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사태가 반 카다피 세력과 카다피 친위세력의 내전상황으로 치닫는가운데 리비아에 있는 우리 교민들이 지난달 26일 첫 전세기가 도착하는 등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비아의 상황은 뉴스를 통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에서 ‘리비아의 새벽강스토리’를 연재했던 새벽강 님도 가족들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리비아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뉴스로는 새벽강 님이 전하는 나흘간의 숨막히는 탈출기를 긴급 게재합니다. 리비아 현지에선 일체의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출국하는 모든 외국인들의 카메라를 압수하고 휴대폰 심(Sim)카드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합니다. 새벽강 님이 몰래 촬영한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가슴졸인 탈출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2월21일 월요일
퇴근 후 리비아사태에 관한 대책회의를 했다. 쿰스 현장, 자위야 현장, 트리폴리 설계팀, 리비아지사 등지에서 직원들이 모여서 최근 리비아 벵가지를 비롯한 서쪽지역 정세변화를 알려주고 대책을 알려주고자 모였다.
회의에서 현재 벵가지가 시위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고 주변현황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또한 밤이 되면 집에서 나오지 말고 자동차도 현지인이 운전하는 차가 아니면 타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가스, 물, 쌀, 등 생필품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현장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물을 사러 갔다. 리비아는 식용물은 사서 먹기 때문에 1.5리터, 1리터, 500밀리미터, 20리터 물통을 수퍼에서 살 수가 있다. 100여여 개 물통을 사서 집에 들여 놓고 가스는 내일 사러 가기로 집사람과 얘기하고 자리에 누웠다.
2월22일 화요일
출근해서 리비아현지 직원이 하는 이야기가 벵가지에서 200여명이 죽었다고 하면서 근심을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총기를 난사(亂射)하는 군인은 아프리카 용병들이라고 하면서 심한 분노를 터뜨렸다. 오후 점심을 먹고 나자 모두들 빨리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귀가를 종용했다.
4시쯤 동료의 차를 타고 집에 귀가했다. 아내와 함께 가스를 사러 가스집으로 갔다. 가스는 우리나라 LPG통 모양으로 생긴 것 2종류가 있는데 우리집에서는 작은 통으로 하나를 구입하면 한 달은 사용할 수 있다고 하길래 작은 통을 구입하러 갔다. 내가 사는 잔주루(Janzour)라는 트리폴리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 전체를 돌아다니며 가스집을 찾았으나 한결같이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없이 내일 다시 사러 오자며 집으로 왔다.
그 날 저녁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가정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갔다. 식사 후 리비아사태를 걱정하면서 내일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는게 좋겠다고 해서 비행기표만 있으면 돌아가자고 말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2시, 한국시각으로 아침9시 회사지정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보았으나 오늘은 없고 가장 빠른 것이 수요일 3시45분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예매했다.
아침에 출근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출근을 하지말고 대기하는게 좋겠다는 지사연락을 받고 집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리비아현지 직원이 같이 출근하자며 집앞에 왔길래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가서 상황을 점검하러 갔다.
시공사인 중국인들도 우왕좌왕(右往左往)하며 근심어린 목소리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를 한다. 간밤에 중국 다른 캠프에 시위세력이 침입하여 차량과 컴퓨터 등을 빼앗겼다고 하면서 걱정했다. 어제 우리 회사 본부사무실에도 시위대가 들이닥쳐 현금과 컴퓨터, 차량을 털어갔다는 것이다.
현장은 튀니지 국경에서 써트까지 620km가 넘는 대규모 철도건설현장이라 캠프가 7군데가 나누어져 있다. 서둘러 현장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내일 아침에 비상회의를 게스트하우스에서 열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2월 23일 수요일
아침 9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비상회의를 했다. 어제 벵가지 자위야 현장에 있던 직원이 시위대의 습격으로 중국캠프에서 차량과 컴퓨터를 탈취(奪取)당하고 숙소에서 몸만 빠져나와 현지인 집으로 가서 숨어 있다가 게스트하우스로 왔다고 했다. 숙소에 개인용품을 모조리 남겨두고 와서 옷가지도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본사의 방침이 정해졌다. 신속히 트리폴리를 빠져나와 귀국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귀국하느냐는 것이다. 일단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전원이 토요일, 일요일 비행기로 나누어 일단 인근국가라도 나가자고 결론을 내리고 여행사에 요청했다. 비행기표는 예약이 되었다고 했다.
예약일에 공항에 가면 되는데 변수가 생겼다. 아침에 BBC, 알자지라 등 방송에서 트리폴리 공항이 폐쇄되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행기 표만 있다면 공항에서 기다리자고 했다. 실제로 이 날 비행기표를 예매한 3명의 직원이 공항에 갔다. 우리 가족도 점심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리비아 운전기사가 운전하면서 공항으로 갔다. 도중에 군경이 검문을 했으나 리비아 직원이 설명을 잘 해서 별 탈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 때가 오후 3시쯤. 공항주변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수천 명의 이집트인들이 공항으로 몰린 것이다. 리비아에는 주로 힘든 일을 하는 150만명 정도의 이집트인이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트리폴리에서 차량으로 며칠을 달려 이집트로 돌아갔으나 벵가지 동쪽 국경이 막혀 달리 갈 곳이 없어지니 공항으로 온 것이다.
이고 진 보따리와 함께 몇 개의 담요, 살림살이 등 모든 짐을 가지고 공항에 몰리는 바람에 공항청사 내부가 다 차버렸고 한데 밖에 나와서 담요를 몇 개를 감싸고 며칠 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거기서 자고 먹고 버리고 했으니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 트리폴리 공항청사엔 수많은 이집트인들이 며칠째 탈출하기 위해 대기 하느라 난장판이었다. 리비아 당국이 외국인들의 카메라를 압수하거니 휴대폰 심(Sim)카드를 파괴해 몰래 찍은 단 한장의 사진이다.
정작 공항에 도착했지만 엄청난 인파 때문에 청사 내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내가 예매한 에미레이트 항공은 3월1일까지 운항을 중지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TV를 보면서 사태를 지켜봤다. 그날 밤 카다피는 TV에 나와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대가 점령한 도시를 탈환(奪還)하라고 소리 질렀다.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집앞 도로에는 많은 차량이 경적(警笛)을 울리고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총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과 집사람이 무척 놀라고 힘들어했다. 시위대가 경적소리를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낮시간까지 되던 인터넷과 전화가 끊어졌다.
점점 불안해졌다. 사실 이웃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위가 벌어질 때만 해도 이곳 리비아는 괜찮을 거라고 다들 말들 했다. 리비아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등이 많이 생산되는 부유한 나라이고 빵과 집, 기름은 거의 공짜 수준으로 국민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42년째 통치자가 바뀌지 않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교민들과 현지인들 말로는 교도소 문을 개방하고 죄수들까지 풀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밤만 되면 두려움이 몰려왔다. 죄수들까지 풀려났으니 언제 집으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또한 시위대를 진압하라고 민간인 지지세력들에게 총기를 나누어 주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내전(內戰), 전쟁속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어떻게든 리비아만 나가자는 아이들과 아내의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들려왔다. 한가지 단비와 같은 소식이 들렸다. 정부에서 전세기를 보낸다고 원하는 사람들은 신청하라는 연락이 왔단다. 가족과 연장자 우선에 따라 우리 가족이 선정되었다. 함께 갈 회사 직원포함 20명이 명단에 올랐다. 내일 아침 7시반까지 공항에 도착해야하니 6시반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오라고 했다.
<하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