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감독의 승부조작(勝負造作)으로 프로농구계가 벌집 쑤신듯 시끄럽다. 프로축구 프로야구 프로배구에 이어 청정지역(?)이던 프로농구까지 승부조작의 멍에를 뒤집어썼다는 비분강개(悲憤慷慨)가 쏟아지고 해외스포츠의 사례들과 이런저런 처방까지 입달린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든다.
스포츠가 있는 곳에는 늘 승부조작의 위험성이 따른다. 특히나 프로스포츠가 도입되고 스포츠 복권 등 사행성 게임이 가세하면 이를 통해 대박을 노리는 검은 유혹으로 조작의 개연성은 높아진다.
강동희 감독이 구속됐지만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섣부른 비난에 가세할 생각은 없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악의 승부조작 스캔들로 불리는 1919년 월드시리즈도 관련된 화이트삭스 선수 8명이 일부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훗날 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유죄가 입증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돈거래가 있었음을 당사자도 인정했고 승부조작 댓가로 돈을 주었다는 상대의 증언도 있으니 강 감독이 떳떳하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일각에서는 연봉을 수억원 받는 스타감독이 뭐가 답답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거래를 하냐고 하지만,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인 시즌 막판 뒷탈이 없을것 같으면 못할것 없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물며 한 매체의 보도처럼 그가 도박자금으로 탕진했다면 도박빚이나 중독의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동희 감독의 스캔들은 나타난 정황만 보더라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번 사건은 한국스포츠 스캔들 사상 최악의 것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MLB에 견주면 신시내티 감독시절 승부조작에 연루돼 명예의 전당 입성(入城)에서 영구제명으로 추락한 피트 로즈를 쩜쪄먹는 메가톤급 추문이다.
KBL 한선교 총재는 사건직후 강 감독의 유죄가 입증되면 영구제명 될 것이라고 했다. 구속된 다음날인 12일엔 대국민사과를 통해 제도개선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장본인에 대한 일벌백계(一罰百戒)야 당연하다 치지만 재발방지책으로 내세운 신인드래프트제개선과 선수협의회 창설은 아연할 따름이다. 대체 강감독의 승부조작과 신인드래프트제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선수협의회 창설은 또 뭐고.
아다시피 신인드래프트는 프로농구 10개팀중 6강에 오르지못한 4팀에게 전력강화의 어드밴티지를 주기 위해 순위에 따라 지명확률을 차등배분한 것이다. 내년부터는 고의로 6강탈락을 자청하는 폐단(弊端)을 없애기위해 6강 탈락 4개팀에게 15%의 지명확률을, 3~6위팀에게도 10%의 확률을 배분하기로 지난달 이사회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한총재는 차등배분 하지말고 8개팀에게 고른 지명확률을 주자고 나섰다.
지금 사건은 돈을 받고 승부조작을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신인드래프트제를 개선하면 승부조작이 방지된다는 말인가? 대형신인을 뽑기 위해 고의적인 순위하락이 의심되는만큼 제도개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이다.
그러나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강감독이 대어를 뽑을 확률을 높이고자 순위하락을 유도한게 아니라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했다면 엄청난 범죄행위 그 자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스포츠복권사업판을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변질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신인드래프트제를 개선하겠다니? 뜬금없어도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을까. 선수협의회를 창설한 뒤 모든 선수의 연봉 1%를 공제해 은퇴선수 생활방지책을 만든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강감독이 노후(老後)가 걱정돼 승부조작의 댓가로 돈을 받아 연금저축이라도 하려 했다는건가?

photo by 뉴시스 조종원기자
지금 KBL이 해야 할 일은 한선교 총재이하 임원들이 총사퇴하고 국민들에게 석고대죄(席藁待罪石膏) 하는 것이다. 총재가 되기 전의 일이라서 도의적 책임이 없다고? 그렇다면 대국민사과는 왜 하는가. 한국 농구 100년 역사가 돌이킬 수 없는 똥칠을 하고 농구판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다. 과거의 당사자는 물론이고 당연히 KBL 최고 수장(首長)이 책임을 져야 한다.
차라리 “이번 일을 마무리하고 그만두겠다”라는 자세라도 취했다면 동정의 여론이라도 나왔을지 모르겠다. 말로만 대국민사과하고 한가롭게 제도개선 운운이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이번 사건은 KBL 임원진의 총사퇴로도 끝날 일이 아니다. 한국농구를 살리려 한다면 프로농구리그 자체를 재고(再考)해야 한다. 필자는 농구기자로서 프로농구가 출범하는 대변혁의 현장에 있었다.
KBL은 그전까지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던 전통의 농구대잔치를 발판으로 출범했다. 문제는 밟고 올라선 정도가 아니라 농구대잔치를 아예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목도 서서히 조여나갔다.
90년대 중반 농구대잔치의 인기가 절정으로 치솟은 것은 실업팀을 이기는 대학팀들이 등장한 덕분이었다.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서장훈(이상 연세대)와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이상 고려대) 등 ‘오빠부대’의 우상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최희암같은 대학의 스타감독도 탄생했다.
영스타들에 맞선 허재 강동희 김유택(이상 기아차) 등의 실업팀 스타들의 맞대결은 1만4천석의 체조경기장을 매진시키고도 남는 빅카드를 연이어 만들었다.
실업팀들로선 수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농구 인기가 큰데 이제 프로리그를 해야할 때가 아니냐고, 대학팀과 경기해서 스타일 구기지 말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는 모태(母胎)인 실업야구와 실업축구의 인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프로리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농구는 달랐다. 농구대잔치는 어떤 프로리그 부럽지 않을만큼, 남는 장사의 리그였다. 그것은 대학이 잘나서도, 실업이 못나서도 아닌, 개성이 다른 팀들간의 예기치 못한 승부, 풋풋한 대학스타들과 노련한 실업스타들의 맞대결이 가져오는 짜릿함 덕분이었다.
강조하자면 세계 어느 프로농구도 갖지 못한 소중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것이 90년대의 농구대잔치였다. 그러나 프로리그 출범을 꿈꾸는 일부 농구인들에게는 꼭 빼앗아야 할 헤게모니였을 따름이다.
승부조작은 잘되는 잔치상을 걷어차고 그네들의 욕망을 위해 좌판을 새로 연 KBL의 원죄다. 프로리그가 있으니 스포츠복권과 같은 합법적인 사행제도도 나온 것이다. 승부조작을 근절하려면 아마추어로 돌아가 국가가 합법화한 사행사업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한선교 KBL 총재는 승부조작을 제보하거나 자진신고하면 포상금 1억원을 주겠단다. 막말로 간첩신고 포상금이 있다고 간첩이 없어졌는가. 승부조작은 안면있는 자들간의 모의인데 포상금때문에 고발을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나마 포상금도 법원에서 혐의가 입증되야 받을 수 있다. 신변보호를 해줄 것도 아닌데 조폭의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누가 신고하겠는가.
신고포상금의 무용(無用)함은 이미 문화관광체육부가 승부조작 관련 제보시 1억원의 신고포상금을 책정해놓은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술 더떠 문광부는 12일 신고포상금을 100% 인상해 2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아무려면 포상금이 적어 승부조작을 했단 말인가. 이 모두가 국민들게 돌 맞기 두려워 어리석은 꾀를 낸 전시행정(展示行政)이 아닌가 싶다.
승부조작의 근본 대책은 학교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학원스포츠의 정상화와 맞물린 이야기다. 한국의 운동선수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진정한 프로도 아닌, 정체성을 상실한 왜곡(歪曲)된 스포츠맨십의 세계에 포위돼 있다.
아다시피 한국의 학교선수들은 공부는 뒷전이다. 평상시에도 대부분 오전수업만 받고 오후부터 훈련에 들어간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개인훈련에 지친 선수들은 오전수업을 받는 것도 힘들다. 중요대회가 열리면 며칠전부터 아예 수업을 전폐한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학교를 빠지다가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지만 학교수업은 이미 따라잡는게 불가능하다.
공부가 아니라 운동에 올인하는 제도인 것이다. 본분인 공부를 도외시하고 주야장천(晝夜長川) 운동만 하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십여년전 한 농구스타의 아버지는 사석에서 “우리 아들은 국졸”이라고 한탄했다. 말인즉 “초등학교 졸업이후 공부를 제대로 한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특수한 공간에서 특수하게 성장한 환경의 문제는 선수들로 하여금 정서적 결핍의 위험성을 가져올 수 있다. 오랜 세월 합숙 등 집을 떠나 단체생활을 많이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화투와 트럼프 등 도박성 오락에 노출되는 환경때문이다. 돈내기 오락 등 이런저런 도박류에 익숙해지면서 중독이 되고 도덕적 해이가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모 감독은 프로 팀을 지휘하던 시절 유독 일본전지훈련을 즐겼다. 몇 번 전지훈련에 동행했을 때 연습장과 경기장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노상 빠찡꼬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를 보았. 취미나 심심풀이라고 보기엔 정도가 심했다.
연례행사이지만 KBL이 용병드래프트를 대부분 라스베가스에서 하는 것도 기왕이면 카지노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모아진 것이라면 과도한 생각일까.
학원스포츠의 정상화를 통해 더 이상 학교선수들을 승부에만 매몰(埋沒)되게 하지 말고 또래 구성원들과 어울리며 독서도 즐기고 충분한 정서 함양과 문화생활도 체험해야 한다. 그런 환경속에 성장한 스타선수들이라면 도박 등 잡기에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자기 인생을 순식간에 파멸시킬 수 있는 승부조작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거뜬히 뿌리칠 것이다.
한국농구인들에게 진심으로 조언한다. 절대 이번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프로농구리그의 전면 해체를 포함한 모든 선택을 놓고 국민대토론회를 열어 농구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길 바란다.
97년 프로리그가 출범할 때 주도자들은 농구발전과 저변확대, 팬들을 위한 새로운 즐거움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과연 그렇게 됐는가.
농구대잔치 시절엔 그래도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다투기라도 했고 예선탈락을 할지언정 올림픽에도 나갔다. 그러나 이젠 아시아 정상은 커녕 4강도 힘든 처지다. 그나마 혼혈 귀화 선수들이 없다면 대표팀 수준은 참담한 그 자체일 것이다.
저변확대는 되었는가? 초중고대팀의 선수숫자는 되레 줄었다. 초중고 지도자들이 어렵사리 유망주를 찾아도 요즘 부모들은 “당신이 우리 애 인생을 책임질 수 있냐?”며 대부분 농구를 시키지 않는다. 과거엔 어지간히 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친구따라 강남가듯’ 실업에 업혀가서 은퇴후 직장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젠 대학문도 좁아졌고 전공은 체육학이 강제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프로선수가 되지 않으면 먹고사는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다. 어럽게 프로선수가 되어도 심각한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순간 끝이다. 평생직장? 언감생심, 프로에 그런말이 어디 있는가.
지금의 프로리그가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가? 미국 용병들의 현란한 플레이? 솔직히 NBA 근처도 못간 미국의 2류선수들에게 농락당하는 토종스타들을 보는 팬들은 괴롭기만 하다. 용병의 존재는 농구의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한게 아니라 토종선수들의 자리를 갉아먹었고 몇 안되는 토종스타들의 권위를 여지없이 짓밟았다. 농구에 대한 실망감만 커진 것이다.
만일 프로농구가 출범하지 않고 농구대잔치를 잘 키워나갔다면 오늘날 농구는 훨씬 많은 팀과 유망주들이 발굴되고 새로운 스타들이 넘쳐나는 겨울스포츠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농구대잔치가 그립다는 사람들이 많다. 고질적인 판정시비는 있었을망정 추악한 승부조작의 범죄는 없었던 농구다. 입추(立錐)의 여지없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개성있는 많은 스타들의 명승부에 열광하는 팬들의 즐거움을 프로농구는 송두리째 앗아갔다. 한국농구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KBL을 해체하고 농구대잔치를 부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