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김육불은 “전국시대 연나라가 동북지방을 개척하고 그에 따라 요동군과 요서군 등을 설치하였으니, 실로 동북 구역에 군현(郡縣)을 설치한 시발이 된다. 이전 기록들에서 증거를 찾으니, 귀한 사료(史料) 두 가지가 있었다”라고 하면서 <사기/흉노전>과 <위략>을 인용하고 있다.
제6절 선사시대의 한족에서 이미 밝힌 내용으로 중언부언을 피하기 위해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다음은 김육불이 인용한 <위략>이다. “옛날 기자의 후손 조선후가 스스로 왕이라 하였는데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니, 연나라가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그 조선의 서쪽을 공략하여 이천여리의 땅을 빼앗고 만번한(滿潘汗)까지 이르러 국경으로 삼자, 조선이 드디어 약해지게 되었다.”
<사기/흉노전>에는 1천여리라 하였는데 반하여 <위략>에서는 2천여리로 거리만 다를뿐 진개가 조선을 침략했다는 내용은 같다. 김육불은 이 대목을 “이른바 ‘천여 리’라는 것은 남북의 길이를 가르켜 말한 것이고, <위략>에서 말한 ‘이천여 리’는 동서의 폭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반드시 양쪽 기록을 합해봐야만 비로소 그 전말(顚末)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육불이 인용한 이 두 사서의 내용은 요동과 요서의 위치를 밝히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김육불은 이 두 사서 외에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세역한지설문(細繹漢志說文)>, <한지(漢志)>, <속한지>, <삼국지/위지/제왕기>, <자치통감>, <사기/진시황본기>, <한서/지리지>, 호영년(胡永年) <포재천고/자서>, <만주발달사>, <사기/흉노전>, <사기/몽염전>, <위략>, <사기/조선전>, <수경주>,
<통전/주군전>, <한서/고제본기>, <사기/고조본기>, <사기/강후주발세가> 등의 문헌들을 인용하였으나 요동과 요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들을 굴비엮듯 나열하고 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왜곡으로 일관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를 함께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아방강역고>가 왜곡된 책’이라는 사실은 논자가 이미 밝힌 바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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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32부
요동과 요서의 위치를 살펴보도록 하자. 요동(遼東)이란 ‘요(遼)가 있는 동쪽’ 또는 ‘요(遼)의 동쪽’이란 의미이며 요서(遼西)란 ‘요(遼)가 있는 서쪽’ 또는 ‘요(遼)의 서쪽’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요(遼)라는 글자가 어떤 뜻을 갖는 글자인지 어원을 알면 요동•요서의 위치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遼)란 큰샘들이 있는 땅’이란 의미를 갖는 글자이다. 샘이란 땅에서 솟아나는 물을 말한다.
그런데 유주(幽州)에는 7개의 군(郡) 가운데 상곡군(上谷郡)을 제외한 6군 속에서, 요서군(遼西郡)에만 48개의 작은 물이 있어 함께 3,046리를 흐르고, 요동군(遼東郡)에는 대요수(大遼水)가 1,250리를 흐르며, 현토군(玄菟郡)에는 마자수(馬訾水)가 2,100리 흘러가고, 낙랑군(樂浪郡)에는 열수(列水)가 820리를,
우북평군(右北平郡)에는 경수(浭水)가 650리를, 어양군(漁陽郡)에는 고수(沽水)가 750리를 흘러, 이물을 모두 합치면 8,616리를 흐르는 엄청난 샘물과 같은 것으로, 요(遼)라는 글자의 뜻과 일맥상통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요(遼)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지명들인 요산(遼山), 요산현(遼山縣), 요주(遼州), 요양(遼陽: 요주), 소요수(小遼水), 대요수(大遼水) 등이 모두 산서성(山西省)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산서성이 요(遼)라는 글자를 지니게 된 이유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요(遼)가 있는 동쪽의 의미인 요동이란 지금의 산서성임을 입증한 것이다.
제1절에서 약간 언급한 바와 같이 요동에 관한 1차사료는 <관자>로 요동에 천연소금이 산출되는 염지가 있다고 하였고, 둘째는 <사기/조선열전>으로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여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는 것과, 셋째는 <한서/지리지>에 요동군은 진(秦)나라 때 설치했으며 유주(幽州)에 속한다고 하였고,
넷째는 <수서>로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주(周)나라가 여기에 기자를 봉하였고 한(漢)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晉)대에는 [고구려가] 요동을 통솔하였다고 하고, 다섯째는 “고구려는 우(禹)가 구주(九州)를 나눌 때 기주(冀州)땅에 속했고 주(周)나라 때는 기자의 나라가 되었으며 한(漢)나라의 현토군(玄菟郡)이다. 요동에 있었으며 평양성에 도읍하였다”라고 『송사』가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요산, 요산현, 요주, 요양, 소요수, 대요수 등 요(遼)자가 들어진 지리지명들이 모두 산서성에 위치하며, 유주이자 요서인 산서성 남서부에 고죽국이 있었고 고죽국이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고구려가 있던 이곳 산서성이 요동이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요동과 요서의 위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지도로 나타내면 다음 <그림 16>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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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33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과 <그림 16>을 통하여 밝힌 바대로 요동과 요서는 김육불이 주장하는 동북지역이자 요동•요서인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과 한반도와는 전혀 다른 지역임이 확인되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기록된 요동과 요서는 당시 바다라고 부르던 황하와 인접한 오늘날의 산서성임을 고증하였으므로 김육불의 주장은 허구임이 여기서도 뚜렷하게 판명된 것이다. 요동•요서에 관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논자의 학술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9. 한의 조선 평정
김육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기자의 조선이 40여대를 전하다가, 한(漢)나라 초기에 이르러 위만(衛滿)에게 멸망 당하였다. 위만은 연(燕)나라 사람이니 곧 한족(漢族)이었다. 왕이 된 뒤에 또한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이제 부르는 편의상 이름을 기(箕)씨조선은 전조선(前朝鮮)이라 하고 위(衛)씨조선은 후조선(後朝鮮)이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漢)나라가 노관(盧綰)으로 연왕을 삼았을 때 이르러 조선이 연과 패수(浿水)에서 경계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제5절에서 문헌사료와 <그림 12>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과 연의 경계를 이루던 패수는 산서성 남부 왕옥산에서 출원하여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를 지나면서 남동으로 흐르다가 동쪽에서 황하로 들어가는 하천임을 고증하였으므로 한나라가 조선을 평정한 일과 <동북통사> 첫머리에서 김육불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지역의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과는 위치가 전혀 다른 곳으로 그의 책 주제와는 아무 관련이 잆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김육불은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그해 가을에 무제(武帝)가 마침내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조선을 공격하였는데, 한 경로는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에게 군사 오만 명을 통솔하여 지금의 산동[성]으로부터 발해(渤海)를 건너 곧바로 왕검성(王儉城)을 향하게 하였고, 한 경로는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에게 요동(遼東) 군사를 통솔하여 지금의 요양(遼陽)을 출발하여 패수(浿水)를 향하게 하였다. ...
그 여름에 조선왕 우거(右渠)가 피살되어 드디어 조선이 평정되었다. 그 일이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조선전(朝鮮傳)>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이제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인용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육불은 허구의 소설의 정도를 넘어 이제는 위대한 역사학자 사마천의 <사기>까지 왜곡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1차사료까지 왜곡, 날조, 조작을 하고 있다. 김육불의 주장대로 <사기>에 “그해 가을에 무제(武帝)가 마침내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조선을 공격하였는데,
한 경로는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에게 군사 오만 명을 통솔하여 지금의 산동으로부터 발해(渤海)를 건너 곧바로 왕검성(王儉城)을 향하게 하였고, 한 경로는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에게 요동(遼東) 군사를 통솔하여 지금의 요양(遼陽)을 출발하여 패수(浿水)를 향하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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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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