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기인 BC239년에 지었다는 <여씨춘추/유시람>의 구주에서 기주와 유주를 살펴보자.
“황하와 한수(漢水) 사이로 예주(豫州)이며 주(周)국이다.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冀州)이며 진(晉)국이다. 황하와 제수(濟水) 사이로 연주(兗州)이며 위(衛)국이다. 동쪽으로 청주(靑州)이며 제(齊)국이다. 사수(泗水)가로 서주(徐州)이며 노(魯)국이다. 동남으로 양주(揚州)이며 월(越)국이다. 남방으로 형주(荊州)이며 초(楚)국이다. 서방으로 옹주(雍州)이며 진(秦)국이다. 북방으로 유주(幽州)이며 연(燕)국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섬서성 서안이나 하남성 낙양에서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구주를 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용문에서 “황하의 양쪽사이로 기주”란 경도 110도와 위도 35도에서 황하가 꺾이는 지점으로 세로로 흐르는 황하 우측과 가로로 흐르는 황하 위쪽인 산서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산서성이 ‘ㄴ’ 자처럼 황하로 둘러싸여 황하의 양쪽 사이가 되기 때문이다. 황하의 양쪽 사이가 기주라고 기술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禹貢指南(우공지남)>을 비롯하여 27종에 이른다. 기주는 황하 사이로 오늘날의 산서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산서성이 하동지방이며 앞의 <원화군현도지>의 기록대로 ‘하동지방이 기주’임으로 결국 기주가 산서성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요약하면 <여씨춘추/유시람>에서 말하는 기주 역시 <상서/우공>이 기록하고 있는 기주와 같은 곳으로 산서성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의 위치를 다음 <그림 4>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상서>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여씨춘추>의 기록으로 보아도 하북성이나 요녕성은 기주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황하(黃河)와 인접하여 황하가 꺾이는 황하의 양쪽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남자/지형훈>에는 구주를 신주(神州), 차주(次州), 융주(戎州), 엄주(弇州), 기주(冀州), 태주(台州), 제주(泲州), 박주(薄州), 양주(陽州)로 나누고 있다. <회남자>에도 기주는 중앙(中央)이라 방위를 정하고 있다. 중앙은 황하가 ‘ㄴ’자처럼 꺾이는 곳의 섬서, 산서, 하남성을 뜻한다.
이렇게 1차사료라고 하는 <상서>, <여씨춘추>, <회남자>는 영주(營州)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구주(九州)의 위치 표현이 사료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기주는 황하를 중심으로 산서성 지역이라는 데는 이들 세 사료가 일치하고 있다.
9주를 기록하고 있는 이들 세 문헌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9주 중 공통된 주는 기주와 양주뿐이고 나머지 7주는 각각 달리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여씨춘추/유시람>에서 유주가 처음 나타남으로 유주의 위치를 추적해보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