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의 한민족 참역사

I. 머리말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는 동이배달한민족사 특히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으로 그들의 위치 비정과 추정이 다양하다. 산서성 남서부, 하남성 북서부, 그리고 섬서성 동부를 유주로 산서성 남동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별칭 하내(河內)를 영주로 보는 주장이 있다. 혹자는 <대청광여도>에 근거하여 유주와 영주를 지금의 북경시와 요녕성 북진시로 각각 비정하기도 한다. 이런 견해는 명대 이후의 지명이동에 따른 왜곡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주장으로 <구당서/지리지> ‘幽州大都督府(유주대도독부)’에 근거 유주는 “경사(서안)에서 2,520리이며 동도(낙양)로부터는 1,600리다”고 하며, ‘營州上都督府(영주상도독부)’에 근거 영주는 “서안에서 3,589리이며 낙양으로부터는 2,910리다.”라고 한다. 거리상으로 보면 마치 유주와 영주가 하북성과 요녕성에 위치했던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역사의 진실을 날조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리를 기록하였음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나인들은 수치 특히 거리를 서술하는데 있어 과장이 너무 심하다는 것은 여러 문헌사료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秦), 한(漢), 당(唐)나라의 거리 측정 단위가 서로 달랐음도 주목해야 한다. 당시의 거리는 지금처럼 항공이나 위성에서 경도와 위도를 나누어 정확히 거리를 측정하는 현대적 직선거리가 아니며 도보로 강과 산 그리고 들판을 거쳐서 정해진 통행로에 의한 거리라는 말이다.
때문에 ‘몇 백리’ ‘몇 천리’하는 거리는 별 의미가 없다. 문헌사료가 기술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검토하여 올바른 해석을 도출해내는 일이 역사학자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또한 글자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주’와 ‘유주대도독부’는 완전히 다른 뜻이다. ‘영주’와 ‘영주상도독부’도 같은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유주와 영주의 정확한 위치 확인은 한민족고대사의 역사강역을 밝히는데 중요한 초석이 된다는 의의를 갖으며 약 9,300권에 달하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영주와 유주의 정확한 위치를 밝히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기존 연구 성과로써 유주𐤟영주에 대한 국내 학위논문이나 학술논문은 찾아보기 어렵고 영주를 언급한 것은 신용하의 <孤竹國(고죽국)의 성립과 古朝鮮(고조선) 후국의 지위>란 논문인데 신용하는 영주를 난하와 대릉하 유역까지로 요녕성으로 보았다. 신용하는 이 논문에서 유주의 위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유주와 영주를 일방적으로 지나인들이 주장하는 위치를 채용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였으며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위치를 깊이 연구한 한국학계의 논문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유주란 지명은 구주(九州)에서 나오는데 유주가 최초로 등장한 1차사료는 BC239년경에 지었다는 <여씨춘추/유시람>에서 부터이다. <여씨춘추>에서 “북방으로 유주이며 연(燕)국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주례직방씨>에는 “동북이 유주다”라고 적고 있다. 한편 영주는 3가지의 다른 영주가 있었다. 영주(靈州), 영주(瀛州), 영주(營州)가 그것이다.
영주(營州)에 관한 기록은 <태평환우기>, <흠정성경통지>, <명일통지>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영주를 “은(상)나라 시기 고죽국의 땅”이라 적고 있다. <문헌통고>에는 영주를 “은시대에 고죽국의 땅이었고... 후위(後魏)가 영주를 설치하였으며 ...수양제 초기 주를 폐지하고 요서군을 설치했으나 당(唐)이 다시 영주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AD386에서 534년 사이에 있었던 후위가 영주(營州)를 설치했으며 수(隋)와 당(唐)이 계속 영주라고 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요약하면 같은 지역을 유주와 영주로 함께 불렀던 것으로 파악된다.
유주와 영주가 기록된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세심하게 검토하면서 이들 지명과 관련된 연국, 하북 등의 위치를 살펴봄과 동시에 왜곡되었거나 논리성이나 설득력이 결여된 사료를 비판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기존 통념상의 유주와 영주가 요녕성이나 하북성에 있다는 것과는 달리 필자는 두 곳의 영주(營州)와 한 곳의 유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섬서성 서안 동부를 영주(A)라 하였고 경도 110도로 나뉘는 황하 동쪽인 하동이자 하북이며 기주이고 요서인 산서성 남서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즉 하내(河內)를 유주와 영주로 함께 부르다가 후위, 수, 당 시기부터 동서로 구분하여 산서성 남서부를 유주로 하내를 영주(B)로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유주와 영주의 위치를 발견하였음으로 새로이 밝혀진 유주와 영주의 위치를 역사학계에 제시한다. 지금부터 유주의 위치부터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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