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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낭의 알로 메콩강
캄푸치아에서 만난 순박한 사람들과 속정을 나누며 어쩜 전생에 이곳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행운이란 뜻의 쌈낭은 가장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미얀마, 태국은 물론, 중국까지 거침없이 흐르는 메콩강을 보며 하루를 여는 인도차이나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다. 엄청난 교통체증에 험한 운전스타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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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未知)의 땅, 불탑(佛塔)의 나라 미얀마

동글동글 귀여운 미얀마 글자들
글쓴이 : 쌈낭 날짜 : 2016-08-29 (월) 21: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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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얀마에 6.8의 강력한 지진(地震)이 발생하여 세계3대 불교유적(佛敎遺跡)의 하나이며 천년천탑(千年千塔)의 고대도시(古代都市) 바간(Pagan)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엄청난 재난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10~14세기에 건립된 사원(寺院)과 불탑(佛塔) 180여개를 비롯하여 모두 230여개 이상의 고대 불교유적이 붕괴되거나 훼손되었으며 그 수는 아직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1975년 강진이 일어난 때에도 엄청난 수의 사원과 불탑이 복원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손되어 3천여 개에 이르던 불교 유산의 막대한 손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군사정부(軍事政府)의 독재(獨裁)와 서방세계(西方世界)의 경제제재(經濟制裁)로 인하여 어렵게 살아온 미얀마 국민들, 이제서야 30년 민주화(民主化)의 결실(結實)을 맺어 밝은 세상으로 힘겹게 한걸음 내딛는 찰나에 끔찍한 재난이 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강인한 버마인들은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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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난 뉴스를 보고 전에 출장으로 다녀왔던 양곤의 사진들을 고이 갇혀 지내던 외장하드에서 꺼내어서 보았습니다. 군사정부는 개방(開放)과 민주화(民主化)를 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가 곧 풀릴 것이라는 소문이 한창이었던 시절, 미얀마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독립(獨立)의 위대한 영웅(英雄) 아웅산 장군(將軍)의 딸인 수치여사가 오랜 가택연금(家宅軟禁)에서 풀려났을 무렵, 그 때의 양곤은 잿빛 하늘이, 느리지만 서서히 걷혀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때의 모습을 몇 차례로 나누어 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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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시아 축구강국(蹴球强國)이었고 버마로 불렸던 미얀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모처럼의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미지(未知)의 나라로 향하는 신비한 여정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어릴 적 소풍 전날의 잠자리에 가득했던 설렘이 있었고, 일행은 초저녁의 짧은 비행 시간에도 푹 잠들어 있는데, 홀로 가슴을 토닥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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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처음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하여 프놈펜 공항에서 입국수속(入國手續)과 짐을 찾아 나왔을 때, 당황했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놈펜국제공항(國際空港) 입국장(入國場)의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훅 밀려오는 후끈한 열기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낮은 조명, 알아듣지 못하는 소음, 순간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다가 인파에 밀려 그만 마중 나온 사람을 지나쳐버렸고, 마지막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멍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입국장이 실외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처음 가는 곳의 입국장 문이 열리면, 멀리서 바깥을 둘러보고 멈칫거리는 이상한 습성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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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국제공항은 프놈펜보다 훨씬 컸고 아주 밝았으며 쾌적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얀마 사람들의 영어가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발음이 프랑스식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발랑(Balance), 아디다(Adidas), 띠따닉(Titanic)으로 발음을 합니다. 지금도 간혹 어려움을 겪지만, 6개월까지는 잘 알아듣지를 못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더 재미 있는 것은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준 영어 이름이 챨스(Charles)인데, 캄보디아 직원들은 아직도 찰리 또는 제일 비슷하게 하는 발음이 찰리스라고 합니다. 그들이 부를 때마다, 꼬부라진 머리카락 한 올뿐인 브라운이 되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미얀마는 영국 식민지(植民地) 영향 때문인지 비교적 알아듣기가 편했습니다. 캄보디아와 미얀마도 훌륭한 고유언어(固有言語)들이 있습니다. 이런 단순한 비교를 하여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그들을 폄하(貶下)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미안마는 처음부터 아주 좋았습니다. 작은 설렘에서 비롯된 묘한 흥분이 곳곳의 세포를 자극하였고 양곤의 야경(夜景)은 습기가 모두 빠져나간 밤공기의 기분 좋은 서늘함에, 풀 내음이 섞인 흙 향기와 어우러져 모든 감각기관을 마비시키는데, 어느덧 낯섦에 대한 긴장감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미지와의 조우(遭遇)에 대한 기대감만 극대화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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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서북부에 자리한 미얀마 연방공화국(聯邦共和國)은 동부는 태국 및 라오스, 북부는 중국에, 서부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와 접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토의 크기는 우리 한반도(韓半島) 3.5배이고 인구는 5,100만명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열대성 몬순기후로 날씨는 캄보디아와 비슷한 듯한데, 건기의 온도가 조금 더 낮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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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버마족의 위대한 왕 아나와타는 바간을 중심으로 통일왕국(統一王國)을 수립하였으며 불교(佛敎)를 숭상(崇尙)하여 바간 지역에 대규모(大規模) 불사(佛事)를 일으켜 오늘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버금가는 불교유적지(佛敎遺跡地)를 남겨놓았습니다. 13세기 정복자(征服者) 쿠빌라이 칸에 의해 점령을 당하여 몽고(蒙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통일왕국이 무너지면서 약 300년간의 혼란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통일국가(統一國家)를 이룬 것은 따웅우 왕조의 정복군주(征服君主) 바인나웅이었습니다. 16세기 중엽에 태국을 침공, 수도인 아유타야를 점령하고 지배하기도 하여 오늘날까지 미얀마와 태국은 서로를 경계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근대에 이르러 미얀마는 19세기, 세 번의 전쟁을 치르고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영국의 직할식민지(直轄植民地)가 아니라 인도의 한 부속지로 편입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은 식민지 통치기술로 민족간 갈등을 이용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며, 이는 현재 종족분쟁(種族紛爭)의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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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1 4일 오랜 영국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獨立)을 하였고 1989년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가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현재의 수도는 네피도이고 2005년에 행정부를 이전한 행정수도(行政首都)입니다. 예전의 수도였던 양곤은 지금도 교역의 80%가 이루어지는 경제(經濟)의 중심지(中心地)이며 인구(人口) 600만명이 넘는 미얀마 최대도시(最大都市)입니다. 미얀마는 다민족국가(多民族國家)입니다. 68%의 버마족이 중심이며, 그 외에 샨족, 카렌족 등 135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90% 이상이 불교이며 공용어(公用語)는 미얀마(버마)어이고 1인당 소득은 미화 1,200달러로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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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ya Lake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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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로 올라가려고 탄 엘리베이터의 제조사 Gold Star(금성)를 보고

몇 년도 제품인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투숙한 인야레이크 호텔(Inya Lake Hotel)1962년 건립 당시에는 최고의 호텔이었다고 합니다. 1995년 개축되었으며 인야 호수(Inya Lake)를 바로 접하고 있어 자연경관(自然景觀)이 매우 뛰어납니다. 자연미(自然美)를 좋아하는 유럽 인들이 선호하는 호텔이지만 객실이나 부대 시설이 오래되어 불편한 점이 있지만 나름 예스러움과 미얀마 전통미(傳統美)가 어우러진 분위기가 고풍(古風)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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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야 호수는 영국 식민지 시절 빅토리아호(Victioria Lake)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1882년에서 1883년에 양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이며 인공호수(人工湖水)입니다. 인야는 버마 말로 호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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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야 호수는 양곤 시민들의 삶의 휴식처(休息處)라고 합니다. 새벽부터 산책, 운동,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로 붐비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양곤 젊은이들의 낭만(浪漫)이 가득해지는 곳으로 한국으로 말하면 한강과도 같다고 할까요. 양곤대학교 옆 인야 호수 한 편으로는 아웅산 수치여사가 연금됐던 가택이 있고 한쪽 호수 변으로는 노천바가 즐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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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미얀마 글자, 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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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나 호텔, 1996년에 건립된 5성급의 최고급 호텔로,

인야 호수가 인접해 있어 경관이 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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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상 론지를 입은 미얀마 청년


미얀마 남자들은 대부분 치마처럼 생긴 전통의상(傳統衣裳) 론지를 입고 여인들은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얼굴에 타네카를 바릅니다., 천연피부보습제(天然皮膚保濕劑)이고 자외선(紫外線) 차단효과(遮斷效果)도 있다고 하는데, 미얀마 여인들뿐만 아니라 성인 남성을 제하고는 남녀노소(男女老少)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르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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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카를 바른 호텔 기념품가게 종업원

 

 

미얀마는 20세기에 멈추어 있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영국으로부터 독립(獨立)을 쟁취(爭取)한 이후에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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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1945년 미얀마는 아웅산 장군을 중심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으나 정부수립(政府樹立)을 하기도 전에 독립영웅(獨立英雄) 아웅산 장군이 암살(暗殺)되는 등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1948년 미얀마 최초의 민간정부(民間政府)가 수립됐지만 혼란은 계속되었고, 결국 군부세력(軍部勢力)에 의해 1962년 군사령관인 네윈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성공하여 미얀마는 군사통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네윈은 당시 사회주의(社會主義)와 불교사상(佛敎思想)에 입각한버마식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사유재산제도(私有財産制度)의 폐지, 계획경제(計劃經濟)의 도입은 물론 대외적(對外的)으로 폐쇄적(閉鎖的), 고립경제체제(孤立經濟體裁)를 채택했는데 이러한 네윈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한 때 동남아(東南亞) 부국(富國)이었던 미얀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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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이후 미얀마의 경제(經濟)는 뒤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얀마의 산업이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알아보려면 한국의 1960년대를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1960년대 초를 기준으로 한국은 개방경제(開放經濟), 미얀마는 폐쇄경제(閉鎖經濟)를 선택하였고, 그 선택이 오늘날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초 이전에는 미얀마가 한국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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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양곤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시위(民主化示威)가 일어나 네윈이 퇴진하였지만 새로운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였고 신군부(新軍部) 1990년 총선거(總選擧)를 실시했으나 아웅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당이 압승을 하였음에도 신군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즉각적으로 계엄령(戒嚴令)을 선포하고 수치 여사는 20년간의 기나긴 가택연금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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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시내를 다니다 보면 시내 곳곳에 무장한 군인들이 있습니다.
경찰일 수도 있겠지만, 문득 양곤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고 말없이 침묵을 하고 있는지,
이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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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대학 이정표

 

양곤대학에 가보려고 했지만, 가도 들어갈 수 없다는 택시 기사의 얘기에 의아함이 들어서 다시 물으니, 대규모 학생 운동이 있은 후에 거의 폐쇄한 상태라고 합니다. 양곤대학은 민주화의 성지이고 발원지라 하는데,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중앙역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군사정권은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무조건 발포를 하였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대학생들이 죽었으며, 부모들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는다는 얘기에 그만 눈시울은 뜨거워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2편으로 ...


 


2016-08-29 (월) 23:14:13
몽윈몽..몽에몽..몽몽탄..70년대초까지 버마(미얀마)는 한국 축구를 두렵게 한 호적수였지요..선수이름이 대부분 '몽'자 돌림이어서 재미있었던 기억이..몽은 유부남(?)인 경우 붙인다는것 같은데..ㅎ 미얀마의 풍물과 역사, 현지인들의 삶을 보게 되어 반갑네요..후속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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