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통지(明一統志)>에 기록된 영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영평부 건치(建置) 연혁 우공의 기주 지역 천문(天文) 연나라의 미(尾) 기(箕) 지역. 처음에 우순이 기주인 동북을 나누어 영주로 삼았는데 이곳이 그 지역이다. 상(商) 시대의 고죽국이고 주(周) 시대에는 유주(幽州)에 속했으며 춘추시대에는 산융(山戎) 비자(肥子)의 두 나라 지역이다. 진(秦) 시기의 요서 우북평 두 군(郡)의 지역이고 한(漢) 말기에 공손도(公孫度)에게 점거되었으며 위(魏) 시기에 노룡군으로 고치고 북연(北燕) 때 평주 및 낙랑군을 설치하였으며 후위(後魏) 때에 낙랑을 고쳐 북평군으로 삼았으며 수(隋) 시기에 평주로 고쳤다가 후에 주를 폐지하고 군(郡)으로 삼았다.
당(唐) 시기에 다시 평주로 고쳤다가 천보(天寳) 초에 바꾸어 북평군으로 삼았으며 건원(乾元) 초에 다시 평주로 삼았다. 오대(五代) 시기에 당(唐)이 요흥군(遼興軍)으로 삼았다가 금(金) 시기에 승격시켜 남경(南京)으로 삼았으며 천회(天㑹) 초에 다시 평주로 삼아 흥평군(興平軍)으로 승격시켰다. 원(元) 시기에 흥평부(興平府)로 고치고 중통(中統) 초에 승격시켜 평란로(平灤路)로 삼았으며 대덕(大德) 중에 영평로(永平路)로 고쳤으며 본조(本朝) 홍무(洪武) 2년 영평부로 고쳐 북평포정사(北平布政司)로 삼았다.”
고하여 영평부, 기주, 영주, 고죽국, 유주는 모두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명일통지> 역시 <문헌통고>와 <태평환우기>처럼 같은 지역을 유주와 영주로 함께 지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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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19부)
<畿輔通志(기보통지)>에 영평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영평부(永平府)는 우공(2070-1600BC)의 기주지역으로 상(1600-1046BC)시대에는고죽국(孤竹國)이며 유주(幽州)지역이 되었으며 춘추(770-403BC) 시대에는 비자국(肥子國)이 되었다.
응소(應邵)는 비자(肥子)가 연(燕)으로 도망하여 연이 이곳에 봉하였다 하였다.(한서지리지주) 평주(平州)는 춘추 시대에 산융(山戎) 비자(肥子) 두 나라 지역으로(문헌통고) 전국(403-221BC) 시대에는 연(燕)에 속하였고 진(秦: 221-206BC) 시기에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두 군(郡)의 경계였으며 한(漢: BC202-220) 시기에 요서군(遼西郡)에 비여현(肥如縣)을 설치하였으며 후한(後漢: 25-220) 및 진(晉: 265-420) 시대에는 이를 따랐다.
후위(後魏: 386-534) 시대에 비여현에 평주(平州) 요서군(遼西郡) 비여(肥如)를 설치하였다.(한서지리지) 평주의 치소는 비여성(肥如城)이다.(위서지형지)”
라고 서술하여 기원전 2,070년부터 534년 사이, 약 2,600년 동안의 기간에 걸쳐 같은 지역을 영평부, 기주, 고죽국, 산융, 비자, 유주, 영주, 연국, 요서군, 평주 등으로 달리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기보통지>도 <문헌통고>, <태평환우기>, <명일통지>와 같이 산서성 남서부를 여러 명칭으로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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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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