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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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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신데렐라' 황선애를 기억하시나요

글쓴이 : 로빈 날짜 : 2010-06-05 (토) 06:27:36
 
▲한국선수단이 우버컵 우승후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사진=국제배드민턴연맹>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스포츠가 세계 무대에서 빛을 낸다는 것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아시아의 강호 소리를 듣던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4대 스포츠도 아시아의 라이벌간의 대결이 국민적 관심사였을뿐이다.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제외하곤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약간이나마 조명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월드컵은 54스위스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86멕시코 월드컵까지 32년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으니 논외로 하고 올림픽조차 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에서 양정모가 금메달을 따낸게 해방 후 첫 쾌거였던게 아닌가.


36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따낸 금메달은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것이니 그로부터 40년후 몬트리올에서 따낸 유일한 금메달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감격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렇게 힘들었던 금메달을 이젠 올림픽에서 두자리수를 기록하고 지난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종합5위의 깜짝 성적을 거둘만큼 대한민국은 이제 스포츠강대국의 범주에 든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72년 이회택이 지금의 박지성을 능가하는 국민스타였을 때 ‘축구황제’ 펠레의 산토스 클럽을 초청해 우리 대표팀이 3-2로 패했을 때 세계적인 클럽을 상대로 두골이나 넣었다고 우리 언론이 흥분했던 것도 기억에 새롭다.


그 시절엔 유럽 남미의 대표팀은 커녕, 현지의 유명 클럽들과도 변변히 경기할 기회가 없었고 경기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척박한 풍토에서 최초의 국제적인 스타는 단연코 차범근이었다.


79년부터 89년까지 308게임에서 98골이라는 외국인선수 최다출장 최다골을 기록한 차범근이 있었기에 세계 축구는 한국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고 2년 후배인 허정무의 네덜란드 리그 진출 등 한국 선수들의 유럽무대 진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야구로는 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찬호가 성공한 것이 한국선수 1호이니 축구에 비하면 15년 정도 늦은 셈이다. 그렇다면 축구나 야구와 같은 메이저종목을 제외하고 한국선수가 세계무대에 널리 이름을 알린 최초의 선수는 누구일까. 


아마도 배드민턴의 황선애일 것이다. 1981년 1월 일본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2월 대만오픈, 3월 전영오픈을 휩쓸면서 황선애는 일약 국제 배드민턴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지금이야 배드민턴이 올림픽의 효자종목 소리를 듣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배드민턴은 이웃 일본에 10년 이상 뒤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국제 무대 경기는 생각하기 힘든 철처히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황선애 스스로도 일본 오픈 대만 오픈을 연속 우승하면서도 자기 실력보다는 상대가 부진해서 이룬 결과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말해 무엇하랴. 당시 세계 배드민턴계는 듣도보도 못한 한국의 선수가 세계 강호들을 압도적인 실력차로 연파하는 것을 보고 ‘동양에서 온 마녀’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전영오픈이 어떤 대회인가. 100년의 역사가 넘는 단일대회로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이다. 이 대회에 처녀 출전한 선수가 덥썩 우승을 차지했으니 그 충격파가 얼마나 대단했을 것인가.


당시 국내 종합지들은 스포츠면이 한면이 고작이었는데 황선애의 우승에 외신들이 흥분해 뉴스들을 쏟아내자 이를 번역소개하며 국내보다 외국에서의 상찬에 어리둥절한 모습도 보였다.


황선애의 우승은 한국을 일약 주목할만한 국가로 만들었고 배드민턴인들의 자신감에 불을 질렀다. 황선애에 이어 배드민턴사상 최고스타로 꼽히는 박주봉이 등장했고 찰떡파트너 김문수, 성한국, 김연자 유상희 정명희, 정소영 등 걸출한 스타들이 동시대에 활약하면서 단숨에 세계적인 배드민턴 강국이 되었다.


스포츠기자가 되기전 85년 대한체육회에 첫 직장을 잡았었다. 무교동에 체육회관이 있던 시절 체육회에는 30여개의 가맹단체 사무실이 한지붕 아래 있었는데 입사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에 파견근무를 자청한 것도 기실 황선애의 활약으로 인한 호감때문이었다.


운좋게도 그해 6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섭외담당으로 대표팀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그 대회가 황선애가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한 사실상의 마지막 대회였다.


남자를 능가하는 파워와 기술로 80년대초 세계를 호령한 황선애는 안타깝게도 무리한 출전으로 몸이 만신창이였고 84아시안게임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일세를 풍미한 스타였음에도 선머슴아같은 표정으로 말수가 적었던 황선애의 표정이 떠오른다.


황선애가 황금기의 신호탄을 쏜 이래 한국 배드민턴은 엷은 선수층과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감내하면서도 김동문 길영아 방수현 이용대 이효정 등 스타들을 배출하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일군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한국도 이루지 못한 전인미답이 있었는데 바로 토마스컵과 우버컵이다. 배드민턴은 단식과 복식, 남녀가 혼성이 된 혼합복식의 개인종목과 단식 세경기와 복식 두경기를 치르는 단체 종목이 있다.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예외없이 개인종목들이다.


토마스컵은 남자단체전, 우버컵은 여자단체전을 이르는데 세계개인선수권은 홀수해에, 토마스컵 우버컵은 짝수해에 열린다. 전통적으로 복식에 강한 한국은 단식이 3종목 포함된 단체전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한국이 지난 5월 15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우버컵에서 7연패를 노리던 중국을 물리치고 사상 첫 우승의 위업을 일궜다. 당시 뉴스를 접한 필자는 한국배드민턴의 새로운 역사를 일군 쾌거에 놀랐지만 미적지근한 한국내 보도와 여론에 안타까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우승이 확정된 후 선수들 코트로 몰려나와 부둥켜 안고 감격해 하고 있다.<사진=국제배드민턴연맹>


한국의 우버컵 우승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데 국내 언론과 대부분의 팬들이 그것을 거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 우버컵 결승에서 한국은 단복식에서 세계 랭킹 1위인 상대선수들을 잇따라 제압했다. 세계랭킴이 10위내 선수가 한명도 없는 한국이 상위 랭킹을 독점한 중국을 토털 3-1로 이겼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결승서 한국 선수들에 세 번 패할 때까지 이번 대회에서 단 한 선수도 진 적이 없는 그야말로 무적의 강호였다. 물론 중국이 역대 최강이었다해도 이변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해도 하나도 아니고 세 경기에서 이변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더구나 경기장은 중립지역이라 할 말레이시아 아닌가.


경기내용은 황홀할 정도다. 제1단식에서 배승희(KT&G)는 ‘2009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세계랭킹 1위 왕이한을 맞아 완패의 예상을 뒤엎고 1세트를 듀스 끝에 22-21로 꺾는 등 세트스코어 2-0으로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 상대 서비스를 기다리는 배승희 <사진=국제배드민턴연맹>


기적은 계속됐다. 제1복식의 이효정(삼성전기)-김민정(전북은행) 조가 세계랭킹 1위 마진-왕시아올리 조에 1세트를 21-18로 내준 후 잇따라 두세를 따내 2-1 역전승을 일군 것이다. 세 번째 경기인 제2단식 성지현(한체대)의 상대는 세계랭킹 2위 왕신. 비록 패하긴 했지만 한 세트를 따내는 등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았다.


운명의 승부는 4번째 경기인 제2복식조. 제1복식에서 승리를 일군 이경원이 다시 하정은과 짝을 이뤄 세계랭킹 2위조인 두징-유양 조와 격돌했다. 1세트는 접전 끝에 19-21로 아쉬운 패배. 그러나 이-하 조는 2세트를 21-15로 마무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3세트에서 대공방 끝에 21-19로 승리, 결코 넘을 수 없을 같았던 만리장성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중국의 스매싱 공격이 네트에 걸리며 이경원-하정은 조가 승리를 확정되자 한국 선수단은 코트로 몰려나와 얼싸안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일부 선수들은 코트에 뒹굴며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 경기직후 얼싸안은 선수들 <사진=국제배드민턴연맹>


한국 여자선수단은 지난 1984년 첫 참가한 이래 12회(88년), 13회(90년), 14회(92년), 19회(2002년), 20회(2004년) 등 모두 5차례 결승에 진출했지만 그때마다 중국의 높은 벽에 부딪혀 고배를 들었다.


중국은 지난 22회 대회 중 총 11차례 우승했고 98년부터 2008년까지 6연패를 달성하는 불패 신화를 이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손쉬운 우승이 유력시됐다. 그런 중국을 격파한, 한국 배드민턴사에 길이 남을 위업이 정작 국내에서는 과소평가돼 유감천만이다.


과거보다는 많은 종목들이 팬들의 조명을 받고 있지만 이번 배드민턴의 쾌거에 대한 국내 언론의 맥빠진 반응을 보면 우리가 스포츠강국다운 수준과 인프라를 갖추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robin@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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