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내면서

어쩌면 2,250년 동안 사실과 왜곡 실재와 허구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주제가 한4군이 아닌가 싶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멸하고 그곳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군의 4군을 두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한4군의 위치는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의 위치를 결정하고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의 위치는 한4군의 위치를 결정하게 되어있어 한4군의 위치확인은 단군조선의 강역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실학자 정약용은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인정하였으며 기자•위만조선의 중심지가 오늘날의 평양이라고 한 사람이다. 또한 정약용은 낙랑군은 한반도 평양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뒤질세라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단군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낙랑군 등의 중심지가 한반도 평안남도 평양이었던 것으로 인식해 오고 있다. 때문인지 대한민국의 현행 국사교과서에는 위만조선과 한4군이 한반도 안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가르치고 있다.
위만이 도읍했다는 왕험성의 위치에 대해 의견 역시 분분하다. 청말의 양수경과 중공의 김육불은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했다고 하며 오늘날의 평안남도 평양이 왕험성이라 하고 한백겸도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했으며 안정복은 낙랑군이 평양부라 하였다. 정인보는 왕험성이 지금의 요녕성 해성이라 하였고 신채호와 리지린은 요녕성 개평으로 보았으며 윤내현은 왕험성을 하북성 창려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다.
한4군과 단군•위만조선의 위치에 관하여 지금까지 약 140여 편의 논문과 단행본을 읽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면서 설득력 있는 사료비판에 의하여 논술한 논문은 단 한편도 없었다. 따라서 한4군의 위치를 분명하게 밝힌 선행연구자의 저서나 논문은 접하지 못하였다.
본고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패망시키고 그곳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 4군을 설치했다는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기록은 명백한 허구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한무제가 한나라로 도망하여 위만조선에 반역을 했던 우거왕의 신하 5명에게 제후로 봉하면서 그들에게 봉지를 하사한 역사적 사실을 밝혔다. 낙랑, 진번, 임둔, 현도가 아닌 평주, 적저, 홰청, 열양, 하동군으로 이들 5군은 무제에게 분봉받은지 불과 18년 만에 모두 폐지되었다.
이들 한5군지(漢五郡地)는 한반도, 하북성, 요녕성이 아닌 황하(黃河)와 인접한 지역이다. 따라서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은 한반도나 하북성이나 요녕성에 위치하지 않았다.
본고에서 필자가 밝힌 바와 같이 한무제의 한4군은 날조된 허구임으로 동양사의 기록속에서 하루 빨리 지워져야할 것이다.
2020년 5월 12일
역사학자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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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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