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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 기록 문제점 고찰(1~3부)

논문을 내면서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1-01-08 (금) 21:46:21

논문을 내면서




열하일기 마자수는 산서성.jpg



 

단군왕검이 단군조선을 건국한 때로부터 4,352년 그리고 고구려가 패망한지 1,352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갔다. 또한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의 시간도 지나갔다. 그러나 이 시간까지도 한국의 제도권 식민반도사학자들은 왜곡, 날조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심히 유감이다. 제도권 사학자들과 학술적으로 논쟁하기 위해 제1<고구려의 요동 요서 위치에 대한 소고>, 2<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 3<고죽국의 위치 연구>, 4<패수의 위치 연구>, 5<갈석산의 위치 연구>를 출간한바 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반론을 기다리고 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한국 역사학계의 그릇된 통설에 대해 언제든지 진지하게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힌다. 덧붙여 정중히 알리는 바이다. 제도권 사학계는 지금까지 왜곡, 날조, 조작시켜온 그리고 일제가 심어놓은 엉터리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을 즉시 폐기하기 바란다.

 

본 논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술된 일련의 역사 내용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으로 제6집에 해당하는 학술논문이다. 한국의 제도권 식민반도사학계에서는 열하일기에 적혀있는 마자수(압록수), 말갈백산, 소요수, 대요수, 수양제의 대운하, 유주, 기주, 갈석산, 수양산, 고죽성 등이 오늘날의 하북성과 요녕성에 위치한 것으로 잘못 인식내지 왜곡하고 있으며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본 논문을 출간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역사학자의 역할은 문헌사료를 통하여 과거의 사실을 조사, 비교, 분석한 후 진실만을 가려 기록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헌사료에 근거하여 쓰여지지 않은 글은 역사서도 역사논문도 될 수 없다. 그것은 소설과 같은 문학창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은 앞에서 열거한 마자수(압록수), 말갈백산, 소요수, 대요수, 수양제의 대운하, 유주, 기주, 갈석산, 수양산, 고죽성, 경관(요동백탑), 요택 200리 등과 같은 지리지명들이 하북성이나 요녕성에 위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참다운 역사학자라면 열하일기가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맹신하기에 앞서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들 지리지명들이 기록된 문헌사료들을 한번쯤 읽어보았어야 했다. 본 논문에서 필자가 논거로 제시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자세히 검토하여 스스로 판단하기 바라며 왜곡과 조작으로 파란만장의 수난을 겪은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정립하는데 동참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는 바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방문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록된 역사내용의 문제점 고찰(2)

 

I. 머리말


열하일기 2부.jpg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사상가이고 외교관 그리고 소설가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연암은 역사학자는 아니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저서로는 기행문인 <열하일기>와 소설인 <허생전>이 있어 오늘날에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열하일기>에 가끔 기술된 역사적 내용이 실제의 1차사료나 문헌자료와 일치하는 역사적 사실인지를 비교 검토하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연암의 여정은 조선 한양을 출발하여 한반도의 압록강을 건너 열하를 경유하여 북경에 이르는 길로, 주로 요녕성과 하북성 해안의 내륙을 따라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도강록(渡江錄)에서 기술하고 있는 마자수(馬訾水), 말갈백산, 요동의 백탑, 성경잡지의 소요수(小遼水), 일신수필(馹汛隨筆)에서의 수양제 대운하(大運河) 그리고 관내정사에서 서술한 이제묘기(夷齊廟記)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고찰하려고 한다.

 

<열하일기>에 관한 선행연구자들의 학위논문이나 학술논문은 주로 관광현상, 교수방법, 서술형식, 문학적 성격, 한중문화교류, 종교사상, 근대문학적 성격, 중국문화인식, 산문시학, 사상세계, 번역의 여러문제, 토론서술형식, 실학의 성격, 여행체험, 예술적묘사성, 기행문학, 학술과 사상, 의식주생활, 인문정신 등에 관련된 것으로 필자와 같이 <열하일기>에 나타난 역사적 내용의 진위를 다루는 논문은 단 한 편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관내정사는 산해관 안에 들어가 연경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 640리를 가며 기록한 글로서 옥전현 심유봉의 가게 액자에 쓰여있던 글을 베껴와 수정하였다는 <호질>을 비롯하여 <열상화보>, <이제묘기>, <난하범주기>, <사호석기>, <동악묘기>가 있다.

 

연암은 유주(幽州)와 기주(冀州)의 산엔 투명하고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고 서술하여 유주와 기주가 그의 여정에 속한 하북성이나 요녕성의 어느 곳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우공(禹貢)의 갈석(碣石)이 창려현(昌黎縣) 서쪽 20리 되는 가까운 곳에 있으니, 조조(曹操)의 시에 동으로 갈석에 다다라, 아득한 저 바다 구경코저라고 기록한 것 역시 하북성의 한 곳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암은 <열하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도 적고 있다. “난하 강가에 자그마한 언덕이 있는데, 수양산(首陽山)이라 한다. 산 북쪽으로 조그만 성곽이 있는데 고죽성(孤竹城)이라 한다라고 하여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국에 있던 수양산과 고죽성이 마치 하북성에 위치한 것처럼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하일기>에 기술된 수양산과 고죽성에 대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灤河之上有小阜曰首陽山 山之北有小郭曰孤竹城... 中國之稱首陽山有五處 河東蒲坂華山之北河曲之中有首陽 或云在隴西 或云在洛陽東北 又偃師西北有夷齊廟 或云遼陽有首陽山...(난하의 기슭에 수양산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수양산 북쪽에는 고죽성이라는 작은 성곽이 있는데... 중국에는 수양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이 다섯 곳에 있다. 하동(황하 동쪽으로 산서성) 포판현 화산의 북쪽 하곡(황하가 꺾이는 곳)의 가운데 수양산이 있다. 혹은 롱서 혹은 낙양 동북에 또 언사 서북에 백이숙제의 사당이 있다. 혹은 요양에 수양산이 있다....)”

라고 적고 있는데 본문에서 부(), (), (), ()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는 언덕이나 나지막한 산을 뜻하고 ()‘은 대지에서 우뚝 솟아있는 높은 산을 의미하며 ()‘은 외성으로 둘레를 의미하여 성()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은 혹시의 의미로 상상이나 추측을 하는 말이다. 박지원은 소부(小阜), 즉 작은 언덕을 수양산으로 이해하여 언덕과 메산을 식별하지 못하였고 도성(都城)과 작은 성곽둘레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혹시란 말은 상상이나 추측으로 확정적인 표현이 아님을 깨닫지 못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혹시란 표현으로 시작된 문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다. 요양과 한반도 해주에 있다고 추측하는 수양산을 포함하여 원문에서 언급한 여타의 수양산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수양산은 상상이나 추측이 아닌 사실적인 표현으로 기록된 하동(황하 동쪽으로 산서성) 포판현 화산의 북쪽 하곡(황하가 꺾이는 곳)의 가운데 수양산임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지원은 여러 가지 설을 논리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이들 지리지명이 모두 오늘날의 하북성에 위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필자는 기주, 유주, 갈석, 창려, 조조의 시, 수양산, 고죽성 등을 기록하고 있는 수많은 문헌사료들을 조사, 검토. 비교, 분석해본 결과, 연암 박지원이 그의 기행문인 <열하일기>에 서술하고 있는 일련의 역사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열하일기>가 문학창작이라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나 역사적인 사실을 서술한 사료적 가치와는 괴리된 무책임한 기술임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비판하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방문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록된 역사내용의 문제점 고찰(3)

II. 마자수(압록수)는 산서성

 

“<당서>에 따르면, []려의 마자수(馬訾水)는 말갈의 백산(白山)에서 나오는데, 물빛이 마치 오리() 대가리처럼 푸르다() 해서 압록강이라 부른다. 여기서 백산은 장백산으로, <산해경>에는 불함산이라 했고, 우리나라에선 백두산이라고 부른다. 백두산은 모든 강의 발원지인데, 그 서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압록강이다.”라고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강록 신미일인 624일자에 기술하고 있다. 이 내용은 구양수(歐陽修)등이 지은 <신당서>에 기록된 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은 대요(大遼)와 소요(少遼)가 있다. 대요는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흘러나와 남으로 안시성(安市城)을 거쳐 흐른다. 소요는 요산(遼山)의 서쪽에서 흘러나와 역시 남으로 흐르는데, 량수(梁水)가 새외(塞外: 요새 밖)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이와 합류한다. 마자수(馬訾水)가 있어 말갈백산(靺鞨白山)에서 흘러나오는데, 물빛이 오리머리와 같이 푸르러 압록수(鴨綠水)라 부른다. 국내성(國內城) 서쪽을 거쳐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으로 흘러 안시성(安市[])에 이르러 바다(: 황하)로 들어간다. 평양성(平壤城)은 압록의 동남에 있어 큰 배로 사람이 건너다니므로 해자(塹濠) 역할을 한다.”

 

라고 적고 있다. 박지원은 말갈백산을 장백산으로 추정하였고 마침내는 백두산으로 비약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산해경>󰡕을 거론하고 있는데 <산해경>에는 말갈백산이 장백산이고 장백산이 백두산이라 하지 않았다. “크게 거치 땅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함산이다. 숙신국에 있다. 백민국의 나라에 있으며, 북쪽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하여 웅상이라 한다. 팔대제(삼황오제)가 여기서 이 웅상의 나무를 취하였다라고만 기술하고 있다. 또한 박지원은 백두산에서 마자수가 출원한다고 말하고 있어 엄청난 역사왜곡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당서>에서 말하는 말갈백산은 오늘날의 산서성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당나라 때는 말갈백산, 청나라 때는 연경산, 그리고 지금은 관잠산이라 부른다. 압록수(마자수)가 이 산에서 발원하고 남쪽으로 흘러 안시성에 이르러 바다라고 부르던 황하로 진입하는 하천이라는 사실이다. 압록수를 오늘날에는 분하(汾河)로 부르고 있다.

 

1. 소요수대요수도 산서성

 

성경잡지(盛京雜識) 병술일인 1780710일자에 박지원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혼하는 아리강(阿利江)이다. 혹은 소요수(小遼水)라고도 부른다. 장백산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사하(沙河)와 합하고, 성경성(盛京城) 동남쪽을 굽이쳐 흘러 태자하와 합한다. 또 서쪽으로 비껴서 요하(遼河)와 합친뒤, 삼차하(三叉河)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라고 하여 소요수가 장백산에서 흐른다고 말하고 있는데 <신당서>에서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소요수는 산서성 요산(遼山)에서 발원하여 마자수(압록수)와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안시성을 거쳐 황하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소요수는 요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이지 장백산에서 흐르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문헌사료들을 조사해 보았지만 장백산이 요산이라 기록된 1차사료나 문헌자료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또한 혼하가 요산에서 발원한다는 기록 역시 어디에도 없다.

 

<양서>, <남사)>, <신당서>에 모두 요산에서 소요수가 발원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산이 있어 요산현(遼山縣)이라 이름 지었다고 당나라의 지리서인 <원화군현도지>가 적고 있으며 요산현은 산서성(山西省)에 있다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기록하고 있다. 장백산에서 소요수가 흐른다는 박지원의 기술은 오류임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신당서>에서 언급한 마자수, 소요수, 대요수, 염난수의 4물이 합쳐 압록수(요수)란 이름으로 남쪽으로 흐르다가 곡옥에서 서쪽으로 물이 꺾여 바다()라고 하는 황하(黃河)로 진입한다는 사실을 <그림 1>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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