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ung Hoon Roh 盧正訓
우리는 우리나라를 모국(母國)이라 부른다. 미국 역시 과거 식민지 시대에 본국인 영국을 어머니의 땅(Motherland) 이라 불렀다. 이는 만국공통어로 봐도 무방하다. 모국이란 말은 있어도 부국(父國)이란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서 국가를 여자(she) 라고도 부른다. 국가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she’ 라고 호칭으로 하는 미국의 언어적 관습이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국가를 여자라 일컫는 것들은 미국의 역사책에서 가장 쉽게 확인 해 볼 수 있다.

한 국가를 성(性)에 빗대에 부르는 미국을 따라 캄보디아의 첫 인상을 표현하고 싶다. 나에게 캄보디아는 여자보다는 남자로 느껴졌다. 물론,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외관상 부드럽고 포근하기보단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낡은 건물들과 비포장 도로, 후덥지근한 날씨 그리고 그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까무잡잡한 피부에서까지.
한국이 경제적인 성장을 통해 선진국 반열(班列)에 올라 선 지금의 시점에서 캄보디아 방문은 금전적으로 여유를 느끼고 부담이 없는 후진국으로의 여행으로 볼 수 있다. IMF 가 언제였던가 싶게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해져버린 다수의 한국인들은 캄보디아는 주위의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혼잡스럽게 다가온다.

다분히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한 자유와 일탈의 환상은 캄보디아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듯 싶다.
하지만 나로서 그런 동경과 그에 따른 실망감을 느낄 일조차 없었던 이유는 애초에 캄보디아에 온 목적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여행지를 돌아 볼 의향이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우선 그들의 삶을 배우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니 내 목적 달성을 위하여 기본적인 크마에(캄보디아 언어)공부도 필수다.
최근들어 한 경제학 책을 읽으며 아시아의 기적을 일으킨 우리나라를 공부하고 있자니 실제로 그때 그 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60년대 근대화가 시작된 한국에 나는 아직 없었고 당시의 기록물을 통해 배우는 역사의 이해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의 캄보디아의 삶을 통해 60년대 한국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큰 고민없이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가 아니어도 내가 만족하며 살아온 환경과 다른 빈곤층의 캄보디아 사람들을 상대하며 자아(自我)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커다란 수확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뒤를 한국이 따라왔고 중국도 거쳐온 고난의 길을 그는 아직 걷고 있었다. 프놈펜 중심가에 자리잡은 몇몇 높은 빌딩과 KFC, 수많은 커피 전문점, 전광판에 설치된 삼성과 애플의 광고를 보고 캄보디아를 달리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정작 서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캄보디아 인들은 쇠와 나무로 된 칸막이에 의지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공단 주변에 만들어 놓은 쪽방에서 6명의 성인들이 5불씩 내고 생활하기도 한다. 파리와 모기, 심지어 도마뱀도 한 지붕아래 같이 공존한다.

그들이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1불정 도지만 그 1불 벌기가 녹록치 않다. 설사 번다해도 대부분을 시골 고향집에 부치느라 하루 한끼는 물로 떼우기가 다반사(茶飯事)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불편함을 참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나와는 사뭇 다른 고생길의 그들 모습에서 캄보디아의 투박하고 거친 외면 속 내면의 순수함과 대면했다.
현지 사람들 인상이 좋게 인식 된 것은 어쩌면 내가 대면한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밝게 웃어주고 친절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어딜 가나 못된 이들은 있기 마련이고 못사는 나라일수록 치안이 좋지 못하다.
캄보디아 역시 마찬가지지만 어느정도는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혹여 안좋은 일을 마주하더라고 그것을 사회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며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이들을 도맷금으로 넘기지 않도록 객관적인 자세는 처음 가는 나라의 여행자에게 필요한 덕목(德目)이 아닐까.

시내를 벗어나면 그 주변 풍광이 우리나라의 시골과 얼핏 흡사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비포장 도로 길의 풀풀 흩날리는 흙먼지까지.. 그 가장자리를 기웃거리며 풀을 뜯어먹는 소는 살이 없어 가죽이 축 늘어져 그 모습이 애처롭다.
제기를 차고 배구를 하며 한국인이 봤을때 민망하고 썰렁할 수 있는 유머나 행동에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PC방에 빼곡히 자리한 컴퓨터 앞에 주야장천(晝夜長川) 앉아있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가 많이 된다. 인간은 본래 순수하지만 진보와 함께 퇴색되어 가는듯 하다.
새삼 빌 게이츠나 안철수같은 인물이 대단하게 보인다. 약간은 주제에서 빗나간 이야기지만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서 인간의 됨됨이를 망각하지않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삶이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로 투영되는 때가 진정으로 오길 바란다.

캄보디아의 삶은 매일 하루가 단순함의 연속이다. 서민을 위해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국가 사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곳 사람들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물론 몇해전 생긴 광장과 공원 등지에서 다소나마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본격적인 유흥을 즐기고 취미생활에 돈을 쓰는 캄보디아인들을 아직은 만나보지 못했다.

매일 맞닥뜨리는 이 곳 공장 사람들의 밝은 미소는 내게 단순함 삶 속에 자리 잡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반면 경제성장에 방점(傍點)을 찍으려 매사에 다급하게 앞서 나가려고만 하는 한국은 삶의 여유와 내면의 순수함까지 잃어가고 있다.
문득 허리춤에 손을 대고 잠시 심호흡을 해본다. 우리가 얻은만큼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 양지가 밝을수록 음지의 그늘이 깊어가는 단순한 진리를 이곳 캄보디아에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