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배달한민족 참역사
-한국역사 Group, Facebook에 게제된 ‘강태공과 주공’에 대한 필자의 논평이다-
주(周) 문왕 시기는 서주(西周)로 섬서성 기산 부근에 거주하고 있을 때이며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동해(東海)는 서주의 땅이 아니다.
<수경주> 등 옛 지리서를 잘 관찰해보면 흐르는 물은 해(海), 하(河), 수(水)라 하였고 고여있는 물은 해 앞에 한 두 글자를 더 붙여 서해(西海), 동해(東海), 북해(北海), 홀한해(忽汗海), 천해(天海) 등 고유명사로 불렀다. 그래서 흐르는 물인 황하(黃河)를 ‘해(海: 바다)’, ‘하(河)’, ‘하수(河水)’ 등으로 칭했으며 황하를 바다(海)라고 불린 것은 먼 옛날부터 당나라 중반 이전까지이다. 황하를 바다라 불렀다는 사실은 사마천의 <사기>에 잘 나타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서해는 오늘날의 청해성에 있는 천연 호수로 일명 청해(靑海)라고 부르며, 동해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지금의 동평호의 전신으로 발해, 거야택, 대야택 등으로 부르던 천연호수이고, 북해는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지금의 해지인 운성염지를 달리 부르던 이름이며, 홀한해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와 하북성 사이에 있는 오늘날의 악성수고를 뜻하고, 천해는 지금의 바이칼호수를 부르던 이름이다. 20세기인 지금도 청해성의 천연호수를 청해 또는 서해라고 부르고 있으니 대륙지도를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따라서 동해(발해, 거야택, 대야택)가 있던 산동성 지역은 서주 당시 단군조선(壇君朝鮮)의 강토이며 하남성 역시 은(殷)나라의 영토로 주(周)나라의 영토가 아니었다. 당시 동해이며 발해인 이 천연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300리요 동서의 폭이 100리였다. 동해의 흔적이 지금의 동평호, 남양호, 독산호, 소양호, 서사호, 마산호인 것이다. 이 천연호수를 수천년 동안 동해와 발해로 불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서주시기의 아시아 전 대륙은 한(韓: 진한, 마한, 변한)이란 이름으로 모두 단군조선의 강토였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시 말하면 섬서성 서쪽 모퉁이 기산 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이 단군조선의 땅이었다는 말이다. 동양의 역사를 깊이 연구해보면 진(秦)나라의 진시황이 마한(馬韓) 사람이었음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나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게 한 태공망 강태공은 동해(東海) 사람으로 강태공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있는 조가(朝歌)에서 소를 잡고 맹진(孟津)에서 먹을 것을 팔았던 사람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학술논문 <패수의 위치 연구>(제4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 pp.14-17.를 참고하기 바란다. www.coreanhistory.com 에 필자의 논문이 게제되어 있으니 누구든지 확인할 수 있다.
발해라고도 불리던 동해와 서해(청해)의 지도상 위치를 아래와 같이 다시 제시하니 기존의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 청나라 임칙서를 소개한 글에 대한 논평이다 *
비록 동양사를 공부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좋은 역사물의 소개이다. 한가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견을 듣고 싶다. 비판은 아니니 오해 없도록 바란다.
짧은 역사 스크륖(Scrip)에서 청(淸), 중국(中國), 중화(中華)란 세 단어가 서로 교체 태환하여 사용된 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대구분(Periodization)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첫째, 청이란 청나라의 국명으로 1644에서 1911년까지 268년 동안 사용되었던 용어이고
둘째, 중국이란 단군조선 제12대 아한단군 때인 BC1805년경에 국태사 유위자가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의미로 지어준 이름으로 청나라가 망한 때까지는 무려 3,716년이란 큰 연대 차이가 나는 단어이며
셋째, 중화란 ‘중국’의 중(中)과 ‘화하’의 화(華)자를 합성하여 만든 단어로 “화(華)란 단어는 ‘과(夸)’라는 음에서 나온 것”으로 단군조선의 백성인 동이족이 살던 산동성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던 말로 ‘과’란 ‘자랑하다’라는 의미이다. 지나인들이 자신들을 ‘화인(華人)’이라 한 것은 ‘과인’ 즉 ‘자랑스러운 사람’, 또는 ‘자랑할 만한 사람’에서 비롯된 글자이며 ‘화’란 글자는 최소한 춘추전국시기(770-403BC)에 만들어진 단어로 대략 2,497년 전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근세의 왕조인 청나라의 정치인 임칙서(林則徐)를 언급하면서 3,716년에서 2,497년 사이 이전에 사용된 단어들을 함께 병행하고 혼용한다는 것은 역사 서술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근대의 대한제국(1897-1910)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한인(桓人)’이나 ‘배달(倍達)’이나,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 등의 어휘를 함께 무질서하게 혼합해도 좋다는 점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임칙서의 소개는 청조(淸朝)의 통칭인 ‘청’으로만 소개됨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한가지 더 염려되는 일은 중화라고 자칭한 ‘한족’들은 청나라는 북방의 야만족이 세운 나라라 하여 멸시하였고 끝내는 손문을 위시한 자칭 한족들이 이민족의 청나라 멸망에 앞장섰는데, 야만족이 만들어낸 단어인 ‘중국’이나 ‘중화’를 아무런 비판 없이 사용하는 것은 모순(矛盾)이자 자가당착(自家撞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 아래 그림은 본문과 관련 없음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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