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 연구 - 제41부 댓글
고구려를 기록하고 있는 1차사료인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고구려의 성(城)은 모두 176개라고 적고 있다. 660년 고구려가 패망하고 무상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중공은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심각하게 왜곡, 날조, 조작, 축소하고 있다. 동북공정이 바로 그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176개의 성들 중 고구려의 도읍지가 있던 핵심 강역인 산서성에만 천리장성을 포함 약 ⅓인 60개의 성(城)들이 있다. 900년 동안 대륙을 호령한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중공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지리지명을 없애고 동북삼성 쪽으로 지명을 옮길 것이다. 그 때를 증거하고 후손들에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산서성에 위치한 성(城)들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예성(芮城), 2.고성(古城:원곡 동남쪽 황화변으로 백암성), 3. 원곡(垣曲:요동성), 4. 신성(新城:원곡), 5.양성(陽城), 6. 진성(晉城), 7. 부성(附城), 8. 로성(路城), 9. 주성(周城), 10. 평성(平城), 11. 행성(杏城), 12. 려성(黎城), 13. 률성(栗城), 14. 장성(長城), 15. 청성(靑城), 16. 고성(古城), 17. 신성(新城), 18. 람성(嵐城), 19. 오성(吳城), 20. 강성(康城). 21. 극성(克城), 22. 오성(午城), 23. 고성(古城), 24. 분성(汾城), 25. 고성(古城:건안성), 26. 남장(南張:남소성), 27. 익성(翼城), 28. 당성(唐城), 29. 고성(故城), 30. 사성(社城), 31. 장성(長城), 32. 산음성(山陰城), 33. 조성(趙城), 34. 신성(新城:태원 북부), 35. 서성(西城), 36. 졸본성(태원), 37. 국내성(평요), 38. 평양성(임분시), 39. 풍성, 40. 환도성(화염산 말꼬리 부분), 41. 안시성(화염산 말머리 부분), 42. 신성(길현), 43.한성, 44. 석성, 45. 고죽성, 46. 사비성(현 악성수고로 하내와 하북성 경계), 47. 역산(歷山:2,322m), 48. 주필산(현 용문산), 49. 갈석산(평륙과 섬주 사이의 황하 가운데 저주산), 50. 옥전보, 51. 택성, 52. 나성(羅城), 53. 적리성(積利城), 54. 박작성(泊灼城), 55. 오골성(烏骨城:오성午城), 56. 안지성(安地城), 57. 오성(吳城), 58. 장성(長城:산서성 동북 내몽고 접경으로 고구려의 천리 장성 부근), 59. 청성(淸城), 60. 천리장성(千里長城) 등이다.
고구려의 중원인 산서성과 수와 당의 땅인 하남성 서쪽 사이 경계에 11개의 성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성(新城)이 4개, 고성(古城)이 5개, 그리고 장성(長城)은 3개가 있다. 그 유명한 요동성(遼東城)은 보이지 않고 요동성이 있던 원곡(垣曲) 근처에 신성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요동성을 신성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아무튼 똑같은 이름의 성(城)의 지명들을 표시한 것은 찬란했던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원래의 고구려 성(城)들의 이름을 바꾸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생긴 것으로 이해한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 서울: 소호출판사, 2012, pp.358∼359;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판) 서울: 세계출판사, 2019, pp.436∼437를 참고하기 바라며
www.coreanhistory.com 을 방문하여 저자의 논문들을 필독하면 증거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땅은 빼앗겼으나 역사를 빼앗기면 안된다. 역사는 선조들의 삶에 대한 기록(記錄)이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족보(族譜)이며 동이배달한민족정기(東夷倍達韓民族精氣)이자 자존심(自尊心)이기 때문이다.
-김태영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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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논평
댓글#1: 백제 위치가 요서, 진평군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어디일까요?
댓글#2: 백제의 위치가 난하 서쪽은 요서군, 북경부근은 진평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개군이라고 하고요 오늘날의 북경과 조양시(난하서쪽)일대라고 합니다
논평: 백제의 진평이군은 황하가 경도 110도와 위도 35도에서 굴곡(屈曲)하는 지점인 섬서성 동부와 하남성 서부 지역으로 당시 마한지역(馬韓地域)이고 백제의 고마성이며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 일컫는 곳이다. 다시말하면 진평이군 = 북으로 북평군과 남으로 유성현 사이 = 고마성 = 하남위례성이란 등식이 된다.
“백제의 위치가 북경과 조양시(난하서쪽) 일대라는 의견”은 글자 그대로 개인 의견이지 역사가 아니다. 역사란 사실을 기록하는 학문이고 기록에 의한 사실을 고증(考證)하는 학문으로 역사를 논(論)할 때는 의견, 비정, 추정, 추측, 견해, 소견, ∼일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등의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오직 1차사료와 문헌자료 몇권 어디에 그런 기록이 있다라고 근거(根據)를 제시하면 된다.
대한민국 대학에서 한국사(韓國史)를 전공한 사람들은 강단이든 재야든 100% 문헌사료에 근거없이 떠드는 엉터리 만담가(漫談家)들이다. 그런 이유로 비록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나 사학자가 아니라 소설가이다. 아니라면 김태영학파에게 언제든지 논문으로 도전(挑戰)해도 좋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을 방문하여 김태영, <백제의 영토 연구>(제16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2를 참고하기 바란다.
-김태영학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