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동북아평화협정으로 이어져야
북한의 6차 핵실험은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를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최고로 강한 응징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북한 핵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으로 포기하고 고립시킬 유엔 안보리 결의 추진 등 모든 외교적 방법을 강구하라”, “동맹 차원의 연합방위태세를 토대로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추가 도발에 만전을 기하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문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사모하는 이들이 많지만 수많은 촛불시민들은 당혹감을 넘어 우리가 이러려고 그 겨울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이 들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탄핵당한 박근혜와 전혀 다를게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시험을 빌미로 박근혜 수구세력이 몰래 들여온 싸드 배치를 완료하고 미사일 탄도중량 해제조치에 나섰다.
한국의 매체들은 “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이 달라졌다. 한미지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무력시위로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수분내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미국 전략폭격기와 함께 공군의 F-15K가 훈련비행을 했다”고도 전했다.
급기야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 참수부대’ 운운하며 떠들어댔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는 북한과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쟁의 와중(渦中)같다. 설마하니 이러고도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고 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막말로 “니 목을 따버리겠다”는 끔찍한 위협을 하면서 북한보고 ‘대화하자’ 그러면 ‘네~’ 하고 쪼르르 달려오는 천하의 모지리로 아는걸까.
문대통령의 결의(?)에 찬 지시는 과연 온당한가. 북한의 핵미사일 계획을 정말 유엔 안보리와 동맹강화로 포기시킬 수 있다고 믿는가.
유감천만에게도 문대통령의 지시는 철지난 유행가다. 이미 이명박근혜 시절 9년간 되풀이해서 본 대응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 장거리미사일 개발은 ‘햇볕정책’을 근간(根幹)으로 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엔 거북이 걸음이었다. 비약적인 개발의 속도는 북한을 겁박하기 시작한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의 햇볕정책을 단숨에 폐기한 이명박이후 북한은 남한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었다. 어차피 전작권도 없는 미국의 꼭두각시 정부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북이 어렵게 합의해도 미국의 양해가 없으면 진도가 안나가는데 하물며 이명박근혜 수구정권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근혜의 9년간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고 ICBM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북제재로 허리띠를 졸라맸는데도 내구력을 길러 경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미국이 북한을 칠 수 있을까. 과거에도 북폭을 망설였는데 괌기지와 하와이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농후한 지금 북한을 친다고? 외과수술식 공습을 떠들며 북한을 단숨에 요절이라도 낼것처럼 허풍을 떨지만 반대로 현실은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북한이 사생결단으로 핵미사일 개발에 나선 것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다. 북한은 남한과 대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상대는 지구상 가장 강력한 국가 미국이었다. 남한과의 전쟁은 곧 미국과의 전쟁이다. 수십년간 주한미군 전술핵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북한이다. 리비아 카다피, 이라크 후세인의 종말을 보았다. 핵이 없는 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핵미사일을 개발했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라고?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북핵문제가 이지경까지 온 것은 미국이 걸핏하면 합의를 어기고 말바꾸기를 했기 때문이다. 1994년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 ’기본합의’를 했다. 북의 중수로를 동결하면 10년 안에 100만 킬로와트 경수로 2기를 남한의 경비로 건설해 주고, 경제제재를 완화하며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고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기본합의를 관장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보스워스(S. Bosworth)총장은 “기본합의는 서명한지 2주일도 안돼 고아가 되었다(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고 했다. 퇴임 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북이 1994년 북미 기본합의를 안 지킨 것은 없다”고 토로했다. 부시 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 조차 미국이 "축구경기 도중 골대를 옮긴다 (Moving the goal posts in the middle of a football game)"며 미국이 합의 내용 바꾸기를 한다고 시인했다.
북한은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 핵개발도 안하겠다고 얘기했다. 그것을 무시한게 미국이었다. ‘전략적 인내’라는 모호(模糊)한 용어로 시간끌기 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북한은 핵개발 로켓개발만이 살길이라고 보고 총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북한의 자멸을 기대하던 미국은 도리어 본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버렸다.
수구네오콘은 통탄할 일이겠지만 미국의 선택지는 오직 한가지다.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북한과 선린우호관계가 되면 미국에게 불리할까. 오히려 유리해진다. 왜일까. 북한은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중원을 지배한 고조선 이래로 한족과 끊임없이 대결한 고구려/고려의 후예가 오늘의 북한이다. 배를 곯을지언정 “뙈놈에겐 빌어먹지는 않는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우리의 동족이다. 미국이 똑똑하다면 중국과 북한을 지금처럼 한묶음으로 만들어선 안된다. 남북한의 통일을 돕는다면 남한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중국을 견제하는 견고한 방파제(防波堤)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더이상 세계의 경찰 노릇을 그만둬야 한다. 동북아 균형은 통일 코리아에 맡기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현재처럼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지향한다면 남북간 화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위기를 기회로 돌리기는 커녕, 기회를 위기로 만들고 있다.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은 남한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자. 우리가 중국의 위협속에 살고 북한은 전작권도 없이 중국의 꼭두각시 정권에 불과하다면 북한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북한이 남한에게 지금 하는 “경거망동 하지말라”는 경고(警告)는 쪽팔리지만 엄혹한 현실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남북 어디든 여하한 형태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공멸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북한의 생존은 곧 한반도의 생존이기도 하다.
문재인정부는 더 이상 수구네오콘의 논리에 편승하지말고 우리 민족, 우리 겨레의 진정한 이익을 위해 단호히 행동해야 한다. 북한과 핫라인을 통해 접촉하고 6.15와 10.14 정신을 계승하는 모든 조치에 매달려야 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의 등거리 외교로 실리를 챙겨야 한다. 북미간 평화협정의 지렛대를 놓고 궁극적으로 동북아 6개국 평화협정을 향해 나아가라는 것이다.
문재인정부에겐 촛불시민의 절실한 염원과 신뢰가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