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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84~90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6-10-15 (목) 14:36:46

<남제서>에도 가라와 왜국에 대해,

 

“가라국은 삼한의 한 종족이다. 건원 원년(479) 국왕 하지(荷知)가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를 내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조정에] 오니 멀리 있는 [동]이가 모두 덕에 감화되었다.

가라왕 하지는 관해(關海: 함곡관과 황하) 밖 동쪽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의 벼슬을 제수함이 합당하다’하였다.

왜국(倭國)은 대방(백제)의 동남 큰 바다 가운데 섬에 있다. 건원 원년(479) 새로이 벼슬을 올려 사지절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 모두의 군사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하고 무사의 이름으로 진동대장군이라 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송서>와 <남제서>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왜, 신라, 임나, 가야는 대륙 영남(嶺南) 지방 특히 절강성(浙江省)에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야와 관련이 있는 가야산의 위치를 추적해 보자.




한국 사학계의 통설로 보이는 가야산은 두 곳에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가야산(伽倻山)[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 거창군에 걸쳐있는 산이다”라는 가야산과

“가야산(伽倻山)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신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라는 가야산으로 한반도 경상도와 충청도 두 곳에 가야산이 위치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보고 있는 바와 같이 한반도에는 가야라는 나라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두 곳의 가야산은 가야국의 가야산이 아니다. 문헌사료에 근거없는 허구의 잡설로 일축(一蹴)하며 김수로 왕이 세운 가야국의 가야산을 함께 찾아보자.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85부

“가야산(伽邪山)은 <번역명의집(翻譯名義集)>의 가야이다. 산 이름이다. 즉, 상두산(象頭山)이다”라고 적고 있다. 상두산을 찾아보자. “상산(象山)은 광동성 박라현(博羅縣) 동북 30리에 있다. 역시 상두산이라 한다”라고 하여 가야산이 광동성(廣東省)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내해이사금 14년(209)에는 왜, 신라, 임나, 가야(가락), 진한, 모한, 백제 등의 나라가 하남성 함곡관의 동쪽 즉, 하남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호북성, 호남성, 복건성, 광동성, 대만 등에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로 정리된다.

함곡관(函谷關)이 있는 효산(崤山)의 위치와 가야산(伽邪山)의 위치를 다음 < 그림 21>과 <그림 22>에서 확인해 보자.




“3년(198) 여름 5월에 나라의 서쪽 지방에서 홍수로 수해를 입은 주와 현에 1년간 지세(地稅)와 호세(戶稅)를 면제해 주었다. ...17년(212) 여름 5월에 비가 많이 와서 민가가 떠내려가거나 무너졌다. ...31년(226) 봄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가을 7월에 이르러 비가 내렸다.

백성들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했다. ...34년(229) 가을 9월에 지진이 있었으며 겨울 10월에는 눈이 많이 와서 깊이가 다섯 자나 되었다. 35년(230) 봄 3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라고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내해이사금의 장지에 관한 기록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86부

제11절. 조분이사금

“8년(237) 가을 8월에 메뚜기떼가 곡식을 해쳤다. ...16년(245)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므로 우로(于老)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라고 적고 있다.

마두책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5대 파사이사금 시기 적이 쳐들어와 싸웠다는 마두성(馬頭城)과는 다른지역으로 이해된다.

책(柵)은 ‘울짱이나 목책’으로 성(城)과 다르기 때문이다. 안휘성 려강현에 있는 마두성은 앞 <그림 17>에서 참고할 수 있다.




조분이사금 16년인 245년은 신라와 고구려가 최초로 전쟁을 한 년도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2대 남해차차웅 “20년(23) 가을에 금성(金星)이 태미성(太微星) 자리에 들어갔다”란 23년 이후 처음으로 고구려와의 싸움이 245년에 발생한 것으로 245년까지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이었음을 암시하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18년(247) 여름 5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라고 하였으나 장지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묘지 추적이 불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적게 보기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87부

제12절. 점해이사금

“7년(253) 여름 5월부터 가을 7월에 이르기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선조의 묘와 명산에 기우제를 지내니 비가 내렸다.

이 해에 흉년이 들어 도둑이 많았다. ...13년(259) 가을 7월에 가뭄과 메뚜기 재해가 있어 흉년이 들고 도둑이 많았다.

14년(260)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40여 곳의 산이 무너졌다. ...15년(261) 겨울 12월에 왕이 갑자기 병환이 나서 세상을 떠났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점해이사금의 장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89부

제14절. 유례이사금

<삼국사기>는 유례이사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년(290) 여름 5월에 홍수가 나서 월성(月城)이 무너졌다. ...9년(292) 여름 6월에 왜병이 사도성(沙道城)을 쳐서 함락시킴으로 일길찬 대곡(大谷)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 이를 수복케 했다.

가을 7월에 가뭄이 들고 메뚜기떼의 재해가 있었다. 10년(293) 봄 2월에 사도성을 고쳐 쌓아 사벌주(沙伐州)의 재산이 많고 세력이 있는 백성 80여 가구를 옮겼다. ...15년(298) 봄 2월에 도성에 심한 안개가 끼어 사람을 분별할 수 없었는데 5일만에 개었다. 겨울 12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

292년에 왜병(倭兵)이 사도성을 함락시켰으며 다음 해인 293년에 사도성을 수리하고 사벌주의 재력가 80여 가구를 사도성으로 옮겨 살게 했다.

사도성의 위치를 기록한 문헌사료는 없다. 그러나 사도성(沙道城)은 사현(沙縣)이나 사벌주(沙伐州)란 행정구역 안에 위치해야 함이 논리적이며 사현과 사벌주는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인용문에서 사벌주의 재력가 80여 가구를 사도성으로 옮겨 살게 했다는 것은 사도성이 같은 지역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산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을 먼 곳에 위치한 성(城)으로 이주시킨다는 것은 논리성이나 합리성으로 보아 설득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명대사전이 기록하고 있는 사현의 위치를 찾아보도록 하자. “사현은 진(晉)나라가 사촌현(沙村縣)을 설치했다. 수나라가 폐지했으며 당나라가 다시 두어 사현이라 했다. 곧 옮겨 지금 관할한다. 옛 성은 오늘날의 복건성 사현 동쪽 10리에 있다.

명나라 청나라 모두 복건성 연평부(延平府)에 속했다. 지금의 복건성 건안도(建安道)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도성이 위치할 수 있는 사현을 다음 <그림 24>로 제시한다. 김부식은 여기서도 유례이사금의 묘지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아 장지의 위치는 찾을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90부

제15절. 기림이사금

“3년(300) 3월에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太白山)에 망제(望祭)를 지냈다. 낙랑과 대방 두 나라가 귀순하여 복종했다. 5년(302)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7

년(304) 가을 8월에 지진이 나고 샘물이 솟았다. 9월에 도성에 지진이나 민가가 무너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 10년(307) 다시 나라를 신라(新羅)라고 부르게 했다. 13년(310) 여름 6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

우두산의 위치를 찾아보겠다. “우두산은 강소성 강녕현(江寧縣) 남쪽에 있다. 일명 우수산(牛首山)이다. <元和志(원화지)>에 의하면 우두산은 우두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산에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어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름하여 쌍궐(雙闕)이라 한다. 옛날에는 천궐(天闕)이라 불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우두산이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신라가 한반도에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기림이사금이 한반도 경상남도 거창군까지 가서 있지도 않은 태백산에서 망제를 지낼 수 있었겠는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전혀 근거없는 허구의 잡설(雜說)이다.




우두산은 신라의 도읍지 금성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오늘날에는 마안산이라 부르는 산이다. 강소성에 있는 우두산의 위치를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 <그림 25>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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