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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서강대학 영어영문학과 졸 1988년 도미 뉴욕정착. 뉴욕시립대 석사, 인류학박사 수료. 1998년부터 라과디아 대학에서 인류학, 사회학, 도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꿈을 쫒는 사람의 집합처이다. 전세계 인종과 문화가 혼재된 뉴욕에서 신명난 인류학 연구의 기쁨을 독자들과 나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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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나라’ 그리스이민자 美 Diner 석권

글쓴이 : 서영민 날짜 : 2012-09-28 (금) 14:00:24

그리스는 상상 만으로도 괜히 신비함을 불러일으키는 나라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과 괴물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 서구 문명의 발상지로서 철학과 예술의 시조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서 박해(迫害)를 받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로 이름들이 익숙할 것이다.

  

www.en.wikipedia.org

이래저래 전혀 공유 문화가 없는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도 그리스라고 하면 마치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리스 문화가 세계인류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 그리스는 유럽에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낙후 지역이다. 고대 문명 발생의 원동력이 되었던 독립된 섬이 고립을 초래하였고 중세를 겪으며 잊혀진 지역이 되고 만다.

그리스의 후진과 가난은 유럽 연합에서 그리스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때도 거론된 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도 건설 장비가 없어 경기장을 완공하느니 못하느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있었다.


 

www.en.wikipedia.org 

고대 서양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가 이 지경이 된데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오늘은 이 정도 배경 설명으로 그치고 미국으로 이민 온 그리스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겠다.


언젠가 산 제나로 축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영화 ‘대부’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리스 이민의 삶에서는 2002년 히트작 ‘My Big Fat Greek Wedding’이 제격이다. 영화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극단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아버지가 30대 중반의 딸에게 이렇게 퍼붓는다. “여자가 태어나서 할 일이 세가지 있다. 그리스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그리스 애를 낳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 30대 중반까지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고 요리도 못하는 너는 인생의 실패작이야.”


미국에 이민 온 다양한 집단 중 우리 눈에 백인으로 비치는 이들이 이런 전근대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에 독자 여러분께서는 “설마” 하셨으리라. 그렇지만 사실이다. 필자의 동료 인류학자 중 뉴욕에서 그리스 인들을 연구한 교수가 있다. 그에 따르면 그들의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여전히 가부장 제도와 여성 비하, 가정 폭력, 폐쇄적 생활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스 이민자들이 몰려사는 곳은 퀸스 보로 다리를 건너자 마자 위치한 아스토리아와 브루클린 남단 애브뉴 U 지역 그리고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윌리암스버그 다리 건너 그린포인트 지역이다.

 

▲ 자이로 www.en.wikipedia.org

지금도 아스토리아 지역에 가면 거의 한 블록마다 그리스 음식점이 존재한다. 그리스 음식은 이태리 음식처럼 맛깔스럽고 잘 조화된 요리가 없다. 자이로 수브라키 등으로 알려진 구운 고기가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할까 잘못 주문했다가는 소금에 찌들은 통 생선구이나 냄새도 제거하지 않은 통 양구이에 비위를 상하기 일쑤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그릭(Greek) 샐러드도 양배추를 엉성하게 썰어 넣고 짜게 절인 올리브와 양 젖으로 만든 페타 치즈를 살살 뿌려 주는 등 다른 유럽 요리를 생각하고 그리스 음식점을 찾았다가는 실망이 앞설 수 있다.

 

▲ Greek Salad www.en.wikipedia.org

그런데 앞서 그리스인들을 연구했다는 동료 교수의 해석은 다르다. 음식에 기교를 부린 다른 유럽 음식과는 달리 요리 자료 자체의 순수 담백한 맛을 강조하므로 음식의 질이 좋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 음식은 소위 획득형질(Acquired taste)로 처음에는 거부감이 올지 모르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없이는 못산다고 장담한다.


미국 내에서 자신을 그리스 인으로 내세우는 사람은 소수이다. 일단 세대가 지나면 워낙 이질적인 1세대와 미국화 된 다음 세대간의 단절이 어느 백인 민족보다 두드러지기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그리스 피가 섞였다고 답하는 이들의 숫자는 약 3백만명 정도로 미국 인구의 약 1% 정도가 된다. 이렇게 소수이면서도 우리 눈에 띄는 이유는 한국 이민자들처럼 이들도 대도시에 주로 몰려살기 때문이다. 물론 뉴욕에 큰 커뮤니티가 존재하지만 정작 인구 분포로는 볼티모어와 시카고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몰려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끝으로 한가지 특이한 정보를 소개하면 그리스인들의 생업으로 아침식사로 인기가 많은 대중음식점 다이너(Diner) 레스토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 23가에서 96가까지 거의 매 블록마다 다이너가 있었는데 그 중 90%가 그리스 이민 1세대가 장악하고 있었다니 ‘다이너하면 그리스, 그리스하면 다이너’가 연상됐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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