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5일 이란핵협상 관련 연설을 한 아메리칸대학교 행사장 바로 옆은 이승만 박사가 1943년 4월 왕벚나무를 식재(植栽) 한 곳이다.
일본 도쿄시가 1912년 워싱턴DC에 선물한 3천그루의 벚나무 묘목이 자라서 1930년대이후 명물 벚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것을 보는 워싱턴의 한국독립운동가들은 피가 끓어올랐다. 이 벚나무의 원산지는 바로 제주왕벚나무였기 때문이다.
나라를 빼앗긴것도 원통한데 아름다운 벚나무마저 일본 벚나무로 불리는 것을 묵과(默過) 할 수 없었던 이승만 박사 등 독립운동가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벚나무가 아니라 한국벚나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던 1943년 4월 워싱턴 DC 중심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제주 왕벚나무 네그루를 이 대학 총장과 한인학생 등과 함께 식수하는 역사적인 행사를 갖게 된 것이다. 그 앞에는 '코리언 체리 츄리' 표지석이 있다.
이곳은 지난 2011년 한국 정원이 조성되면서 제주도 왕벚나무와 소나무 단풍나무 등 한국 나무 40그루가 기증(寄贈)됐다. 제주 돌하르방 두쌍도 이 때 함께 기증되어 한국 정원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공교롭게 한국 정원이 오바마가 연설하는 행사장 바로 옆인 탓에 대통령 경호실이 한국정원을 전면 통제했고 노란색 차단선이 돌하르방을 에워쌌다.
아메리칸 대학은 평화의 상징 같다. 그런 곳을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 70주년을 맞아 원폭 사진전을 6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달간 열고 있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했을 때 분노한 미국인들은 워싱턴의 벚꽃을 모두 베어버릴 생각을 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벚나무를 보호한 가장 큰 공헌자는 이승만 박사였다. 이 박사는 제퍼슨 기념관 조류 연못 주위에 심어진 벚나무들은 대다수가 제주도 왕벚나무이므로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했다고 해서 잘라 버려서는 안되다고 강력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인연이 깊은 아메리칸 대학교 아트센터에서의 원폭사진전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우연이었을까! 교정 입구에 심어진 몇그루의 벚나무 이름표에 ‘요시노 체리’라 적혀있었고 몇 발자국 더 내려가니 일본 나무라 되어 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트센터의 계단을 밟으며 전시 타이틀을 살펴보았다.
“히로시마 패널스 전시회 : 마루키 갤러리 일본에서”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원폭의 참상(慘狀)을 보여주는 당시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이마에 상처를 입은 젊은 여성이 한쪽 가슴을 내놓고 역시 상처투성이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사진은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짓이겨진 시신(屍身)들. 참혹함 그 자체였다. 미술 작품들도 붙어 있었고 어린이들의 그림들도 한켠에 있다.
이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원폭의 가공함에 소름이 돋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전시를 통하여 반인륜적 식민지 통치와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 일절 없고 30여만명이 원폭으로 사망한 피해를 홍보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알 수가 있다.
일제 치하 일본국민은 잘못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 국민들을 선동(煽動)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제 권력층에 대한 단죄(斷罪) 없이 일본 역사가 계승되고 있음은 주변국가들에게 일본 미래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대한민국 외교관들 정말 그대들은 혼(魂)이 있는가.
지난해 이 맘때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 문화원을 차례로 방문했을 때 느낀 암울함은 올해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무궁화 나무 한그루 조차 없이 호박꽃만 무심하게 피어나는 주미한국총영사관, 족보없는 꽃들로 가득한 주미한국워싱턴 대사관, 주미한국문화원. 그러나 이름 모를 미국 가정집과 건물마다 무궁화(無窮花)는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있다.
주미일본대사관은 어떤가. 건물 앞에는 수령 50년이 넘는 10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해마다 봄이면 어여쁜 벚꽃들이 피어나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한국 대사관 건물 정원에서는 나라꽃을 찾을 길이 없다.
한국 외교관들 일제 차량 적지 않게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일본 외교관들은 한국차량을 타고 다니는 것을 못 봤다. 10여년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한국차가 가격 대비 성능이 훨씬 좋지 않은가. 모를 일이다. 아마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왜 일본대사관 앞엔 벚나무들이 보란 듯 서있고 한국대사관앞에는 무궁화가 한 그루도 없는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사족>
오바마 대통령이 아메리칸 대학교를 연설 장소로 잡은 것은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로 이곳에서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핵실험의 중단을 제안(提案)하는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최고조의 냉전속에서 핵무기 감축(感祝)을 비롯한 외교적 대화를 촉구했다. 그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선택했듯이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핵 합의라는 외교적 해결책을 강조했다.
그는 “평화는 인간의 삶속에 갑짜기 온 혁명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안에서 점진적 발전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케네디 연설을 인용하고 현실적이고 획득할 수 있는 평화를 강조했다.
오바마는 공화당 등 반대파들이 “환상(幻想)을 팔고 있다”면서 “이번 합의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가오는 이란 핵합의와 제제 해제를 위한 의회의 표결은 중동에서의 또 다른 전쟁이냐 평화이냐를 선택하는 표결이라며 승인을 강하게 촉구했다.
또한 “평화는 단순히 갈등의 부재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평화적 수단으로 갈등(葛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공화당 소속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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