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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박사 만화일대기 화제…한글 영어 게재

'My Papa is a Simple Man'
글쓴이 : 소곤이 날짜 : 2016-01-01 (금) 13:56:13

by Changhyun Roh 


서재필박사 만화일대기.jpg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인최초의 의학박사, 언론인이었던 서재필(1864-1951) 박사가 오는 7일 탄생 151주년을 맞는 가운데 일대기(一代記)를 담은 만화가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 아빠 서재필박사 이야기(My Papa is a Simple Man)'가 화제의 만화책이다. 이 책은 서재필기념재단(회장 최현태)이 지난해 탄생 150주년 사업으로 기획한 것이다. 서재필 박사와 둘째딸 뮤리엘의 대화를 통해 생애를 그리면서, 왼쪽 페이지는 영어, 오른쪽은 한글 지문을 넣은 한영만화책으로 발간됐다.

 

이은홍 작가가 스토리를 썼고 방승조 만화가가 삽화(揷話)를 그렸다. 영어지문은 라이더대학 영문학과 오세웅 교수가 맡았다.

 

최현태 회장은 "후손들이 본받아야 할 서재필박사의 생애를 미국의 2세 등 어린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논문이나 큰 책들은 적당치 않아 누구나 읽기쉽고 흥미로운 만화책을 만들자는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기획한 사업이었지만 스토리작가와 만화가를 찾기가 쉽지 않아 결국 오세웅 교수가 한국에 나가 작가 선정과 출판사 계약 등을 하게 되었다.

 

오세웅 교수는 "2세들이 이 책을 통해 한인으로서 미 최초의 시민권자이자 최초의 의학박사로서 한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서재필박사를 만나면 큰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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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출판사에서 발행된 '우리 아빠 서재필박사 이야기'는 권당 10달러로 1500권이 미국에 보내져 주요 지역의 한국학교와 도서관 등 2세들을 위한 단체와 기관 등에 공급되었다. 평생을 한국의 개화와 국민계몽,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서재필 박사의 전기 만화는 한인2세와 3세는 물론, 기성세대와 미국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1975년 필라델피아에서 설립, 서재필박사의 정신을 기리며 의료 교육 문화 사회 봉사를 하고 있는 서재필기념재단은 기념관을 방문하거나 구입을 워하는 이들에게 '우리 아빠 서재필박사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야기는 해방후 정부수립을 돕기 위해 무려 51년만에 모국에 돌아가는 서재필 박사가 동행한 둘째딸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부녀간의 애틋한 정()이 묻어나는 내용들이라 흥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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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만화의 주요 내용.

 

어릴때부터 영특했던 서재필은 18세에 관리가 된후 개화파 김옥균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서양의 문물과 사상을 공부하며 백성의 뜻에 이끌어지는 나라 공화국이 우리민족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사흘만에 실패로 돌아가 21세이던 18851, 일본으로 첫 망명을 하게 된다. 그해 6월 미국 유학을 결심, 고교와 대학과정을 마치고 의학박사가 되었고 1894년 워싱턴에 한국인 최초로 병원을 개업했다.

 

박영효 등 옛 동지의 권유로 이듬해 미국인 아내 뮤리엘과 함께 고국에 돌아간 그는 대한제국 중추원 고문이 되어 최초의 한영판 독립신문(The Independent)을 만들고 독립문을 건립하는 등 국민들에게 외세의 간섭을 떨치고 자주독립의식을 고취(鼓吹)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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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서재필박사 <이하 사진 PJ Memorial Foundation>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만민공동회가 큰 성공을 거둔 후 정치를 의회체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왕권을 보호하려는 기득권층과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 1898년 한국서 출생한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길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시도 고국을 잊지 않았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병원일을 접고 한국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잡지를 만들고 집회를 열었으며 국내에 운동자금을 보냈다.

 

엄마와 이름이 같은 둘째딸 뮤리엘은 서재필 박사에게 "제가 열두살 때 엄마가 아빠를 위로하셨던게 생각나요. 그때 한국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때지요. 스물한살 때는 아빠가 엄마를 위로했지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팔고 온 날이었어요"라고 회상(回想)한다.

뮤리엘이 "한국에서 아빠를 대통령으로 뽑자는 운동은 감동이었어요"라고 하자 서재필박사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난 나이가 너무 많아 그럴 수 없었단다"고 말했다.

 

1949년 조국과의 세 번째 작별을 하고 미국을 향한 배에는 32명의 유학생이 타고 있었다. 배안에서 위대한 애국지사를 발견한 유학생들은 일제히 큰 절을 올리는 감동적인 모습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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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엿새째인 917일은 추석이었다. 서재필 박사는 선장을 찾아가 "오늘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요. 돈을 낼테니 파티를 열어주시요"라고 부탁, 태평양 상의 만월을 바라보며 아리랑을 부르고 대한민국 만세가 울려퍼지는 감동적인 장면도 연출되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크게 낙담한 서재필박사는 지병이 악화되었다. 그는 큰 딸 스테파니에게 구술하여 "모두가 잘못을 깨닫고 이 어리석은 전쟁을 끝내고 서로 협력하여 민주국가 건설에 나서길 바란다"고 간곡히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고 이듬해 15일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이 책의 영어제목인 'My Papa is a Simple Man(우리 아빠는 단순한 사람)'은 뮤리엘이 살던 집에서 아버지를 회고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롯됐다. "서재필은 어떤 분이셨을까 정치가? 혁명가? 의사? 독립운동가? 그때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뮤리엘 난 민주주의자야 그뿐이야..그래 아빤 참 단순하신 분이셨지..사랑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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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pa is a Simple Man'

Dr, Philip Jaisohn, the First Korean American

 

by Chang-Hyun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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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dependent activist, the first Korean doctor of medicine, and a journalist, Dr. Phillip Jaisohn (Soh Jaipil 1864-1951), is still touching many lives through a recently released cartoon-made biography.

 

Titled, “My Papa is a Simple Man,” the cartoon is a project organized by the Philip Jaisohn Commemoration Foundation (Chairman Hyun-Tae Choi) to celebrate his 151th anniversary since birth. The cartoon draws upon the life of Dr. Philip Jaison through the conversation he shares with his daughter, Muriel. Uniquely, the cartoon was printed in both English and Korean, with the left page written in English and the right page written in Korean.

 

Writer Eun-Hong Lee directed the story and cartonnist Seung-Jo Bang was in charge of the illustration. Sae-Woong Oh, Professor of English studies, Rider College, took charge of the English translation.

 

Chairman Hyun-Tae Choi addressed the cartoon as, “an easy-to-read and interesting medium for sharing the biography of Dr. Philip Jaisohn to inspire the younger generation of Koreans in America.”

 

The project started its planning stage back in 2014, but initially faced difficulties finding the right storywriter and a cartoonist. This was when Professor Sae-Woong Oh stepped forward to successfully make contracts with a writer and a publishing house.

 

Dr. Philip Jaisohn is also the first Korean to receive American citizenship. Professor Sae-Woong Oh expected the cartoon to, “instill pride among the 2nd generation Korean-Americans who will learn about Dr. Philip Jaisohn, a Korean-American, and his lifelong dedication to liberate and democratize Korea.”

 

Published by the Hollym Publishing House, 1500 copies of “My Papa is a Simple Man” were made available to public libraries and Korean schools located in key U.S. regions, to support the literary access of 2nd generation readers. The story of Dr. Philip Jaisohn, who served his lifetime to fight for independence, civilization, and mass-education of Korea, is leaving an impact on not only Koreans, but also on Americans.

 

Established in 1975 in Philadelphia, the Philip Jaisohn Commemoration Foundation is continuing the legacy of Dr. Philip Jaisohn by providing non-profit medical education. The foundation also offers a copy of “My Papa is a Simple Man” to those who visit the memorial hall or those who simply wish to purchase.

 

The story starts out with Dr. Philip Jaisohn and his second daughter Muriel returning to Korea after 51 years, to help the efforts of establishing a Korean government post-liberation. The conversation between Dr. Philip Jaisohn and his daughter reveals a warm affection shared by the two.

 

Bright from a young age, Dr. Philip Jaisohn became a government official at just 18 years old, and made a fateful encounter with Ok-Gyun Kim of the Gaehwapa (an Enlightenment party at the time). Since the encounter, Dr. Philip Jaisohn dedicated his time to study Western culture and values, and envisioned the future of Korea as a republic. In 1884, the Gaehwapa members staged a coup called Gapsin Coup, in an attempt to reform the old-fashioned government system, its corrupt hiring process and financial management institutions as well as to abolish the status system. However, the Gapsin Coup failed just after four days and on January of 1885, Dr. Philip Jaisohn was sent into exile to Japan. At the time, he was just 21 years old. On June of that same year, Dr. Philip Jaisohn decided to study abroad in America, completed the high school and college curriculum and eventually became the first Korean doctor of medicine to open a hospital in Washington in 1894.

 

Due to the suggestion of Young-Hyo Park and other old acquaintances, Dr. Philip Jaisohn returned to his homeland and became the Jungchuwon Adviser of the Korean Empire. Under this title, he was able to establish “Doknip-sinmun(The Independent)”, the first Korean newspaper in 1896 and build the “Doknipmun Gate”, a memorial gate currently located in Seoul, Korea. Such efforts instilled a spirit of independence within the Korean people and stirred their resistance to foreign inter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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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ing the success of the People’s Assembly, Dr. Philip Jaisohn further pushed for the Korean government to adopt a National Assembly system to allow the citizens to openly express their opinions. Due to his push, Dr. Philip Jaisohn clashed with the Establishment there, and in 1898, was sent to America on a political asylum with his two children who were born in Korea.

 

However, Dr. Philip Jaisohn never forgot his homeland. In 1919,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arted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invasion of Korea. Dr. Philip Jaisohn helped to spread awareness in the U.S. by publishing a magazine about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holding a rally. He also sent capital back home to support the movement.

 

His second daughter Muriel, who was named after his wife, reflects on this saying, “I remember mother consoling you when I was 12 years old. That was when Korea was invaded by Japan. And then when I was 21 years old, you were the one who consoled mother. That was when we sold our entire asset to support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Muriel continues reminiscing by saying, “It was truly touching to witness the movement in Korea to make you the next President of Korea.” Dr. Philip Jaisohn smiles at his daughter and replies, “It wasn’t possible because of my old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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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Jaipil(Philip Jaisohn) and his daughter Muriel in Incheon(1947)

 

 

In 1949, Dr. Philip Jaisohn said his third good-bye to his homeland and headed back to America on a ship, where 32 other Korean students were on board. Upon seeing Dr. Philip Jaisohn on the ship, the Korean students made a humble bow, expressing their respect and admiration for the great patriot.

 

On September 17th, six days into their voyage, was “Chuseok,” the Korean Thanksgiving Day. Dr. Philip Jaisohn approached the captain and offered him money to open a party to celebrate the holiday. The cartoon illustrates the Korean people onboard singing “Arirang” and shouting “Long live the Republic of Korea!” as they look up to the full moon.

 

In 1950, the Korean War broke out and this news worsened the chronic illness of Dr. Philip Jaisohn. He asked his other daughter Stephanie to send a letter back to Korea, pleading the people “to end the foolish war and work together towards building the Republic of Korea.” The following year, on January 5th, Dr. Philip Jaisohn passed away at the age of 88.

 

The title of the cartoon, “My Papa is a Simple Man,” was taken from the last scene at their old house, where Muriel reflects on her memories of her father. “Who was my father? Was he a politician? A revolutionary? A doctor? A Korean independence fighter? At that moment, I heard my father’s voice. ‘Muriel, I’m a Democrat. That’s all I am.’ Right, papa was a simple man. I love you, father.”

 

 

Translated by Chloe Roh

 

 

 The Life of Philip Jaisohn(1864-1951)

 

http://jaisohn.com/dr-philip-jai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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