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개인에서 이룩한 안세영(22 삼성생명)의 금메달에 온 국민이 기뻐할 새도 없이 이어진 충격적인 폭로(暴露)가 일파만파로 이어지고 있다.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는 양자 공히 미숙한 대응으로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엎질러진 물이지만 정말 아쉬웠던 순간들을 돌이켜보자.

<MBC 촬영>
Scene 1
먼저 안세영의 ‘작심발언’이다. 우승 직후 감격의 세리머니를 한 안세영은 믹스트존으로 이동하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당한) 내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많이 실망했다”며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협회는 모든 걸 다 막고 있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며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이 하나만 나온 건 (협회가)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안세영은 폭로의 시점을 금메달 딴 직후로 잡았다. 기자회견장도 아니고 간이인터뷰 공간인 믹스트존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말들을 했다. 왜 며칠의 여유도 갖지 않았을까. 그만큼 그녀의 분노는 컸다. 오랜 시간 별렀던 이슈가 금메달의 감격에 묻히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터뜨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잔치집이 되어야 할 배드민턴협회는 초상집이 되었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대이상 선전도 빛이 바래졌다. 기자들은 일제히 배드민턴협회의 문제점을 들추기 시작했고 국민들 대부분도 안세영의 분노에 공감했다.
하지만 충격의 강도가 너무 셌다. 안세영이 귀국 이틀째인 8일 SNS를 통해 "제 이야기로 많은 분들을 놀라게 해 드려 마음이 매우 무겁다. 제 발언으로 축하와 영광을 마음껏 누리셔야 할 순간들이 해일(海溢)처럼 모든 것을 덮어 버리게 됐다. 선수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제 입장을 기다리고 계신 많은 분들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들이 충분히 축하를 받은 후 제 생각과 입장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안세영도 폭탄발언의 시기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안세영은 금메달을 내 것처럼 기뻐한 국민들에겐 사과하는 대신 ‘제 이야기로 많은 분들을 놀라게 해 드려 마음이 매우 무겁다’로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안세영은 무엇보다 자신을 열렬히 성원한 국민들에게 가장 먼저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 ‘분노가 얼마나 컸으면 그러랴’ 이해는 했지만 국민들은 그녀의 기습적인 폭로로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하고 어리둥절한채 비난하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Scene 2
협회의 형편없는 대응이다. 안세영의 충격 폭로이후 협회는 한동안 진공상태가 됐다. 회장과 부회장 전무이사 사무처장 등 핵심인력이 현지에 있었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회장은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옹색한 이유로(실은 언론을 따돌리기 위해) 비행편을 바꿔 안세영보다 먼저 귀국했다.
김택규 회장은 안세영 사태 직후 현지에서 기자들을 당당하게 만났어야 했다.
“먼저 선수가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가 있었다고 한 것에 대해 회장으로서 선수에게 미안함과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속히 상황을 파악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다만 이번 일로 선수단은 물론, 음지에서 고생한 모든 이들의 노력이 훼손되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급한대로 이렇게 대처했다면 비난 여론이 폭발적으로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도자료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하루뒤 무려 10장짜리 반박문을 감독 코치의 연대서명까지 받아 공개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협회의 대처는 안세영의 문제제기를 원만하게 풀어가려는 자세가 아니라 한치 양보 없는 한판 대결을 선언한 것이다.
Scene 3
김학균 감독이 안세영의 폭로 직후 “(안세영이) 협회와 법정대결 하겠다는 것”이라고 느닷없이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안세영과 협회의 충돌을 예상한 것이다. 감독으로서 신중치 않은 멘트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파문이 예상되었다면 감독과 코치들은 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한 것인가.
전례없는 금메달리스트의 폭탄 발언은 국제적으로 널리 퍼졌고 각국 선수들의 지지를 받는 모양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남자단식 우승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덴마크 빅토르 악셀센(30)이 대열의 선두로 나섰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악셀센은 11일 안세영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신은 나의 존경과 지지를 가지고 있다”고 댓글을 달았다. 악셀센은 다양한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관리하는 스폰서십 계약을 통해 스포츠용품 등을 홍보하며 최소 수백만 달러를 받는다.
특히 그는 도쿄올림픽 이후 2021년 덴마크 국가대표팀을 떠나 두바이로 이주, 자신에게 맞는 코치진과 훈련해왔다. 당시 덴마크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팀을 떠나는 악셀센에 아쉬움을 표명했지만 “두바이로 이사하기로 한 결정과 새로운 영감(靈感)에 대한 그의 열망을 존중한다. 협회는 그의 이적을 협력이나 엘리트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대인배 성명을 냈다.
악셀센은 영어와 중국어가 굉장히 유창한데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안새룡(安賽龍)이라는 한자 이름도 지었는데, 이 때문에 중화권 커뮤니티에서는 안세영과 같은 안씨에 탁구선수로써 톱 클래스니 안남매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순간 안세영이 가장 바라는 롤모델이 악셀센인지도 모르겠다. 안세영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어떤 식이든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다만 수십년만에 한번 나올만한 선수의 재능이 이번 사태로 악영향을 받지 않고 나아가 배드민턴협회와 여타 단체 등 체육계 전반의 혁신으로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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