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그것도 가장 큰 대도시인 뉴욕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총소리 한번 듣지 못한게 사실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총기사건이 벌어지는 미국의 대도시에서 사는 것이 안전할까 걱정도 하지만 사실 뉴욕은 서울보다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뉴욕의 슬럼가 거리 일부는 어스름이 깃들면 돌아다니기가 겁난다. 실제로 다니면 외모(外貌)의 차이(?)로 범죄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은 안전하다. 지하철도 밤늦도록 타도 위험한 일은 거의 없다.
서울에 견주면 그렇다는 얘기다. 총기휴대가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지난 10년간 경찰이 소지한 총 말고는 총 구경을 한 일이 없고 총소리도 못들어봤으니 무감각해지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따금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이곳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전화와 이메일이 빗발친다. 뉴욕과 비행기로 몇시간을 가야 하는 아주 먼 곳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같은 미국이니까.
지난 14일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참사가 벌어진 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한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행정구역상 코네티컷 주이지만 뉴욕시와 인접한 뉴욕주, 뉴저지주, 코네티컷 주 일부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대뉴욕지구(Greater New York)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코네티컷 뉴헤이븐에선 30분 정도 북쪽에 위치한 뉴타운은 상대적으로 한인들에게 낯설지만 아무튼 근거리의 평화로운 도시에서 어린아이들 스무명을 포함, 27명이 총기참사로 사망했다는 뉴스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여러번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지만 모두 사는 곳에서 먼 곳이었고 이번처럼 예닐곱살의 아이가 떼죽음을 한 것은 초유의 일이라 그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총기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도 총기 규제는 너무도 허술하다. 규제의 목소리도 높지만 총기소지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미국은 헌법에 총기소유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미대륙에 건너온 개척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정복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무법이 판을 쳤으니 자신을 지킬 마지막 수호자는 총기였던 것은 이해가 간다. 지금도 중서부 일부엔 총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곳이 있다지만 지금은 21세기로 접어든 세상, 법치질서(法治秩序)가 엄격히 지켜지는 세계의 초강대국에서 개인의 총기 소지는 자신을 지키는 호신무기가 아니라 자칫 남을 살상하는 치명적인 흉기가 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대통령까지 만든다는 미국 최대의 로비단체 전미총기협회(NRA)의 눈치를 정치인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퍼져 있는 민간인들의 총기는 모두 2억7천만정으로 알려졌다. 미국 인구의 85%에 달하는 숫자이다.
이러한 무기와 탄약의 수요가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만 규제해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로비회사와 정치인들의 이익과 떡고물이 엄청난게 줄어들테니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이다.
기실 규제하자는 쪽도 구매자의 신원조회와 정신병력 범죄자의 구입을 막고 특정총기 추적시스템 등 소극적인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것이지, 총기 소지를 전면금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초보적인 법제화조차 힘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정말 많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규제의 목소리가 어느때보다도 높고 오바마 대통령의 결의도 단단해 보인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15일 인상적인 칼럼을 올렸다. 미국의 총기규제는 이제 용기있는 정치인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총기를) 중단시킬 용기가 있는걸까.'
미국의 아동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총기사건으로 희생될 확률이 13배나 높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미치광이나 범죄자때문이 아니라 총기를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공중보건전문가인 데이빗 헤먼웨이에 따르면 5살부터 14살의 미국 아이들이 총기사고로 희생될 확률이 다른 선진국보다 무려 13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 순간 매 20분마다 총기에 의해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동들은 학교내에서 계단과 창문 등 세세하게 명시된 건물안전조항에 의해 보호되고 학교버스도 안전기준이 있으며 스쿨버스 운전자는 시험에 통과되야 한다. 학교음식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연방안전규정에 따르면 사다리 사고 예방에 관한 조항은 무려 5페이지에 달한다. 사다리 사고로 죽는 숫자는 연간 300명에 불과하지만 총기는 100배인 3만명이다.
심지어 장난감 총에 관한 규제조항은 있지만 입법가들은 전미총기협회(NRA)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놀라울 정도의 허약하다. 총기살인범에 맞서는 영웅적인 교사들과 비겁하고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극단적인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 25년간 테러리스트의 공격과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숫자를 합친 것보다 지난 6개월 사이에 총기살인과 자살한 미국인의 숫자가 더 많다.
총기규제의 시작은 불법총기업자들에게 총기가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정만 사도록 규제하고 고성능 무기전문잡지의 판매도 제한해야 한다. 총기 구매자들의 신원조회를 의무화하하는 한편 총기의 시리얼 넘버를 지우기 어렵게 만들고 총기 추적이 가능하도록 탄약창에 마이크로스탬프도 찍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도성명에서 “우리는 지난 수년간 너무 많은 비극을 우리는 감내해야 했다”고 말했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희생자 애도가 아니라 이 나라의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이것을 바꾸기 위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자. 1996년 호주는 35명이 사망한 총기참사이후 특정한 장총에 대한 규제조치를 단행했다. 6만5천정의 무기가 회수되고 더욱 강력한 면허조항이 부과됐으며 공공기관의 무기들에 대한 안전도 강화됐다.
법 시행전 18년간 호주는 13건의 총기난사사건이 있었지만 지난 14년간 단 한차례만 발생했다. 민간에 의해 발생한 총기사고는 5분의1로 줄어들었다. 총기살인은 40% 이상, 자살도 50% 이상 줄었다.
이웃한 캐나다에선 총을 사려면 28일을 기다려야 한다. 총을 구입할 때 두사람의 보증인도 필요하다.
총기와 마찬가지로 일부 자동차 사망사고도 법을 위반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 발생한다. 지난 1950년대이후 안전벨트 의무화, 에어백과 유아용좌석, 충돌시 안전기준 강화, 연령에 따라 제한된 면허를 주고 운전시 휴대전화를 할 수 없도록 규제한 덕분에 미국의 자동차 사고 사망률이 90% 가까이 줄었다.
우리중 일부는 이러한 안전조치 덕분에 살아 남았다. 만일 총기에 대해 동등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와 우리 아이들 일부는 그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