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사마천의 <사기/조선열전>에 한무제가 BC108년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곳에 4군을 두었다고 기록한 후 약 180년이 지나 반고의 <한서>에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도 사군을 두었다”라고 하여 <사기>에 없던 낙랑, 진번, 임둔, 현도라는 지명이 갑자기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2,128년 동안 불문율의 통설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한4군의 위치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중공의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제도권 사학계에서도 한4군의 위치가 한반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터무니없는 최초의 ‘한4군 한반도설’과 ‘왕험성 평양설’은 실학자 정약용의 의견으로 동북공정이 시행한 한민족역사 왜곡의 빌미를 제공해주는 단초(端初)가 되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따라서 한4군의 허구성을 짚어보고 기초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기존의 제설(諸說)을 종식시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주제와 관련된 모든 사료들을 조사, 비교, 검토, 분석, 교차확인하는 방법을 택했으며 왜곡, 날조된 한4군의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였다는데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
한무제가 두었다는 한4군은 실존하지 않았던 날조, 왜곡, 조작된 허구였음을 밝혔다. 무제가 4군을 두었으면 낙랑, 진번, 임둔, 현도에 각각 제후로 봉한 제후의 이름이 문헌사료에 기록되어야 하지만 1차사료와 문헌자료 어디에도 제후로 봉한 이름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주인 요서의 한사군 설치는 허구였기 때문이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토벌하고 위만조선 우거왕의 신하들인 왕겹, 최, 참, 한음, 장강에게 평주후, 열양후, 홰청후, 적저후, 기후의 작위를 주면서 평주군, 열양군, 홰청군, 적저군, 하동군[기군]의 봉지를 주었다는 기록을 발견하였다. 이들 봉지는 요서인 오늘날의 산서성이 아닌 영주지역이자 제나라 지역으로 황하의 인접지역인 하남성 하내, 하북성 남부, 그리고 산동성 서부 일대였음을 문헌사료에 근거 고증하여 밝히고 그림으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요서에 위치한 한사군으로 알려진 낙랑, 진번, 임둔, 현도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조작된 허구로 동양사의 기록 속에서 즉시 폐기시킬 것을 주장한다. 대신 필자가 새로히 밝힌 한5군인 평주, 열양, 홰청, 적저, 하동(기)은 역사적 사실로 한4군과 교체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잘못된 선행연구자들의 논문에 근거한 역사연구의 관행을 탈피하고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한 고증과 실증에 의한 한국사학계의 역사논문들이 새롭게 발표되길 기대한다.
주제어; 한4군, 한5군, 한반도설, 평양설, 평주후, 열양후, 홰청후, 적저후, 기후. 조선, 산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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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의 허구성과 그 위치 연구(제3부-1)
I. 머리말
한사군(漢四郡)의 정확한 위치는 단군조선의 강역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의 역사 영토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4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부터 시작되었다.
연(燕)나라 위만이 BC194년에 조선(번조선)을 강탈하여 위만조선이란 이름으로 86년간 지속되다가 그의 손자 우거(右渠) 때인 BC108년에 위만조선의 자중지난으로 한(漢)무제에게 패망하였는데 당시 한나라와 결탁하여 반역에 가담한 5명의 위만조선의 신하들, 즉 삼(參)을 홰청후, 한음(韓陰)을 적저후, 왕겹(王唊)을 평주후, 장강(長降)을 기후, 최(最)를 온양후로 삼아, 그 곳 위만조선 땅에 4군을 두었다는 줄거리이다.
무제는 우거의 신하 5명에게 작위를 주었지만 정작 이들이 분봉(?) 받은 지역은 4곳이라 한다. 처음부터 어설프게 짜여진 각본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무튼 사마천은 “4군을 두었다”고만 하였다.
그런데 사마천으로부터 약 180년이 지난 후 반고의 <한서/서남이 양월 조선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도 사군을 두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없던 낙랑, 진번, 임둔, 현도가 반고에 의해 구체적으로 지명이 거론되면서 조작(造作)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부터 다른 사서들도 한결같이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곳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 한4군을 설치한 것으로 각색(脚色)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일제와 식민사학자들은 위만이 지나(支那) 사람으로, 우리가 지나의 지배를 받았다고 가르쳐왔고 산서성 최남단에서 일어났던 위만조선의 이야기가 마치 오늘날의 하북성이나 한반도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가 있었던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한4군의 허구성을 짚어보고 한4군이 위치할 수 있었던 지역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밝힘으로써 기초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기존의 제설(諸說)을 종식시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주제와 관련된 모든 사료들을 조사, 비교, 검토, 분석, 교차확인하는 방법을 택했으며 왜곡, 날조된 한4군의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였다는데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
한4군의 위치와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고 있는 중공의 양수경을 선두로 김육불, 범문란, 담기양, 주진학, 장박천, 손진기, 간지경, 왕건군, 이건재, 여사면, 장벽파, 유자민, 방국봉, 도흥지, 마대정, 이대용, 경철하, 권혁수 등의 논문이나 출판물들은 모두 한결같이 동북공정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정치성이 개입된 의도적 역사왜곡으로 선행연구의 논평을 위한 일고의 가치가 없다.
이들은 역사논문의 기본인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논거(論據)로 제시하지 못했으며 특히 위치를 밝히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경주>, <한서/지리지>, <원화군현도지>, <통전>, <주례직방씨>, <이아> 등을 주밀하게 검토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참고문헌으로 언급하지 못한 중대한 실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선행연구자들인 송호정은 <실학자들의 역사지리관과 고조선 한사군 연구>라는 그의 논문에서 “정약용은 한사군의 위치로 진번을 제외한 지역은 압록강 남쪽에 있었다. 낙랑이 평양이고 현도를 함경도, 임둔은 평양서남부 임진강 일대로 해석하고, 대방도 임진강 하류로 보았으며 진번은 요동성 동부일대로 단정하였다. ...특히 실학자들 가운데 가장 치밀한 논지를 전개한 정약용은 한사군의 위치 비정을 통해 ...이는 일제 시기와 해방 후 한국 고대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이병도의 입론의 근거가 되었다. ...실학자들의 방대한 문헌 고증은 이후 고조선사를 연구하려는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로 정리하고 있다.
송호정은 “실학자들의 방대한 문헌 고증은 이후 고조선사를 연구하려는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학자들이 살핀 ‘방대한 문헌’이 어떤 것인지 검토해보지도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논문의 말미에 기록된 참고문헌에도 1차사료나 문헌자료는 볼 수 없고, 38편의 다른 사람들의 논문을 모아 실학자들에 관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요약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철저히 조사, 검토, 비교, 분석하면서 실학자들의 주장을 비평하지 않았고, 명·청시기 왜곡된 일부의 사료들과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타인들의 논문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실학자들의 학설을 아무 비판없이 인용하고 찬양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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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대화>
Paul Kim
사마천의 고향은 산서성 남서부 황하 근처에 있는 용문으로 이곳은 단군조선의 땅이고 고구려의 영토였으니 당연히 사마천의 조상은 단군조선의 백성이었을 것으로 보이네요.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마천은 사실에 입각하여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후대에 특히 당나라 시기부터 조금씩 첨삭이 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기자조선'은 허구입니다. 기자조선을 구체화 시킨 사람은 명나라와 이씨조선의 합작품이지요. 기자조선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고맙습니다.
이기0
Paul Kim 한자음이 桓. 韓. 漢. 汗(삼수변이 아니라 말마변)이 다 같아요. 지나나 우리나 다 한으로 발음하지요. 그래서인지 이중재씨 주장으로는 漢나라도 韓의 후예라고 하시데요.
倍達 桓에서 韓으로 韓에서 漢으로 이어진다고 하데요. 선생님과 이중재님의 차이점을 정리해 주실 수 있나요?
Paul Kim
우선 시대구분을 해야합니다. 漢은 유방이 세운 漢나라 때문에 생긴 단어로 BC200년 경으로 '하천족'을 뜻하고 韓은 단군조선의 3한인 진한, 마한, 변한에서 유래된 것으로 BC2000년경으로 '유목족'을 의미하고 桓은 BC8000년경으로 '고산족'을 뜻하며 한(馬干)은 동이족을 지나인들이 달리 부르던 명칭이니 桓에서 韓으로 韓에서 漢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면 될것입니다.
이기0
Paul Kim 도를 통하면 왕이 될 수 있고 왕이 되면 국명도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동의하실 것 같고 한나라를 준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Paul Kim
이성계는 道근처에도 못갔으나 '이씨조선'을 세웠어요. 한나라를 세운 사람은 강소성 패현사람인 유방이지요. 왕망이 세운 나라는 '신(新)' 입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 어디에도 왕망이 준왕이라든지 유방이 준왕이라는 기록은 찾아보지 못했어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