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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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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下)

(下) ‘한류 성공 가져온 사전검열 철폐’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22-06-11 (토) 22:49:37

() ‘한류 성공 가져온 사전검열 철폐’

 


이하 사진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컷

 

아마 젊은 세대들은 노래나 영화 공연 광고 등을 90년대 중반까지 정부가 사전 검열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를 것이다. 그 시절 공연윤리위원회는 서릿발같은 기관이었다. 1976년 박정희정권때 탄생한 공륜은 1996년 헌법재판소가 사전검열이 위헌으로 판정하여, 해체될 때까지 모든 창작의 자유를 옥죄고 있었다. 나도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정태춘의 서정적인 데뷔곡 <시인의 마을>조차도 20군데 손질하고 통과됐다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사전검열이 철폐되도록 온 몸으로 저항한 정태춘. 91년 아내 박은옥과 함께 음반악법 철폐를 위한 정태춘 불법TAPE ‘, 대한민국전국순회공개싸인판매회를 벌였다. 엄청난 도전이자 항거였다. 1993년엔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사전심의를 밟지 않고 곡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이가 실정법을 어긴 것은 의도적이었다.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부당한 사전심의 문제를 공론화해 철폐운동에 불지르기 위함이었다.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노래중 지금까지 20여곡이 불가판정을 받았다. 지난해만해도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한 강산에의 <>, 우리사회의 특징적인 여러가지 죽음을 소재로 한 안치환의 <죽음> 등이 사회비판적인 가사가 문제돼 불가판정이 났다. 사전심의는 심의의 질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작가들의 상상력을 억압해 가요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가요 가사가 천편일률적인것도 오랫동안 심의에 길들여진 결과다라고 질타(叱咤)했다.

 

사전심의를 폐지하면 마약.범죄조장과 같은 저질가사나 표절(剽竊)이 훨씬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찮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표절은 실정법상 당사자간의 저작권 분쟁이기 때문에 소송이 있기 전에는 공륜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또 현실적으로 공륜의 사전심의는 표절여부를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저질가요에 대해서는 방송에서 차단하고 실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체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가사가 어떠했을까.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맛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이 노래를 심의에 올렸다면 필경 공륜 위원들은 깃발군중’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를 지적했을 것이다. 불의한 시대, 불의한 정권의 꼭두각시들이었으니까.

 

기자인 나로선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는 단어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오늘의 기레기(기자쓰레기) 단어는 어쩌면 그시절 잉태(孕胎)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BTS K팝 스타들과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석권하는 K영화와 K드라마의 영광은 공륜의 사전검열 철폐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정태춘을 비롯한 90년대의 운동가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한 젊은 여성의 소감은 인상적이다. 김해 출신인 그는 2019년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무대에서 정태춘이라는 가수를 처음 봤다고 한다.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라는 가사를 듣고 , 2016년 물대포에 숨진 백남기농민을 기리는 노래인가봐.. 근데 왜 1992년이지? 하고 갸우뚱했는데 알고보니 거의 30년전에 만든 노래라고 해서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 시드니와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선에 연속 진출한 아티스틱 스위밍(수중발레) 스타 유나미가 2019년 세계수영동호인대회인 광주마스터즈에서 정태춘의 <5.18>에 맞춰 연기한 것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유나미가 펼친 수중연기는 광주를 위로하는 영혼의 춤사위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루게릭 병을 앓는 중년여성이 박은옥의 노래와 정태춘의 친필 글씨를 통해 위로받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휠체어를 타고 어쩌면 생애 마지막 관람이 될 공연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딱히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없는게 아니냐는 비평도 있지만 난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 없이 소외된 이웃을 따뜻하게 보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또다른 감동을 느꼈다.

 

정태춘은 2012<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앨범을 낸 이후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 생각이지만 돌연한 정태춘의 선언은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에서 배태(胚胎)된 아픔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땅을 강제 수용한 정부에 맞서 싸우다 경찰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처절했다. 영화에선 표현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심대했을 것이다. 평택미군기지는 노무현정부가 당시 미국의 부시정부와 합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평택 대추리 마을주민들과 뜻을 같이 한 시민들의 저항을 강제진압한 것이 다름아닌 노무현정부라는 사실에 어찌 회한이 없을 것인가. 단일기지로는 세계 최대인 평택 미군기지는 ‘USAG Humphreys, AP 96271, USA’라는 미국 주소가 붙은 한국속의 미국땅이다. 안에 골프장이 있고 너무 넓어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기지로 인해 많은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온 터전과 조상의 체취를 영원히 상실하고 말았다. 월남(越南)한 실향민들은 통일되면 갈 수 있는 고향이라도 있지만 대추리 일대 주민들은 고향이 영영 사라진 기구한 실향민이 된 것이다.

 

정태춘은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4월 한가지 의미있는 소식을 전했다. 10년만에 음악작업을 재개키로 한 것이다. 국보급 아티스트의 새로운 음악을 계속 볼 수 있다는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영화의 종결부(終結部)에서 그이는 이렇게 독백을 한다.

 

내가 이상주의자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은 미래사회가 아니고 과거사회지. 이를테면 아주 오래전의 수렵채집의 사회라든지, 생산성이 아주 낮은 사회, 그리고 부를 축적하지 않았던 사회, 화폐를 만들거나 이자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던 사회, 그런 세계, 비슷한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어떤 대륙에,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 난 사실 그런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이상 사진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컷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곡, <정동진3>.

 

 

정동진에 파도 치고 거기 무지개를 향해 낚시를 던지는 사내 하나 나는 봤지

그 투명하고 가느다란 낚싯줄에 매달려 허공을 날아가는 새우, 나는 봤지

아니, 납덩어리에 풍덩,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 그 사내 장화 발치에 죽은 생선들이 담긴 일제 아이스박스도 나는 봤지

 

동태평양, 멕시코 연안 그들의 긴 긴 모래밭,

그 찬바다에 낚시를 던지고

석양을 바라보며 웅숭그리고 섰던 맨발의 추레한 중년 멕시칸 사내와

그 사내 발치의 작은 고무통,

거기 어린 가오리들의 슬픈 목숨과

그들의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도 나는 그 바다에서 봤지

그 바다에서...

그렇게, 아직 20세기의 제 3세계 남루한 사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싸구려 미끼를 던지는 먼 먼 바다위론

태양 빛, 한 태양빛 아래 동과 서로 날짜를 바꾸는 일자변경선이 지나가고

그 보이지 않는 선 위로 또

파도보다 조밀한 해도를 따라 거대한 상선들과 구축함대가 지나가고

뭍에 없는 희망을 파도 속에서 찾으려는가

~ 바하 캘리포니아, ~ 정동진

 

맨발과 만성 비염의 코흘리개 애들, 그리고 부스럼 투성이의 멕시코 개들,

먼지 뽀얀 트레일러 마을과 찡그리며 인사하고

긴 긴 사막 위로 끝도 없이 세워진 함석 판때기 사이

철통같은 국경선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오다

US 5번 국도 해안 절개지 아래 길다란 평원에서 기동훈련하는 수 십대의 헬기 부대도 나는 보았지

, 나른한 샌디에고 해안, 온 몸 출렁거리는 지방질의 살갖 뽀얀 백인 노인네들 일광욕 즐기는

저 풍요조차 지루한 백사장의 늘 따스한 햇살과 컬러풀한 튜브들도 나는 봤지

~ 바하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정동진...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가...

 

강릉 시내 들어와 중앙시장 골목을 헤매다 마른 오징어를 한 축 샀지

또 한 골목을 돌아 좌판에서 생선 내려치는 무쇠칼, 가장 큰 칼을 하나 샀지

후두둑 소나기 노점 천막을 후려치고 지나간 뒤

중앙로 철길 너머 먼 하늘 위 쌍무지개로 나난 봤지

 

그날 밤에도 영화배우 박 아무개는 백주를 마시며 돈을 벌고, 돈을 세고, 또 맥주를 마시고

나도 테레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취해 잠들어

꿈에 다시 동태평양 그 찬 바다와 그 투명한 햇살

정동진 바다 끝 외무지개와 강릉 시내 하늘 위의 쌍무지개를 다시 봤지

또 세 쌍무지개, 네 쌍무지개를 봤지

그리고, 아직 날이 서지 않은 그 무쇠칼로 저 허망한 무지개들을 밤 새 자르며, 휘두르며...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다시 수평선 멀리 멀리 솟아오르는 수많은 무지개들을 나는 봤지

 

~ 정동진, ~ 정동진...

"선로에 계시는 분들은 열차가 들어오니, 모두 바닷가쪽으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 정동진, ~ 정동진...

"모두 바다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바다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 정동진, ~ 정동진...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적어도 두 번은 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닌게 아니라 음유가객에서 노래하는 투사로, 사회비평가에서 생명운동가로 진화하는 정태춘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기엔 한번의 감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러닝타임 113분간 노래 28곡을 와이드 스크린에서 빵빵 터지는 음향과 함께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을 것이다.

 

홍대입구 인디스페이스에서는 621일까지 상영한다. 부디 놓치지 마시라.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상영관 안내

https://han.gl/hEZAZ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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