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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sun’s Hudson Diary’
In 2003, when I was in second grade, I came to New York from South Korea. Both my Korean friends and American friends are very important to me.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는 겨울 정든 친구들과 작별하고 뉴욕으로 이사했어요. 알파벳도 몰랐지만 친구 사귀는데는 문제가 없더군요.ㅋㅋ..한국친구 미국친구..다 제게는 소중해요. 알콩달콩 미국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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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의 추억

글쓴이 : 써니 날짜 : 2013-01-01 (화) 16:11:07

 

힐러리 클린턴이 병원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무장관으로서 오바마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며 온 세계를 구석구석 누빈 그녀인지라 그동안 병이 안난게 이상할 정도라는 생각도 들어요.

 

힐러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중의 하나이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긴 여성이기도 합니다.

 


 

2006년 11월 아빠 엄마와 함께 단 하루의 특별한 여행을 떠나게 됐어요. 뉴욕에서 한국신문의 기자로 일하는 아빠가 ‘New America Media(NAM) 가 주최하는 2006 Best Commentary Award (올해의 논평상)을 수상해 시상식이 열리는 워싱턴 D.C. 로 가는 길이었지요.

 


 

그때 나는 만으로 11살, 6학년이 막 되었답니다.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온지 3년이 됐지만 영어는 여전히 넘기 힘든 벽이었어요. 사실 그보다 더 높은 장애물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그때는 그저 하루 학교를 빠지고 난생 처음 워싱턴 D.C.로 가는게 신이 났었답니다.

 

미국의 2200개 소수민족 미디어들을 회원사로 거느리는 뉴 아메리카 미디어 통신이 매년 여러 부문의 최고 article 과 editorial writing 을 뽑아서 시상하는 행사였는데요. 워싱턴포스트가 후원을 하는 아주 큰 행사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인생의 진로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안았어요.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었습니다. 당시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Senator Clinton 이 시상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었어요.

 

TV로만 보던 그녀가 바로 몇 피트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전 사람의 눈이 그렇게 반짝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답니다. 그녀는 열한살짜리 여자애가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지 짐작도 못할거에요.

 


 

축하연설을 통해 소수민족 언론이 미국의 다양성과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수상자들의 성취를 칭찬했던게 기억납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의 role model 이 되었지요.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여자아이는 미국이라는 큰 대륙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정치인이 된 그녀가 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연설을 마친 클린턴이 앞에 있는 수상자들과 인사를 하고 지나갈 때 전 아빠 옆에서 악수를 하는 두 번째 행운을 잡았습니다. 클린턴 의원은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God bless you” 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전 용기를 내서 사인을 부탁했고 그녀는 활짝 웃으며 응해주었지요.

 


 

그날의 경험은 저를 달라지게 했답니다. 수줍음 많던 조그만 여자아이는 점점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지요. 영어는 모국어처럼 익숙해졌고 한국과 미국의 훌륭한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Korean American 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생회 활동을 하고 Varsity Golf Team 의 유일한 여자선수로 하게 된 것도 그런 자신감덕분이었어요. Korean American Community 와 Main Stream의 bridge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제가 아시안커뮤니티와 미국 사법기관의 collaboration 에 힘쓰는 US Asian American Law Enforcement Foundation 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미국에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슬로건아래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오직 공부만 요구받는 한국의 고3이었겠지요.

 

물론 미국에 온 것이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아닙니다. 어쩌면 저는 한국의 친구들과 한국의 문화를 그리워하면서 미국의 교육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겉도는 아이가 됐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6학년 가을 워싱턴 D.C.의 여행이 제게는 커다란 Turning point 였습니다. 그때 시상식이 열린 ‘메이플라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아빠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윤선아. 메이플라워는 옛날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 대륙에 처음 왔을 때 타고 온 배 이름이란다. 우리도 이민자인데 아주 적당한 곳 아니겠니?”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아빠에게 말해 줄 수 있답니다.

 

“맞아요. 아빠. 처음부터 여기서 산 사람은 없잖아요. Native American 도 먼 옛날 아시아에서 건너왔고 Senator Clinton 의 조상도 200년전 미국에 온 이민자였어요. 빨리 왔든 늦게 왔든 미국은 모든 이민자의 나라니까요.”

 

 


김성아 2013-01-25 (금) 14:52:03
칼럼, 잘 읽고 갑니다. 어릴적 사진이 넘..귀여워서 한참을 들여다 봤네요..^^;;
윤선양 아버님은 언니가 존경하는 분중에 한분인거 알고 계시나요?  아버지닮아 이렇게 글도잘쓰고, 봉사도 잘해서
어린나이에 오바마대통령 봉사상도 받고..뉴아라봉의 장애우봉사도 열심히하고,언니가 넘넘..자랑스럽게 생각하고있어요.
그냥 언니 막내동생 하면 안되요?^^;;  좋은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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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2014-03-02 (일) 15:14:37
감동입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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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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