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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제12부∼1)

9. 삼한총고(三韓總考)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3-01-02 (월) 13:06:13

9. 삼한총고(三韓總考)

 

·漢之際, 洌水以北, 謂之朝鮮, 卽武帝四郡之地也. 洌水以南, 謂之韓國, 亦謂之辰國, 卽東方三韓之地也((() 때에 열수(洌水) 북쪽을 조선이라 했다. 이곳은 곧 무제(武帝)4군을 둔 땅이다. 열수 남쪽은 한국(韓國)이라고도 하고 진국(辰國)이라고도 했다. 이곳이 바로 동방 삼한(三韓) 땅이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약용은 後漢書(후한서)를 인용하였다. “()은 셋이다.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요, 셋째는 변한이다.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고, 땅덩어리가 사방 4,000여 리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막혀있다. 이들은 모두 옛 진국(辰國)이라 하고,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했다.

 

삼한은 모두 왕을 칭했고, 이들 나라 왕의 조상은 마한 인종이었다라는 내용과 魏志(위지)()은 대방(帶方) 남쪽에 있고, 진한은 옛 진국이다라는 내용이다.

 

정약용이 인용한 이들 두 사서의 내용으로 보아 조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자연 지형물인 열수를 알아낼 수 없다.

 

조선이 열수 북쪽이라 했으므로 열수를 찾아야만 조선의 강역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열수는 패수의 다른 이름으로 오늘날의 하남성 황하북부 하내(河內)에 있는 망하(蝄河)를 뜻한다.

 

필자의 논문 패수의 위치 연구를 참고하기 바란다. 조선은 산서성에 위치하였다. 한반도에는 이씨조선 이외에는 어떠한 조선도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22)

9. 삼한총고(三韓總考)

 

두 번째 문장을 보자. “馬韓五十四國, 卽今京畿南道[卽洌水以南]及忠淸·全羅之地也. 其部落通謂之韓國. 其總王通謂之辰王. 其後, 嶺南別居者, 名曰辰韓, 而西韓謂之馬韓(마한 54국은 곧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남부와 충청(忠淸전라도(全羅道) 땅이다. 그 부락을 통틀어 한국(韓國)이라 했고, 그 총왕을 통칭하여 진왕이라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영남(嶺南)에 따로 살던 사람들을 진한이라 하고, 서쪽의 한()은 마한이라 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주장의 근거로 後漢書(후한서)를 인용하고 있지만 후한서의 내용에는 정약용이 주장한 마한 54국은 지금의 경기도 남부와 충청·전라도 땅이다라는 말은 전혀 없다.

그의 주장과 관련이 없는 후한서를 왜 인용하는지 모르겠다. 진한, 마한, 변한의 위치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23)

9. 삼한총고(三韓總考)

 

세 번째 문장이다. “嶺南之地, 西北阻山, 東南際海, 別爲一局, 謠俗特殊. 故居此地者謂之辰韓. 辰韓之中, 又分二種, 其小者曰弁辰(영남 땅은 서북쪽이 산으로 막혔고 동남쪽은 바다에 닿아서 따로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으므로 세간의 풍속이 색다르다.

 

이 땅에 있는 나라를 진한이라 하고, 이 진한 가운데서도 종류가 또 둘로 나뉘어 작은 것이 변진(弁辰)이다)”라는 내용이다. 역시 삼한의 위치와 연관이 전혀 없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若其君長廢立, 皆自馬韓主之. 馬韓者, 三韓之覇國也(임금이 쫓겨나거나 새로 세울 때에는 모두 마한에서 관여했으나, 마한이 마침내 삼한의 패국이 되었다.)” 다음 문장이다.

 

·漢之際, 已有君長, 能遠通中國, 或爲朝鮮人所阻(·한 때에 이미 임금이 있어서 멀리 중국과 교류할 수 있었으나, 이를 조선 사람들이 막기도 했다.)” 끝 문장이다.

 

其後, 馬韓五十四國, 並爲百濟所呑. 辰韓·弁辰, 並爲新羅所統(그 뒤에 마한 54 나라가 백제에게 먹히게 되자 진한과 변진은 모두 신라가 거느리게 되었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24)

9. 삼한총고(三韓總考)



 


삼한총고를 종합해 보자. “(() 때에 열수(洌水) 북쪽을 조선이라 했다. 이곳은 곧 무제(武帝)4군을 둔 땅이다. 열수 남쪽은 한국(韓國)이라고도 하고 진국(辰國)이라고도 했다. 이곳이 바로 동방 삼한(三韓) 땅이다.

 

마한 54국은 곧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남부와 충청(忠淸전라도(全羅道) 땅이다. 그 부락을 통틀어 한국(韓國)이라 했고, 그 총왕을 통칭하여 진왕이라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영남(嶺南)에 따로 살던 사람들을 진한이라 하고, 서쪽의 한()은 마한이라 했다.

 

영남 땅은 서북쪽이 산으로 막혔고 동남쪽은 바다에 닿아서 따로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으므로 세간의 풍속이 색다르다. 이 땅에 있는 나라를 진한이라 하고, 이 진한 가운데서도 종류가 또 둘로 나뉘어 작은 것이 변진(弁辰)이다.

 

임금을 쫓아내거나 새로 세울 때에는 모두 마한에서 관여했으니, 마한이 마침내 삼한의 패국이 되었다. ·한 때에 이미 임금이 있어서 멀리 중국과 교류할 수 있었으나, 이를 조선 사람들이 막기도 했다.

 

그 뒤에 마한 54 나라가 백제에게 먹히게 되자 진한과 변진은 모두 신라가 거느리게 되었다(·漢之際, 洌水以北, 謂之朝鮮, 卽武帝四郡之地也. 洌水以南, 謂之韓國, 亦謂之辰國, 卽東方三韓之地也. 馬韓五十四國, 卽今京畿南道[卽洌水以南]及忠淸·全羅之地也. 其部落通謂之韓國. 其總王通謂之辰王. 其後, 嶺南別居者, 名曰辰韓, 而西韓謂之馬韓. 嶺南之地, 西北阻山, 東南際海, 別爲一局, 謠俗特殊. 故居此地者謂之辰韓. 辰韓之中, 又分二種, 其小者曰弁辰. 若其君長廢立, 皆自馬韓主之. 馬韓者, 三韓之覇國也. ·漢之際, 已有君長, 能遠通中國, 或爲朝鮮人所阻. 其後, 馬韓五十四國, 並爲百濟所呑. 辰韓·弁辰, 並爲新羅所統.)”라고 연구를 마쳤다.

정약용은 삼한인 진한, 마한, 변한을 모두 한반도에, 특히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도에 그리고 변한과 진한은 영남에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인용한 후한서에는 삼한의 땅덩어리가 사방 4000여 리라 하였다. 경기, 충청, 전라도, 영남은 사방 4000리가 되지 않는다. 정약용이 한반도에 삼한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완전히 허구(虛構)인 것이다. 삼한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5>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댓글>

한00

귀한 역사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aul Kim

두 지도를 함께 참고하세요.

0판암0

고조선과.중원대륙으로부터.한민족의.고지도를앞으로공개하고싶씁니다감사합니다.

박사님항상건강하세요.오늘도무사히

Paul Kim

동이배달한민족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00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31)

10. 馬韓, 辰韓, 弁辰考總(마한, 진한, 변진고총)

 

앞에서 이미 삼한총고를 검토하였음으로 마한, 진한, 변진(변한과 진한)을 개별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삼한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정약용이 주장하는 마한, 진한, 변진의 위치에 중점을 두고 알아보기로 하겠다.

 

마한의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馬韓者, 今之益山郡, 是其總王之所都也(마한은 지금의 익산(益山)이니, 그 총왕이 도읍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라고 하였다.

 

정약용은 마한은 지금의 익산이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漢史(한사)를 인용하고 있다. “한사에 목지국(目支國)이라 한 것은 바로 익산을 가리킨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정약용이 언급한 한사후한서를 뜻하며 후한서어디에도 목지국이라 한 것은 바로 익산을 가리킨다는 기록이 없다.

 

정약용은 여기서도 전혀 근거없이 후한서를 왜곡하며 한반도 전북 익산에 마한이 있었다고 억단을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32)

10. 馬韓, 辰韓, 弁辰考總(마한, 진한, 변진고총)

 

목지국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8가지로 樂書(락서), 後漢書(후한서), 通志(통지),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通典(통전), 文獻通考(문헌통고), 圖書編(도서편), 그리고 御定淵鑑類函(어정연감유함)등이다.

 

그런데 목지국(目支國)을 위지(魏志)에서는 월지국(月支國)이라 했고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는 자지국(自支國)이라 하였다.”

 

기록마다 일관성이 없는 것은 목지국인지, 월지국인지 자지국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나 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는 목지국자지국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위지가 기록하고 있는 마한의 54개국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두 55개의 나라 이름이 적혀 있는데 목지국은 없고 대신 윌지국(月支國)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33)

10. 馬韓, 辰韓, 弁辰考總(마한, 진한, 변진고총)

 

월지국()은 서역국으로 감숙성 돈황(燉煌)과 기연산(祁連山)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전국시 월지는 융()의 땅이고 한나라 초에는 흉노 휴도왕과 곤사왕의 근거지이다라고 하였다.

 

마한이라고 하는 이 지역은 옛 서융(西戎) 땅이고 진() 때는 월지국이며 한()나라 초에는 흉노의 땅이었다. ()나라는 도읍지가 섬서성 함안으로 마한지역에 위치한 나라이며 진은 융족 속에서 성장하였고 목축을 하는 부족이었다.

 

그러다가 주()에 의지하여 융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융과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주나라에 대해서 알아보자. 주나라를 세운 고공단부(문왕의 아버지)도 서융(西戎)으로 섬서성 기산에서 처음 나라를 열었다. 그 후 호경으로 천도하였으며 호경인 지금의 섬서성 서안에 있던 주()나라 유왕(幽王)BC771년에 견융(犬戎)의 침입을 받아 죽었다.

 

유왕의 아들 평왕이 다음해에 낙읍(洛邑: 지금의 낙양)으로 동천(東遷)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존왕양이(尊王攘夷), 주왕실을 높이고 융()과 적()을 물리치는 것이 패주(霸主)들의 원칙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화하족과 이민족의 확실한 구별이 시작되었다.

 

()과 주()가 모두 같은 서역, 즉 마한에 위치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본고에서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

 

마한 54개국 중에 백제국이 있다. 通志(통지)백제의 도읍은 고마성(固麻城)인데 유성과 북평 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약용의 주장처럼 백제는 한반도 전북 익산에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백제의 도읍은 지나대륙 황하(黃河)와 가까운 섬서성에 있었다. 이 지역을 진()나라 때부터 요서라고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북 익산을 요서라고 했다는 문헌사료는 어디에도 없다. 마한에 속한 월지국과 백제국의 위치를 다음 <그림 6>에서 가늠할 수 있다. 삼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34)

10. 馬韓, 辰韓, 弁辰考總(마한, 진한, 변진고총)

 

진한고에 대해서 알아보자. “辰韓者, 秦韓也. 秦人之東走者也(진한은 진한(秦韓)이니, 진나라 사람들이 동쪽으로 달아나 세운 나라다)”라고 말하고 있다. 後漢書(후한서)를 인용하였다.

 

진한(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괴로움을 피하여 한국(韓國)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는 내용이다.

 

정약용의 논평을 들어보자. “()나라 사람들이 왔을 때 임금을 모두 신왕(臣王)이라고 했으니, 중국에 따로 임금이 있어서였다. ...나중에 영남(嶺南)만이 신한(臣韓)이라 해서 여기에 진()나라 사람들이 살았다라고 하였다.

 

()나라는 진시황의 진나라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진나라는 섬서성 함양(咸陽)에 도읍했던 나라이다. 농민반란군인 항우와 유방에 의해 멸망했던 나라이다.

 

섬서성 함양에서 한반도 경주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6,000리에 달하는 먼 거리이다. 정약용의 주장대로라면 진나라가 망하자 괴로움을 피해 한반도 경상도까지 약 6,000리나 먼 땅으로 피해왔다는 이야기인데 논리적으로 보아 설득력이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진한 변한 마한이 서로 가까운 산서성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신라김씨의 조상이라 하는 김일제(본명: 金翁叔)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로 <그림 6>의 휴도왕국 지역을 감안하면 산서성의 삼한이 그럴 듯 하다.

 

정약용은 진나라 사람들이 왔을 때 임금을 모두 신왕(臣王)이라고 했으니, 중국에 따로 임금이 있어서였다고 하였는데 이 같은 기사는 후한서에 전혀 없는 내용이다. 정약용의 사대주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며 여기서도 후한서를 곡필(曲筆)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135)

10. 馬韓, 辰韓, 弁辰考總(마한, 진한, 변진고총)

 

변진고를 살펴보자. “弁辰者, 金海, 巨濟, 咸安, 固城等沿海之地也(변진은 김해, 고성, 거제, 함안 등 바다에 가까운 땅이다)”라고 적고 있다.

 

정약용의 논평을 검토해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몰라서 삼한(三韓)을 삼국(三國)에 짝지웠다. 즉 마한은 고구려에 짝지우고 변한은 백제에 짝지워서, 일곱 번 얽히고 여덟 번 감겨 옛 책은 모두가 잘못되어 있다고 평하면서

 

崔致遠 太師侍中狀(최치원 태사시중상)을 인용하였다. “동해(東海) 밖에 삼국(三國)이 있는데,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이다. 마한은 고구려요, 변한은 백제요, 진한은 신라다란 내용이다.

 

최치원의 기록이 모두 틀리지 않았다. 우선 동해(東海)란 경도110도로 나뉘는 황하의 동쪽으로 산서성을 뜻한다. <그림 6>에서 알 수 있듯이 산서성 평양에 진한, 원곡에 변한 그리고 조양진(朝陽鎭)에 마한이 있었다.

 

마한 54개국에 백제가 들어감으로 백제는 마한이어야 한다. 고구려가 평양성에 도읍하였음으로 평양이 진한이 되어야 하고 신라가 변한이 되어야 한다. 삼한 사이에서도 땅을 서로 빼앗고 빼앗긴 현상으로 보아 어느 시점에서 구분하느냐의 관점 차이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정약용 보다는 최치원의 기록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최치원은 삼한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정리하면 한반도에 삼한이 있었다는 정약용의 주장에 필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정약용은 그의 주장에 합당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근거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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