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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불혹(不惑)에 평생의 꿈인 조종사가 되어 경비행기로 미대륙 횡단종단을 4차례나 했다. 비행경력 28년에 비행시간만 5천시간이 넘는다. 쌍발기부터 보잉747 등 모든 종류의 비행면허를 갖고 있으며 ‘조종의 예술’로 꼽히는 매뉴얼 비행의 일인자로 꼽힌다. 오늘도 '애기(愛機)' 파이퍼 워리어를 몰고 하늘을 나는 ‘60대 청년’ 신상철 기장의 파란만장한 항공인생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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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항공산업 효시 신용욱 조종사(上) 파란만장 항공인생

글쓴이 : 신상철 날짜 : 2012-01-24 (화) 12:39:43

지금은 태극 마크를 단 대한민국 국적기가 오대양 육대주, 그야말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날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한국사람으로서 또한 항공인의 한사람으로써 세월의 흐름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며 그 영광의 뒤안길에 가려진 선구자 내지 희생자들의 삶을 누군가는 재조명해야 하고 또 그분들의 노고에 오늘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온 조선민족이 압박의 설움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기를 살려 주셨던 분들,

떴다 보아라 안창남, 자전거는 엄복동, 달린다 손기정,,,,,,,,,,,,,,,,,,,,

비록 그 당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그 날의 감격을 생각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손이 부르르 떨림을 느낀다. 생의 삼분의 이 이상을 유독 외국에서만 살아온 나의 삶에 비추어 볼때 그 마음 뿌듯함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안창남선생님;

한국인 최초의 조종사, 일본에서 비행훈련을 받고 귀국하여 한국인 최초의 조종사가 되었으나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중국으로 가서 비행활동을 하던중 의문의 비행사고로 안타깝게도 일찍 생을 마감하였다.

한국인 제2호 조종사, 신용욱 기장님.

그마저 5․16이 나던해 8월 여의도 샛강에서 시신(屍身)으로 발견돼 일간지 톱기사가 되었으며 자살로 판명되었다.

무엇이 그를 자살하게 만들었던가?

바로 비행기가 원인이었다. 대한민항(KOREA NATIONAL AIRLINE)의 운영난과 군사혁명정부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려 투옥된 사건 등.....

  

신용욱 기장은 1901년 전북고창에서 만석지기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안창남씨와 함께 휘문 중학에 다녔고 그곳에서 비행사의 꿈을 키우며 소년시절을 보냈다.

한편 부친의 완강한 반대로 일본유학을 숨겼으나, 그뒤에는 동아일보를 인촌 김성수와 함께 창간한 숙부 신구범씨(1기 제주민선지사와 동명이인)의 도움으로 일본 비행학교에 입교해 24세이던 1925년 조종사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파란만장(波瀾萬丈)한 항공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주저할것 없이 곧바로 고향땅 삼천석지기 논밭을 팔아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한다.

하지만 그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행기를 배우겠다고 오겠는가?

또 그 다음해에는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항공사 "신항공사"를 설립한다." 1931년 회사명을 "조선항공사업사"로 개칭했으며 드디어 1945년 해방을 맞으며 "대한민항" (KNA)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모든 것을 군대에 징발(徵發)당하고 본인 자신까지도 일본군 군속으로 수송기 조종을 하며 일본에서 출발, 제주도를 거쳐 중국까지, 한반도를 종단하여 신의주, 만주까지 군수물자를 수송하며 많은 비행시간은 물론 다양한 비행경험을 쌓으며 조종사로서의 성숙도를 더해 간다..

그것이 조종사로써는 좋은 면이었으나 해방후 이승만 정권에서 정치가로 변신할때는 불리한 조건이 되기도 하였다. 소위 친일파로 매도되어 한동안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신용욱 기장의 비행기에 대한 집념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해방직후 미국에서 스틴슨(Stinson) 4인승 비행기 3대를 선박으로 실고와 부산 수영 앞바다에서 하역(荷役)한뒤 그곳에서 이륙하여 서울로 온후로 김포공항에서 승객 두명을 태우고 2시간뒤 부산 김해 비행장에 착륙하고서 무한한 감격을 누렸다고 한다.

한편 회사 직원들이 사장님 하고 부르면 화를 내며 "신기장이라고 불러" 했다는 일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가 워낙 어려웠던 시절이라 어떤 때는 승객이 하나도 없었어도 실망하지않고 언젠가는 손님이 꽉 찰거라는 확신을 하며 살아갔다한다.

비행기가 삶의 전부였던 신용욱 기장.

이승만 대통령과의 만남, 그것은 그에게 삶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에게 절대적 존재였고 충성하는 것만이 비행기에 대한 꿈을 이루는 한 방법이었으리라.

고향 전북 고창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계기로 한층 더 비행기에 대한 집념과 추진이 성숙해감을 느낀 그는 마침내 미국으로 날아간다,

항공기 종주국의 상황을 파악하고 일개 국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헬리콥터 학교에 입교하여 미국사람들도 놀랄만큼 단 시간내에 면허증을 받고 헬리콥터 한대를 구입해서 귀국해 대한민국 최초의 헬리콥터 조종사가 됨과 동시 고향땅 논밭에 한국최초로 농약 살포 비행도 하게 된다.

인기가 어찌 하늘을 찌르지 않을수 있으랴!!!!!!!

<下편 계속>


한동신 2012-01-24 (화) 21:08:30
'뉴스로'가 멋진 또 하나의 이유-
신기장님같은 분의 글이 실리니까요-
참 오랫만에 듣게 되네요.
그 멋진 노래가락-'떠~~~었다~~~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달린다아~~~손기정, 엄복동의 자전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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