명과 특별히 초대된 청중 1000여명이 교황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이슬람과 유대교 힌두교 등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100여명의 종교인들도 자리해 9.11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
취재가 허가된 기자들은 전 세계에서 약 200명으로 제한됐다.
3주전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친 기자들은 이날 새벽 메리엇 호텔에 집결, 다시한번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취재비표를 받고 주최측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오전 8시 도착했다. 교황 방문예정 시간보다 무려 3시간 앞선 시각이었다.
엄청난 신원조회를 거쳐 제한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행사장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경호인력은 사중 오중으로 겹겹이 쳤을만큼 삼엄(森嚴)한 경호가 이뤄졌다.
이곳 뮤지엄을 방문하여 느끼는 감상은 상선약수(上善若水)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고 했듯이 신자들은 상선약수 같은 마음으로 행한다면 악을 행한 무리들의 악행은 천하가 다 알 것이다.
그라운드제로를 설계한 분의 심오한 뜻을 다 읽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떨어진 생명의 물이 사면의 상단에서 떨어져 또 다시 우물 사각 안으로 떨어지고 그 물은 다시 무지개로 환생하여 영생의 삶을 살면서 다시 내린다. 태양이 뜬 날은 항상 해의 반대 방향에서 무지개를 볼 수가 있다.
11시 10 분경 교황이 주교들을 대동한 가운데 필자가 속한 기자단 좌측으로 출현하자 교황을 마중 나온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파파 프랜시스'를 연호했다. 그러나 교황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여느때처럼 손을 흔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였기때문이리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계속 걸으면서 이때 기자단의 정면의 위치하자 우리 박스에 속한 40여명의 카메라와 스마트 폰이 일제히 교황을 향하여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떡갈나무와 24시간 365일 켜지는 가로등과 철벽 경호를 하는 경호원들 틈사이로 교황의 부드러운 미소를 띤 모습을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보다 못한 어느 기자가 나지막히 “경호원 좀 비켜주세요” 소리를 쳐도 못 알아듣고 교황의 모습을 막고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 서있던 경호원이 그 말을 알아 차리고 조치를 취해줬지만 겹겹이 둘러싸인. 교황의 이심전심(以心傳心) 가섭존자의 미소같은 그 축복의 미소는 쉽게 찍혀지지 않았다.
교황은 필자의 정면을 지나서 그라운드 제로 좌측 끝 부분에 서서 천인공노할 테러로 불귀의 객이된 희생자들을 위하여 약 3분간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드리고 난 후 교황은 구조하다 부상당한 휠체어 탄 뉴욕경찰(NYPD)과 제일 먼저 악수를 하고 희생자 유가족 대표, 구조대 대표, 환영대표 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고 가벼운 포옹도 했다.
교황은 이날 스페인어로 "불의앞에 힘없고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있다. 보편적인 선을 존중하는 해결책을 찾지 못함으로써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을 애도하고 있다. (이 추모풀의) 끝없이 흘러내리는 물은 어제의 눈물과 오늘 우리의 모든 눈물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은 폭력과 증오 복수만을 아는 사고방식을 슬퍼하고 광신주의로 이끄는 믿음의 획일성과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짧지만 분명했다. "오늘 우리는 획일성을 강요하는 어떠한 시도에 ‘안된다’고 말해야 하고 다양성의 용인과 화해에 대해서 '맞다'고 답해야 한다.".
그라운드 제로에 나와 있던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 부부,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 부부 등의 인사를 받은 교황은 뮤지움 내 준비된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 기자들은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희생자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위로와 사랑과 치유의 말씀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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