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부-22부
<欽定盛京通志(흠정성경통지)>에 나타난 영주에 대한 기록이다.
“상(商)의 고죽국은 오늘날의 노룡으로 즉 요(遼) 영주(營州) 지역이다. 이아(爾雅)에 고죽과 북호(北户)가 거론된 바 주(注)에 이르기를 고죽은 북쪽에 있다 하였으니 주(周) 시대에 폭원(幅員)이 넓지 아니하여 이곳이 북쪽 끝이 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하지만 설문(說文)에서 이른바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하는 것이 사실에 가까우며 시(詩)의 당풍(唐風)에 ‘고마이간(叩馬而諫)’은 마땅히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하러 갈 때의 일로 말미암은 것으로 기·롱·포·언(岐隴蒲偃)의 설은 모두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것일 뿐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도 고죽국, 노룡, 영주, 요서가 같은 지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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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21부)

지금까지 살펴본 <상서>, <여씨춘추>, <회남자>, <원화군현도지>, <사기>, <한서>, <후한서>, <설문해자>, <사기집해>, <중국고금지명대사전>, <괄지지>, <이아>, <통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해경신탐>, <중국역사지명대사전>, <문헌통고>, <태평환우기>, <명일통지>, <기보통지>, <흠정성경통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라 우공 때인 기원전 2,070년부터 약 2,600년 동안의 기간에 걸쳐 같은 지역을 영평부, 기주, 고죽국, 산융, 비자, 유주, 영주, 연국, 요서군, 평주 등으로 달리 불렀고 오호십유국 시대 선비족 탁발씨가 세운 후위(북위)가 440년에서 450년 사이에 섬서성 람전 동남 유성현의 동부를 영주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광의(廣義)로는 황하를 사이에 둔 섬서성 동부일대, 하남성 서북부, 산서성 남서부이고 협의(狹義)로는 산서성 남서부였다. 이들 문헌사료에서 언급한 영주는 ‘영주A’에 해당된다.
이제 ‘영주B’에 대해서 알아보자.
“요동은 우공의 청주 기주 지역으로 순이 기주인 동북(의무려 지역)을 나누어 유주로 하였는데 즉 오늘날의 광녕(廣寧)의 서쪽 지역이다. 청주의 동북을 영주로 하였는데 즉 광녕의 동쪽 지역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림 5>에서 기주이며 동북지역은 산서성 남부라 밝힌 바 있다. 동쪽 유주와 서쪽 영주의 분기점이 되는 광녕은 “오늘날의 하남성 수무현(修武縣) 동남”이라 기록하고 있다. 아래 <그림 13>에서 수무현 동남에 위치한 광녕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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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22부)


광녕(廣寧)을 기준으로 동쪽은 영주(營州)라 하였고 서쪽은 유주(幽州)라 하였다. 수무현은 황하북부 하남성 즉 하내에 위치한 지역으로 산서성 남부와 경계지역이다. 원래 하내는 기주로 동북지역이다. 다음 <그림 14>와 <그림 15>에서 유주와 영주(B)의 위치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광녕의 동부는 유주이고 광녕의 서부는 영주라고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圖書編(도서편)>을 포함하여 <行水金鑑(행수금감)>, <明一統志(명일통지)>, <禹貢錐指(우공추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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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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