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중세시대(中世時代) 축제를 즐긴다.
뉴욕에서 열리는 축제는 그 종류와 숫자가 정말 많다시피 독특한 축제도 적지 않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듯한 중세 축제도 그 중 하나이다.
▲말을 탄 기사 <이하사진 www.whidc.org/home.html>
맨해튼의 최북단 포트 타이론(Fort Tryon)에서 열리는 중세시대 축제(Medieval Festival)가 오는 10월 3일 일요일에 열린다.
올해로 26회 째인 이 축제는 한인 커뮤니티에는 거의 알져져 있지 않지만 규모로 보나 질로 보나 미국 내 백인 문화를 이해하는데 최고의 볼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 동호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1980년 중반 태동 된 이 축제는 이제 유럽에서도 손을 꼽는 세계적인 유럽 문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참가 인원과 관객 수도 늘었고 올해는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 등에서 전통 음악인들이 대거 참석한다.
필자는 2008년 이 축제를 구경했는데 뉴욕 출신의 음악가 쿠 드 리용(Coeur de Lion)은 로마 제국에 시달린 고대 셀틱 민족의 애환(哀歡)을 그린 서사시를 애달픈 곡조로 재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심금(心琴)을 울린 탓일까. 감상하던 영국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계 노인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또 나폴리에서 이 축제를 위해 미국에 왔다는 이 쥬라리 디 피아짜의 경쾌한 음악은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킹 애드리안의 왕실 퍼레이드의 시작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상 결투(馬上決鬪)는 애벌론 기사단(騎士團)이 시범을 보이고 전통 유럽 왕실에 없어서는 안되는 광대 패들과 음악사들이 곳곳에서 공연을 하는 등 눈요기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2년 전에는 그만 비가 오는 바람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풍의 리버 댄스가 지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됐는데 전혀 열기가 식지 않았다. 이 축제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씩 일년 동안 연습을 했다고 하니 비가 온들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뉴욕 소방관과 경찰이 주 맴버인 백 파이프 연주단이 축제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도 이채롭다. 특히 어린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전시를 비롯, 곳곳에서 무료로 갖은 형태의 풍선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냥 매의 우아한 자태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펼친 날개 길이가 1m가 넘는 이 대형 새들은 조련가의 애정 어린 보살핌과 단련(鍛鍊)으로 어린이들이 날개를 쓰다듬어도 화등잔만한 눈으로 바라볼 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부리가 어른 손바닥 만하고 날카로운 발톱은 어른 허벅지 만하지만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야수(野獸)의 순종(順從)을 엿볼 수 있었다.
오후 4시경 이 매들을 허드슨 강으로 풀어놓는 시간이 되서야 얼마나 거대한 조류인지 알 수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영주들이 사냥에 필수적인 컴패니언이었고 뉴욕에서도 야생 매 조련 클럽이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축제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역시 먹거리다. 중세 축제에도 특이한 먹거리가 있는데 바로 어른 팔뚝만한 구운 칠면조 다리였다. 각종 유럽식 절임 고기 샌드위치도 이 축제 아니면 접할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이다.
여기에 ‘마이크로 브루어리’라고 불리는 뉴욕 맥주 제조공장에서 직접 만든 각종 맥주 시음회(試飮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또 2007년부터 뉴욕 허드슨 밸리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 시음회도 축제 분위기에 고조된 필자의 여흥(餘興)을 북돋는데 한 몫을 했다.
미국 속에서 고대 유럽의 역사를 만끽하는 흔치 않은 기회인만큼 여건이 된다면 한번쯤 꼭 가볼만한 축제가 아닌가 싶다. 공교롭게 올해는 중세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인 10월 2일 토요일 맨해튼 한복판에서 코리안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이틀 연속 개성만점의 축제를 직접 경험해보면 어떨까.
이 중세 유럽 축제를 경험하면서 느낀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이 축제의 규모나 예산 등을 볼 때 역시 미국은 아직도 백인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는 점이었다. 단순히 백인의 축제를 바라보는 것 이외에도 장소가 주는 거대한 힘에서 느낀 점이다.
포트 타이론 파크의 중심에는 클로이스터 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박물관은 맨하탄 센트럴 파크 동쪽에 자리를 잡은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자매기관(姉妹機關)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뉴욕 부동산 재벌 쟌 락크펠러가 1차 세계 대전 당시 폐허가 된 유럽을 순회하면서 새 교회를 지어주는 대신 폐허가 된 오래된 교회들 잔해를 미국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토목사 미술인 고고학자들을 고용해서 중세 카톨릭 수도원을 모방한 건물을 건축하되 유럽에서 가지고온 폐허 잔해물(殘骸物)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1938년에 문을 연 이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겉만 흝어보지 말고 천장, 문, 기둥 하나까지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방 하나에 있는 구조물만 해도 무려 800년 차이가 나는 시간과 이탈리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건축 양식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신기한 곳이다.
루브르 박물관장 허망 바진(Germain Bazin) 조차 “유럽문화가 미국에 접목해서 피운 꽃”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일화(逸話)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박물관의 참된 의미는 미국이 유럽에 정면으로 ‘이제 세계의 힘의 축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닐까. 미국 사업가의 주머니에 수천 년 된 문화유산(文化遺産)을 판 유럽 열강에 대한 조롱(嘲弄)과 경멸(輕蔑)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