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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홍태의 발칸반도에서
지중해의 바다를 조망하는 '사하라의 진주' 리비아를 거쳐 코발트 블루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아부다비, 그리고 유럽대륙의 남쪽 발칸반도까지. 파란과 곡절의 현대사가 담긴 지역을 누비는 한국의 싸나이가 전해주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동부와 남부 유럽의 일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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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자스민혁명 그후 1년

글쓴이 : 제홍태 날짜 : 2012-03-27 (화) 20:41:22

 

따뜻한 봄볕이 노란 꽃들을 어루만져 한국의 아스라한 봄을 느끼게 한다. 1년 전 그리 춥고 바람 불던 공항이 자유의 공기가 바꾸어 놓았을까 어찌 이리 다를까? 추위와 고통 속에 이 나라를 떠나고자 공항입구를 가득 메운 이집트인들의 어지러운 가재도구와 몸부림이 사라지고 원래의 깨끗한 공항의 대기실이 눈에 들어왔다.

  

1년여만에 다시 들어온 트리폴리 공항이다. 평소 길게 늘어서 여권검색대를 기다리던 사람이 이제 몇 명만 서있었다. 아부다비에서 6시간30분을 날아왔다. 직항이지만 비행기에는 1/3정도만 타고 있었다.

공항을 나와 집이 있는 잔주르에 가기까지 조용한 시골도시의 풍경이 옛집에 다시 온 그 느낌이었다. 거리에는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전쟁 후인지라 뭔가 도시가 한 꺼풀의 색이 벗겨진 듯한 모습이다. 자유로운 국가를 이루기 위해 2만명이 넘는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42년간 獨裁(독재)의 그늘에서 살다가 맞이하는 삶의 기준과 목적은 많이 다를 것이다.

 

살던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잔디밭에 잡초가 무성했다. 매일 주던 물을 주지 않아서인지 잔디는 많이 말라있었고 낯선 잡초가 빈 집임을 알려주었다. 리비아 집 주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더니 먼지가 뽀얗게 쌓인 현관에서부터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낯선 생물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나 보다.

얼른 둘러봐도 가재도구들이 제자리에 있고 분실된 물건들이 없었다. 다행이다. 전쟁 통에 인근 한인 집은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집안의 전등까지 다 털어갔다고 하는데 주인이 옆에서 살고 있었던 곳이라 피해가 없었다.

얼른 창문을 열고 換氣(환기)를 시켰다. 대충 둘러보고 집에서 자는 것은 무리여서 함께 지냈던 한인의 집으로 갔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전쟁 통에 리비아를 떠났지만 극히 일부 한인은 한국으로 떠나지 않고 계속 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를 하시는 분의 가정과 혼자서 사업을 하시는 분 등 열 명이 되지 않는 한인은 리비아를 떠나지 않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있을 곳이 없거나 오래 전 여기에 정착하여 삶의 기반을 이 곳에 두고 있는 분들은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음날 식사를 하고 잠시 동네를 둘러봤다. 내가 살던 잔주르란 곳은 트리폴리 외곽의 외국인이 많이 사는 거주지다. 서울로 보면 분당이나 일산 정도 된다. 집 앞 사거리에 없던 조형물이 보였다. 비석이 보이고 국기 게양대마냥 쇠기둥이 가운데 있는 기념비처럼 보였다.

 

함께 한 리비아직원에게 물어보니 전쟁 중에 잔주르에서 사망한 46명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慰靈碑(위령비)라고 했다. 거리의 상점이나 도로, 집들은 전쟁을 치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으나 위령비가 전쟁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아직도 총기가 다 회수되지 않아서 가끔 트리폴리 외곽에서 市街戰(시가전)이 일어나서 희생자가 생긴다고 한다. 정부가 분명하게 들어서서 통제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다. 내년 6월에 대선을 한다고 하니 앞으로 1년이상 더 기다려야 제대로 된 민간정부가 일을 할 것 같다.

시내 번화가는 어떨 지 궁금했다. 시내 곳곳에 가다피시절 이전의 리비아국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집에도, 차에도, 가로등에도.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거리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으나 국가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지 시내 도로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났다. 가장 큰 쇼핑몰 주변 도로 양 옆으로 쓰레기가 쌓여서 차 안에서도 惡臭(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가다피가 살던 컴파운드는 폭격으로 대부분이 부서졌고 군부대도 연합군의 정밀폭격으로 대부분 부서졌다고 한다. 거리에는 먼지에 덮인 차량들도 도로를 가득 메웠다. 휘발유가격이 리터당 200원에서 150원으로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쟁전보다 차량이 더 많아 진 것 같다. 다른 물가는 올랐다. 식당의 음식값도 올랐고 공산품의 가격도 올랐다.

  

시내 중심가인 그린광장도 예전의 푸른 잔디가 관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퇴색되고 간판들이 부서진 채 세워져 있었다. 내려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리비아직원이 아직 조심스러우니 안 찍는 게 좋다고 한다. 할 수없이 달리는 차 속에서 셔터를 몇 번 눌렀을 뿐이다. 도심주변 담벼락에는 가다피를 戱畵(희화)화한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고 붉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어지럽게 아랍어로 낙서를 해놓았다.

 

3월 15일 과도정부는 병원 학교를 우선으로 하는 685억디나르(한화 약 63조원)의 發注(발주)를 승인했다. 이를 두고 미국업체를 비롯한 국내건설업체도 속속 도착하여 전후 복구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새롭게 사무실을 정비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의 트리폴리, 리비아를 그려본다. 2000km의 지중해 해안을 끼고 있고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많은 기독교유적지와 로마유적지 그리고 사하라사막. 자유로운 국가 리비아. 리비아국민은 두바이를 능가하는 새로운 리비아를 기대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달성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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