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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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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벌에서 피어난 ‘한민족’의 애틋한 서사

12년만의 남북축구대결 취재기
글쓴이 : 로빈 날짜 : 2026-05-21 (목) 11:52:10

12년만의 남북축구대결 취재기

 


 

차가운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리는 20일 수원종합운동장. 그곳은 단순한 축구 경기장을 넘어 ‘분단’이라는 육중한 벽을 허물어뜨리려는 거대한 소망의 현장이었다.

 

북녘 내고향축구단과 수원FC 위민의 맞대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도 6천여 관중달려온 것은, 승패라는 숫자보다 더 큰 ‘민족’이라는 이름의 뜨거운 숨결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경기장 앞은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 희망래일 등 200여개 단체가 구성한 공동응원단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안남도중앙도민회를 비롯한 실향민 단체가 '축구천하지락' 만장과 독립투사들 초상이 그려진 대형 걸개를 들고 북과 꽹과리로 신명난 온기(溫氣)를 뿜어냈다.





 photo by 이기묘 


혹여나 서로 눈길조차 외면할까 노심초사(勞心焦思)했던 관중들의 우려와 달리, 두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가볍게 손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눴다. 분단의 세월을 비껴가는 작은 평화의 시작이었다. 국제적 관행에 따라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그들의 모습이 관중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경기는 치열한 전술과 투혼의 경연장이었다. 수원FC 위민은 고전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전반전 슈팅 수 10대 1이 말해주듯 일방적인 공세를 펼쳤다. 낯선 환경과 폭우라는 악조건 속에서 특유의 조직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지만 내고향 선수단도 강력한 우중 투혼으로 맞섰다.

 

수원 위민으로선 두차례나 골대를 맞고 나오는 불운이 안타까웠다. 전반은 득점 없이 끝났지만, 빗물을 가르며 몸을 부딪치고 슛을 날리던 선수들의 투지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photo by 이명옥


후반 4분, 수원 위민은 하루히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균형을 깼지만, 경기는 곧 드라마틱한 반전을 맞이했다. 후반 10분 내고향 최금옥의 동점골, 이어 12분 김경영의 역전 헤더가 연달아 터지며 전세가 뒤집혔다. 하지만 최후의 정점은 후반 30분, 수원FC의 주장 지소연의 페널티킥 순간이었다.

 

박주경 골키퍼의 움직임은 속였지만 슛이 골문을 빗겨가자 지소연은 차가운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았고 결국 패배를 확인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 눈물은 승리를 향한 갈망이자, 홈 관중들 앞에서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경기 후 울먹이며 팬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던 박길영 감독의 모습 또한, 승패를 넘어선 지도자의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수원FC는 비록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이번 경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경기 내내 관중석 한편에서 “내고향”을 응원하고, 또 한편에서는 수원FC를 향해 목청을 높이던 그 뜨거운 열기들이 결국 하나의 ‘코리아’를 향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남북의 선수들이 빗속에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땀을 흘린 이 90분의 시간은, 지난날의 차가운 냉기를 녹이고 다시금 해빙(解氷)의 시대로 나아가는 작은 마중물이 될 것이다.



 photo by 민추본 


내고향은 오는 23일, 같은 장소에서 도쿄 베르디 벨레자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있다. 이제 관중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북에서 온 내고향 선수들을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번 방한을 통해 북녘의 선수들이 동포의 따뜻한 정을 한껏 품고 돌아가기를, 그래서 언제 그랬냐는 듯 남과 북이 다시금 풍성한 교류를 나누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비에 젖은 수원종합운동장의 불빛 아래, 우리는 승패를 떠나 서로의 존재를 뜨겁게 확인했다. 빗줄기는 그치고,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흐르는 평화의 염원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photo by 민추본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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