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유시람>은 구주를 예주, 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 형주, 옹주, 유주로 구분하면서 각각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황하와 한수(漢水) 사이로 예주(豫州)이며 주(周)국이다.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冀州)이며 진(晉)국이다. 황하와 제수(濟水) 사이로 연주(兗州)이며 위(衛)국이다.
동쪽으로 청주(靑州)이며 제(齊)국이다. 사수(泗水)가로 서주(徐州)이며 노(魯)국이다. 동남으로 양주(揚州)이며 월(越)국이다. 남방으로 형주(荊州)이며 초(楚)국이다. 서방으로 옹주(雍州)이며 진(秦)국이다. 북방으로 유주(幽州)이며 연(燕)국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남성 낙양에서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구주를 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용문에서 “황하의 양쪽사이로 기주”란 경도 110도와 위도 35도에서 황하가 꺾이는 지점으로 세로로 흐르는 황하 우측과 가로로 흐르는 황하 위쪽인 산서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산서성이 ‘ㄴ’ 자처럼 황하로 둘러싸여 황하의 양쪽사이가 되기 때문이다. <여씨춘추/유시람>의 기주 역시 <상서/우공>의 기주와 정확하게 같은 지역으로 산서성을 가리키고 있다.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의 위치를 다음 <그림 2>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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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 연구> - 제11부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기주를 기록하고 있는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그리고 <회남자/지형훈>의 기주는 황하 주변인 산서성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남성 하내를 지칭하고 있음을 고증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주(周)나라 때는 우공의 기주 지역을 유주(幽州)라 하였고 진(秦)나라 시기에 이르러 요서(遼西)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기주에서 유주로 유주에서 요서로 명칭이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고의 <한서/지리지>에 “요서군(遼西郡)은 진(秦)나라 때 설치한 것으로 유주(幽州)에 속하며 영지(令支)에 고죽성(孤竹城)이 있다”라고 하였고, 범엽의 <후한서>에도 “요서군 영지현: 영지에 고죽성이 있으며 백이숙제의 나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배인의 <사기집해>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집해에서 마융(馬融)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河東) 지방의 포판(蒲坂)에 있는 화산(華山)의 북쪽에 있고 황하가 꺾여 흐르는 곳이다” 여기서의 화산(華山)은 산서성 황하 굴곡지점 남서쪽으로 섬서성에 위치한 산이다.
요약하면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성이 있는 영지는 요서군으로 진(秦: 221-206BC)나라 때 설치한 것으로 유주(幽州)에 속한다로 정리된다.
고구려의 핵심 강역인 산서성 남부가 유주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주, 유주, 요서군, 영지, 고죽성, 고죽국(백이숙제의 나라), 수양산, 포판, 황하, 하동지방 모두 지금의 산서성 남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기주, 유주, 요서, 하동, 요동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4>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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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 연구> - 제12부
한국사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하북성과 요녕성에 있다는 기주, 유주, 요서, 요동 등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비정, 추정, 추측, 개인 생각임을 극명하게 입증한 것이다. 따라서 요녕성과 하북성은 고구려의 도읍지들이 위치했던 고구려의 핵심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계속해서 고구려의 강역이 된 고죽국의 위치에 대해서 더 알아보도록 하자.
2. 고죽국은 고구려
고죽국이 우공의 기주지역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로는 <欽定盛京通志(흠정성경통지)>, <御定淵鑑類函(어정연감류함)>, <大淸一統志(대청일통지)>, <畿輔通志(기보통지)>, <記纂淵海(기찬연해)> 등 5가지이다.
앞에서 살펴본 1차사료인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그리고 <회남자/지형훈>에서 기록한 기주지역인 산서성 남서부에 고죽국이 위치하였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기주에 고죽국이 있고 기주가 고구려의 땅이므로 고죽국이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논리로 정리된다.
고죽국이 고구려의 영토였음을 고증하기 위해 다른 문헌사료들도 함께 검토해보자. 당나라 위징 등이 지었다는 <수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배구가 앞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주(周)나라가 여기에 기자(箕子)를 봉(封)하였고 한(漢)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晉)대에 요동(遼東)을 통솔하였다”라고 수나라 양제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구당서>와 <신당서>에도 똑같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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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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