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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서강대학 영어영문학과 졸 1988년 도미 뉴욕정착. 뉴욕시립대 석사, 인류학박사 수료. 1998년부터 라과디아 대학에서 인류학, 사회학, 도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꿈을 쫒는 사람의 집합처이다. 전세계 인종과 문화가 혼재된 뉴욕에서 신명난 인류학 연구의 기쁨을 독자들과 나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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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유명한 가문(3) 카네기 가문

글쓴이 : 서영민 날짜 : 2011-09-27 (화) 02:36:15

카네기 홀(Carnegie Hall)로 유명한 카네기 가문과 뉴욕시의 관계는 애증(愛憎)의 역사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당시 세계 최고의 (현재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컨서트 홀에 얽힌 사연은 무수하다. 신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음향 효과에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의 선망(羨望)의 대상이었다.

한 젊은이가 카네기 홀의 위치를 물었더니 길을 지나가던 노인이 (전설적인 지휘자 Arthur Rubinstein이었다는 설이 있다) 답하기를 “연습, 또 연습, 그리고 연습”이라는 명언을 남겼다는 일화가 있듯 1891년 지어진 카네기 홀은 60년대 링컨센터가 지어지기전까지 70여 년간 뉴욕을 대표하는 오페라 하우스였다.

그렇다면 뉴욕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문과 카네기 가문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첫째가 뉴요커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꼽을 수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극빈층 가정에서 태어나 13살에 오하이오 피츠버그로 이민을 온 카네기는 실제 뉴욕의 상류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14세가 되기까지 한번도 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었는데 피츠버그로 이민 온 다음 은퇴 장교 제임스 앤더슨이 사재(私財)를 털어 만든 도서관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무료로 가르쳐주는 영어 읽기 수업을 통해 글을 익혔다고한다.

독학으로 글을 읽고 쓰는데만 만족하지 않고 고전을 섭렵(涉獵)하고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등 지식욕이 특히 강했던 앤드류 카네기는 정식으로 대학 교육을 받고 잘사는 집에서 태어난 이들과 자신을 늘 비교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가를 과시하는 습성이 있었는데 바로 이점이 주류 사회에서 항상 소외를 당하는 포인트였다고 한다.

고향이자 자신의 부의 원천인 피츠버그를 뒤로 하고 뉴욕시에 자리를 잡은 그는 뉴욕 상류 사회 진출을 끊임없이 시도를 했는데 카네기 홀도 자신의 부와 더불어 자신의 문화적 소양(素養)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1901년 재산의 원천이던 철강회사를 전설적인 은행가 J P Morgan에게 팔고 그 돈으로 자신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고성(古城)을 사서 일년의 반은 영국에 거주하고 나머지 반은 뉴욕에 거주하면서 돈을 쓰는 것으로 은퇴 시절을 보낼 정도였다.

사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모두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비즈니스에 연루된 수 많은 의문이 앤드류 카네기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지금도 역사학계에서 가장 크게 비난하고 있는 세 가지 사건의 예를 들어보자.

당시 가장 큰 경쟁사가 피츠버그 인근 Johnstown 저지대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앤드류 카네기와 그의 평생 오른팔 Henry Clay Frick 등 몇 명이 분지 상류에 낚시클럽이라는 명목하에 댐을 건설했는데 부실 공사로 몇 년후 댐이 무너져 이 공장뿐 아니라 인근 주민 2200명이 희생당한 대참사(大慘死)가 벌어졌다. 역사학계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 댐이 무너지기 며칠 전 카네기가 영국으로 사라진 점을 꼽는다. 마치 준비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자신이 운영하던 철강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출구를 외부에서 폐쇄하고 뉴욕과 시카고에서 민간 용병대였던 Pinkerton 부대를 동원해서 7명의 노동자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도 현장에는 헨리 프릭만 있었고 카네기는 뉴욕에 피신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이 수습(收拾)되자 카네기는 살해된 노동자 가족들을 불러 피해 보상을 해주는 등 선심공작을 했지만 이후 일부 역사가들의 눈에는 나쁜짓 지시는 자신이 하고 현장에는 오른팔 프릭을 보내 본인은 인기에 영합하는 행위를 하는 전형적인 위선자로 카네기를 규정하고 있다. 이 행태는 영국과 뉴욕에서도 계속되는데 몇 번 카네기의 이중적 인격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카네기의 사회사업에 대한 열정과 공헌만은 부인할 수 없다. 살아 생전 자신처럼 불행했지만 총명한 어린이들을 위해 도서관 지어주기 사업을 벌이는데 지금도 미국,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카네기 이름을 지닌 공립 도서관이 무려 7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지금도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카네기 멜론 대학을 설립했고 뉴욕에 거주하면서 카네기 홀을 지었으며 평화 연구소, 문맹퇴치 연구소 등에 심혈(心血)을 기울였다. 

 

카네기는 50대 중반 늦게 결혼해서 딸 하나만 자식으로 남겼다. 그러나 딸의 삶은 순탄치 못해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부자였던 아버지의 재산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3회에 걸쳐 뉴욕에서 일가를 이룬 세 집안 이야기를 통해 뉴욕시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뉴욕에서 축재를 했으나 자손들이 재산 관리를 못해 현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벤더빌트 가문, 뉴욕 주 출신이지만 클리블랜드에서 축재를 해서 뉴욕시로 입성한 후 현재까지 5대손까지도 잘 살고 일가를 이룬 락크펠러 집안, 인류 역사상 2번째로 축재를 많이 했지만 재산 관리가 불과 2대도 가지 않은 카네기 집안.

이들 가문의 역사를 살펴보며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허드슨 강처럼 뉴욕시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 새삼 탄성을 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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