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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낭의 알로 메콩강
캄푸치아에서 만난 순박한 사람들과 속정을 나누며 어쩜 전생에 이곳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행운이란 뜻의 쌈낭은 가장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미얀마, 태국은 물론, 중국까지 거침없이 흐르는 메콩강을 보며 하루를 여는 인도차이나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다. 엄청난 교통체증에 험한 운전스타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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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불교성지 쉐다곤 파고다

미지(未知)의 땅, 불탑(佛塔)의 나라 미얀마 3
글쓴이 : 쌈낭 날짜 : 2016-09-06 (화) 18: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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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다곤 파고다는 불교성지(佛敎聖地)입니다. 99m의 금빛 탑은 외관이 실제 황금(黃金)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 왕조의 여왕이 황금을 보시(布施)한 이래 수많은 황금이 보시되었고 탑 꼭대기는 73캐럿의 다이아몬드를 포함하여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도록 산이 없는 시내 중심부에 언덕을 쌓고 조성하였으며, 해가 뜨고 질 무렵에는 온통 황금빛으로 세상에 빛을 밝힙니다. 또한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불자(佛者)들의 삶터이고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사람들이 평생 소원으로 꿈꾸는, 생전에 한번은 방문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불교인(佛敎人)이 되어야 참다운 미얀마인이 될 수 있다고 미얀마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불교는 미얀마 헌법(憲法)의 공식종교(公式宗敎)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국교(國敎)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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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쉐다곤 파고다에는 동서남북 네 곳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는 금()으로 만든 불탑(佛塔)을 의미합니다. 2,600년 전,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미얀마 상인이 8개의 부처님 성발(聖髮)을 가지고 와서 안치한 후, 불탑을 건립했다고 하며, 초기 쉐다곤 파고다는 약 20미터 정도였으나 계속 증축되어 현재는 99미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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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사람들은 그들의 나라를황금의 미얀마라고 부릅니다. 도금(鍍金)된 사원(寺院)의 지붕은 추수 때의 누런 들판과 잘 조화를 이루고 나라 전체는 황금색으로 넘실거리며 스님들은 황금색으로 물든 거리를 발우(鉢盂)를 들고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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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불교이념(佛敎理念)으로 국가통치(國家統治)를 했으며 미얀마의 역대왕(歷代王)들은 그들의 신성(神聖)을 불교적 근원(根源)에서 찾았고 군주들은 언제나 불교의 보호자(保護者), 후원자(後援者)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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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불교가11세기 아나라타왕 때에 개교(開敎)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개교이전에 이미 부파불교(部派佛敎)와 대승불교(大乘佛敎), 밀교(密敎), 그리고 힌두교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나라타왕은 여러 종교(宗敎)가 혼합돼 있던 미얀마에 상좌부(上座部) 불교(佛敎)를 확립하여 오늘날의 미얀마 불교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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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지배(植民支配) 시절, 지배자들은 불교도(佛敎徒)가 신성시(神聖視)하는 사원 안에 들어가 온갖 만행(蠻行)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젊은 스님들은 민족주의자(民族主義者)가 되었고 반영운동(反英運動) 중추역할(中樞役割)을 했습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獨立運動)에 불교가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였습니다. 단일민족(單一民族)이 아닌 미얀마의 다양한 종족을 통합해 준 것도 불교였습니다. 식민지배하에서 종족과 이해관계(利害關係)는 틀려도 불교로 하나가 되어 서구식민세력(西歐植民勢力)에 대항했으며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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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바닥은 모두 대리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맨발로 다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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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 뒤쪽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곳인 부다 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 5그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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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는 깨우침(菩提)과 닦음(道諦)의 종교입니다. 2,500년전 보리수 아래서 이룬 부처님의 큰 깨우침은 불교의 처음이요 끝이고 그 진리를 풀어놓은 것이 불교의 모든 것이며, 그것들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깨우침에 들어가고 닦음을 행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열반(涅槃) 직전 제자(弟子)들에게 "너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을 삼아 정진(精進)하라"고 부처님께서 마지막 당부를 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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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다곤 파고다 경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타자웅이란 주변의 건물들입니다. 타자웅은 그 안에 많은 불상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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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불교는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입니다. 이는 테라바다(Theravada’ 장로들의길)이고 부처의 계율을 원칙대로 고수하는 불교를 말하며, 대중부불교(大衆部佛敎)와 함께 인도 소승불교(小乘佛敎) 2대 부문의 하나입니다. 상좌부불교에서는 팔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대승경전(大乘經典)과 대비되고 있습니다. 이 팔리어 경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북방불교(北方佛敎)에 의하면 불멸(佛滅) 100년 아쇼카왕 치세 때, 마하데바(Mahadeva)라고 하는 진보파(進步派) 비구(比丘)가 교의(敎義)에 관한 5개조의 신설(新說)을 제창하고 그 승인을 교단에 구했을 때에, 교단은 신설을 요구하는 진보파의 대중부(大衆部)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上座部)로 양분되었고, 이것이 근본분열(根本分裂)이며, 이를 계기로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시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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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온 가족들이 와서 예불를 올리고 참배를 하며,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경내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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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인들이 지켜낸 동종, 마하간다

 

19세기 초, 영국인들은 쉐다곤 파고다에 있는 거대한 동종(銅鍾)을 영국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 배에 실어 양곤강을 건너려고 하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좌초하여 강에 빠뜨렸고, 강 속에 버리고 간 종을 미얀마 사람들은 건져내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고 합니다. 마하간다 종을 만지거나 종 안에서 소원(所願)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傳說)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종의 무게는 23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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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중간중간에 태어난 요일을 상징하는 부처상과 동물의 형상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요일의 부처상과 형상에 꽃과 불전을 바치거나 물을 뿌리며 복을 기원하는데, 물은 나이만큼 붓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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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다곤 파고다 사진 기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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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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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미얀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불교유적지(佛敎遺跡地)이고 미얀마 불교의 많은 관습(慣習)과 전통(傳統)을 볼 수 있는 쉐다곤 파고다는 밤이 되면 한층 더 많은 감흥(感興)이 있다고 합니다. 빠듯한 일정 탓에 짧은 시간 동안 서둘러 돌아보면서 많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명승지(名勝地)나 고적지(古跡地)를 들러보면, 꼭 다시 올 것이라고, 그 때는 오랜 시간 제대로 볼 것이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어느 곳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쉐다곤 파고다는 기필코 다시 찾으리라 굳은 마음가짐을, 마지막 합장(合掌) 손끝에 담아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양곤을 떠나기 전에,

 

쉐다곤 파고다 북문으로 나오면 바로 길 건너편에 아웅산 국립묘지(國立墓地)가 있습니다. 미얀마의 독립영웅(獨立英雄) 아웅산(Aung San)장군은 19477 19일 독립을 6개월 앞두고 저격을 받아 안타깝게도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얀마국민들의 애도(哀悼) 속에 안장되었고 그곳은 장군의 이름으로 명명(命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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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가 폐쇄되었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보았는데, 입구 부근으로 차가 향하는 순간 무장군인들이 달려 나와 서둘러 도망치듯 빠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묘지는 우리나라와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1983, 한국의 전두환대통령 일행이 묘소를 참배하던 중, 북한이 설치한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른바 아웅산 묘소(墓所) 폭파암살사건(爆破暗殺事件)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폭발 이후 공식적으로 국립묘지는 폐쇄되었고, 아웅산장군의 서거일인 719순교자(殉敎者)의 날하루만 개방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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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장군 기념 화폐

 

미얀마 국민들은 지금도 아웅산 장군을 그리워하며, 여전히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장군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사랑은 절대적으로 보였으며, 이제는 장군의 딸이며 민주화(民主化)의 영웅(英雄)인 아웅산 수치여사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아웅산장군 박물관(博物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출입과 관람은 가능하지만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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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장군 박물관, 뒤에 보이는 곳이 박물관인 저택

 

32세에 암살 당하기 전까지 살았고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태어나고 자란 저택을 박물관으로 꾸몄는데, 정문 옆 차고에는 아웅산장군이 탔던 자동차가 보관되어 있고 박물관 안에는 주로 당시 생활했던 가구와 가족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2016년 미얀마는,

 

2015 11 8, 미얀마에서는 총선(總選)이 있었고. 그 결과,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민주주의 민족동맹당)가 압승(壓勝)을 하였습니다. 이 승리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새로운 여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며 미얀마 정치의 주도세력(主導勢力)이 되었습니다.

 

아웅산 수치여사의 총선 승리로 미얀마에도 희망의 싹이 트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천연자원(天然資源)이 풍부하고 인건비도 낮기 때문에 정치가 안정되면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질 것입니다. 여전히 군부의 힘이 강하고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經濟制裁)가 아직 완전하게 풀리지 않았지만, 미얀마는 민주화 물결만큼이나 경제개발(經濟開發) 열풍도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투자금(投資金)이 계속 유입되고 있으며, 공적개발원조(公的開發援助)도 몰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얀마에 집중하고 있고, 영국도 정부 간 원조를 재개했으며, 미국도 제재의 사슬을 풀며 미얀마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각국이 미얀마에 지원을 쏟아 붓는 큰 이유는 바로 미얀마의 미래(未來)입니다. ‘강하고 빠르다는 나라 이름 그대로 지정학적(地政學的) 중요성(重要性)과 풍부(豊富)한 자원(資源)이 있는 미얀마, 그 동안 군부 독재에 가려졌던 미얀마의 잠재력(潛在力)은 머지않아 동남아(東南亞)를 넘어 세계(世界)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노창현 2016-09-08 (목) 11:39:12
미얀마의 찬연한 불교예술..대단합니다..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결심 해봅니다..ㅎㅎ

상세한 정보와 아름다운 사진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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