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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서강대학 영어영문학과 졸 1988년 도미 뉴욕정착. 뉴욕시립대 석사, 인류학박사 수료. 1998년부터 라과디아 대학에서 인류학, 사회학, 도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꿈을 쫒는 사람의 집합처이다. 전세계 인종과 문화가 혼재된 뉴욕에서 신명난 인류학 연구의 기쁨을 독자들과 나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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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명가(5)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가문

글쓴이 : 서영민 날짜 : 2011-11-14 (월) 13:58:53


지난 칼럼에서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모간(Morgan) 집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J. P. Morgan과 동시대 사람으로 Morganization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유명한 사람중 하나가 Thomas Edison이다.

 

www.en.wikipedia.org

자수성가(自手成家)한 토마스 에디슨은 자식 농사에도 성공을 하여 그의 4째 아들 Charles Edison은 New Deal 정책의 루즈벨트 대통령 내각을 거쳐 1940년 42대 뉴저지 주 주지사가 되었다.

막내 아들 띠어도어 밀러 에디슨은 아버지를 유업을 이어 받아 생전 500여 건의 특허를 신청한 발명가로 활동을 했고 에디슨의 딸들과 이들의 자손들은 아버지 유산을 바탕으로 자선 사업을 하여 뉴욕 뉴저지인근에서 아직도 Edison Foundation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homas Edison의 삶의 역정은 지난 다룬 J P Morgan과 매우 대조적이다. 우선 제대로 교육을 못 받고 개인의 총명함과 의지로 일가를 이룬 면에서는 앞서 다룬 뉴욕의 3대 부자 집안과 비슷하나 에디슨만큼은 재산을 모으는데 실패했다.

즉 이들 모두는 은행가 J. P. Morgan과 깊은 인연을 맺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데 유독 토마스 에디슨은 본인의 판단 미숙과 욕심 때문에 모간에게 모두를 잃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에디슨이 모건과 밴더빌트, 락크펠러, 카네기보다 더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현대 문명에 끼친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간단히 에디슨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뉴욕 시와 현대 미국 역사를 헤아려보자.

 

▲ 에디슨의 오하이오 생가 www.en.wikipedia.org

Thomas Edison의 출생지는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 밀란이었다. 극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라고는 3개월 다닌 것이 고작이고 홍역때문에 거의 귀를 먹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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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에 이르러 뉴저지 중부 Menlo Park (현 Edison 시)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발명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에디슨을 부를때 Wizard of Menlo Park (멘로 팍의 마술사)로 하는 이유는 바로 이때부터 죽을때까지 전구를 비롯한 무려 1092개의 특허를 딴 발명품 덕이었다.


 

▲ 최초의 전구 www.en.wikipedia.org

그러나 그의 삶이 발명품처럼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에디슨에 대한 미국 역사학계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양분되는데 그를 발명왕, 현대 미국 기술의 기수(旗手)로 보는 좋은 시각이 있는가하면 푼돈을 챙기기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얄팍한 비즈니스 사기꾼이자 결국 재산을 모두 날린 바보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한 예로 전화 통신과 전구 사업으로 유명해진 그가 미국의 영화 산업의 선두주자가 된후 영감과 극본을 얻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가서 1902년 당시 가장 유명했던 뮤지컬 Trip to the Moon의 대본을 받았다. 자신의 유명세와 약간의 뇌물(賂物)로 대본을 빼낸 에디슨은 뉴욕으로 건너와 버젓히 자신의 이름으로 이 대본을 출판을 했다가 이후 큰 스캔들에 휘말렸다고 한다.

 

www.en.wikipedia.org 

현재 토마스 에디슨이 설립한 것으로 세간에 알려진 현존 세계 최고의 기업 General Electric사는 당시 이런저런 투자 실패와 스캔들로 재정 위기에 빠진 Edison Electric Light Company를 J P Morgan과 핸리 밴더빌트가 당시 뉴욕주 트로이 (알바니 인근도시)의 중소기업체 General Electric를 매개로 주식 지분을 사들여 Edison General Electric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만해도 에디슨은 대주주는 아니지만 주식의 큰 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후 계속되는 재정 압박, 특히 영화 산업에 투자 실패로 지분을 야금야금 모간에게 팔아 말년에는 거의 지분이 없어지고 말았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를 간다고 그의 자식들은 다른 집안처럼 엄청난 부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꾸준히 뉴욕 뉴저지주에서 발명가로, 정치가로 자선사업가로 아버지의 명망(名望)을 이어가는 것이 그나마 에디슨 가문을 명가(名家)로 남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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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필자가 살고 있는 에디슨 시는 1960년대에 이르러 멘로팍이라는 도시명을 공식적으로 에디슨으로 개칭하고 연구소가 있었다고 알려진 곳에 에디슨 전구 탑을 세웠다. 그런데 10년전 이곳으로 이사한 후에 이 탑을 찾았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조형물에 잡초만 무성하고 실제 건물은 철조망이 채워져 방치된 사태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2년 전 뉴저지 정부에서 이 조형물을 주립 공원으로 지정하고 현재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또한 뉴저지 중부에 West Orange라는 도시가 있는데 에디슨이 말년을 지낸 인연으로 그 집이 에디슨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대 생활에서 매일 쓰는 전구와 영화, 전력 공급체계 등 아직도 에디슨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마스 에디슨의 발명과 일가를 이룬 가문의 흔적 또한 뉴욕 뉴저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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