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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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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소년의 사자후

“도둑놈이 되고프면 갈라서고 나라 사랑하면 하나되라”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21-02-17 (수) 13:37:30

도둑놈이 되고프면 갈라서고 나라 사랑하면 하나되라

 

 

여러분 하나가 되세요. 둘이 모이면 두갈래, 셋이 모이면 세갈래, 백이 모이면 백갈래, 서로 갈기갈기 찢어져 이참에 통일독립을 이룩하지 못할 것이면 나는 여러분들을 도둑놈으로 몰겠습니다. 도둑놈. 도둑놈이 되고 싶으면 갈라서시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하나가 되셔야 합니다. 딴 거 없습니다. 우리 겨레는 어찌 되었든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1950, 열여덟 살. 피란길에 올랐던 백기완은 추위를 피해 쓰러져 가는 어느 초라한 집에 들렀다. 집주인이 사진관을 하였는데 정말 똑똑하게 생겼다며 이 사진을 찍어주었다.(*학교 다니지 못해 학생복을 입어보지 못한 백기완에게 사진으로나마 학생복을 입혀주었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이런 연설을 10만 군중 앞에서 거침없이 하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할까요그것도 만 13세 소년이 원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주인공은 바로 영원한 불쌈꾼(혁명가)’ 백기완 선생입니다.

 

194612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연사중 하나로 초청된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32녀중 넷째로 태어난 백기완은 해방뒤 아버지를 따라 동생들과 서울로 왔습니다.

 

서울서 공부시킬 생각으로 아버지가 어린 자녀들만 데리고 힘들게 서울로 넘어왔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이라 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서울운동장 연설은 아버지의 지인으로 기독교청년회 총무를 지낸 현동완 선생이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에게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백기완은 내복도 없이 홑바지 하나만 입고 추워서 떨다가 아버지가 써준 연설문 원고를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백기완이 연단에서 얼떨결에 외친 말뜸은(화두는) 그이가 평생을 천착(穿鑿)통일이었습니다.

 

여느 소년이라면 10만 군중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다가 내려왔겠지만 백기완은 통일독립을 이룩하지 못할거라면 여러분들을 도둑놈으로 부르겠다. 도둑놈이 되고 싶으면 갈라서고, 나라를 사랑하면 하나가 되라고 일갈(一喝)했으니 확실히 영웅호걸의 싹수를 보인게 아닐까요.

 

15일 새벽 별세하셨다는 소식에 점심 약속을 뒤로 미루고 빈소(殯所)가 차려진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래야 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의 온실속에서 아무것도 몰랐던 저의 스무살을 일깨워주신 분이었으니까요.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들어준 두 분을 꼽는다면 리영희교수(1929-2010)와 백기완선생(1933-2021)일 것입니다. 그 무렵 출간한 책으로 리영희교수는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1974년 출간)가 있었고 백기완선생은 딸에게 들려주는 편지형식의 이야기 <자주고름 입에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9년 출간)가 있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젊은이들에게 국내외 정치에 대한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을 제시했다면 <자주고름 입에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는 말 타고 달리는 고구려의 여성상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여성, 역사의 주인인 민중을 강조했습니다. 둘 다 금서(禁書)였고 독재정권의 세뇌교육에 찌든 젊은 세대들의 눈을 뜨게 하는 필독서였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백기완선생은 대학시절 제겐 한마디로 태산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신의 글 한줄.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애오라지 없는자와 소외된자. 차별받는자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조문 모습은 백기완선생님을 80년대부터 보좌한 우문명선생이 촬영해주었다


 

대학시절부터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세 인물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 장준하선생, 그리고 백기완선생입니다. 분단된 조국 통일을 위해, 반독재와 참다운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받친 이 분들은 서로간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해방전후 김구 주석의 비서가 장준하 선생이었고 장준하 선생은 훗날 백기완 선생과 의형제의 연을 맺었습니다



1974년, 마흔두살. 의형제맺은 독립군 출신 장준하선생과 박정희정권의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군법재판을 받는 장면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또한 김구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를 한 일본에 복수하기 위해 일경을 처단한후 피신과정에서 장준하선생 조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습니다.

 

소년 백기완은 1947년 경교장을 찾아가 김구선생에게 처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김구선생은 백기완을 자기 무릎에 앉히고 조부와의 인연을 얘기하다 울먹이며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기완아, 네가 크면 내 말을 알아들을 거다. 통일이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싸움이 아냐. 일본 제국주의를 비롯한 전 세계 침략자를 한반도뿐만 아니라 이 땅 지구에서 몰아내는 싸움이야. 기완아, 늙은 나에게 소련의 앞잡이다, 미국의 앞잡이다라고 중상모략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끄덕도 안 해. 통일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싸움이 아니라니까. 너희 세대가 오면 통일은 모든 제국주의와 싸우던 양심이 하나 되는 것이라는 말을 동포와 백성들에게 말해다오.” - ‘불쌈꾼 백기완’(오마이뉴스) -

 

 

김구 선생의 고결한 민족사랑은 백기완소년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고 평생 올곧은 길을 걷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이는 집안형편으로 5학년이 유일한 정규교육이었지만 비상한 두뇌와 독학으로 10대에 영어 천재로 신문기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1951년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돈씨가 해외유학장려회 첫 수혜자로 해외유학을 권유했지만 싸우는 조국을 두고 나혼자만 유학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1952년부터 1961년까지 그이는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을 열었고 도시빈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농민운동을 이끌었습니다.



1954, 스물두 살, 전쟁이 끝난 직후 백기완은 벗들과 함께 자진학생녹화대를 결성하여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나무심기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 7년 동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강산에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고, 이어서 강원도 양양, 지리산 일대, 경기도 여주 등을 돌며 자진농촌계몽대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에 투신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군사정권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선생은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 노동운동을 벌였고 가열찬 시대 늘 투쟁의 선봉에 섰습니다. 한국진보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쌓으면서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충무로에 열고 <항일민족론> <백범어록>을 출간했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잔혹한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걸음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1984년 백범사상연구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통일문제연구소로 확대설립한 그이는 19876월 항쟁을 가두에서 이끌었고 87년과 92년엔 민중대통령 후보로 두차례 출마하며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시대를 알렸습니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특히 1990년엔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하며 방북질의서를 발표했고 1992년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를 결성하는 등 통일운동을 적극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들어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노나메기 운동을 제창했습니다.

 

기실 노나메기는 황해도 은율의 어린 시절 항상 배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해준 말에서 깨닫게 된 교훈적 실천입니다.

 

 

문을 차고 집에 들어와 '엄마 밥 줘' 하면 고개만 끄덕였어. 솥을 열면 콩국 한 그릇과 강냉이 한 자루뿐이었지. 그걸 홀랑 먹고 배고프다고 어머니를 졸랐어.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어. '야 기완아! 이웃들이 다 어렵게 사는데 네 배지()만 부르고 네 등만 따시고자 하면 너 인마, 키가 안 커!' 그 말이 내 일생을 길라잡는 새김말(좌우명)이 돼버렸어. 몸뚱어리 키도 안 크지만 마음의 키도 안 큰다는 말이야. 이 말보다 더 위대한 말이 어디 있어!”  - ‘불쌈꾼 백기완’(오마이뉴스) -

 


1990년, 쉰여덟 살, 영등포시장 골목. 노동자탄압 경찰폭력 규탄 평화행진 중 진압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실신한 백기완 선생.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선생의 공로 중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감칠맛 나는 순 우리말을 살리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입니다. 잊혀진 우리 말을 살려쓰고 때로는 스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새내기, 달동네, 모꼬지, 동아리 등 오늘날 일상에서 쓰이는 말들이 선생의 작품입니다.

 

이밖에 말뜸(화두) 채알(천막) 배울(학교) 새뜸(소식) 하제(희망) 꾸림모임(발기위원회) 멱빼기(암살) 새긴돌(시집) 등 가히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해도 좋을만큼 정감있는 우리말을 보급시킨 공로로 2002올해의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일 시청앞 광장에서 엄수(嚴修)되는 영결식 제목은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선생 사회장입니다. 선생의 큰딸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가 노나메기였다고 전합니다. 너도 나도 일하고 모두가 바르게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은 필연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조국의 세상일 것입니다.


 



 

에필로그

 

태산은 감히 범접할수 없어도 준령(峻嶺)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생깁니다. 태산은 머물지 않고 스스로 다가왔습니다. 광장에서 불호령을 내리고 저자거리에서 난장을 치고 힘없는 농민 노동자의 거친 손도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도 함께 흘렸습니다. 참으로 인간적인 태산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별세에 정치권과 청와대의 많은 인사들이 과거의 인연을 추억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대통령을 비롯한 조문 행렬이 이어집니다. 여느 장례식장과 달리 조화(弔花)나 조기(弔旗) 한 장 걸려 있지 않은 풍경을 보고 느끼는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화를 거창하게 쫘악 갖다가 위세를 떨치는 것도 아니고 절대 보내지말라. 그럴 돈으로 노동자 농민을 도우라선생님의 유언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노동자 복직,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5일 영안실에서 뵌 평생 동무’ 방동규 김승환 선생님은 백기완의 품을 찾아들었던 많은 아이들이 나가서 잘되었지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뼈있는 말씀을 하시더군요선생님은 한때의 추억이 아닙니다머리 한번 조아리고 눈물 찔끔 흘리더니 돌아나와 하던 짓 계속 할테면 영정속 선생님께서 벽력같은 불호령을 내릴 것입니다


내로라하는 당신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 찾아 초심으로 돌아가세요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다시금 분골쇄신 하세요한살매를(평생을) 관통한 선생님의 가슴서늘한 다짐을 결코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갈기갈기 찢어져 이참에 통일독립을 이룩하지 못할 것이면 나는 여러분들을 도둑놈으로 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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