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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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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린선생과 통일광장 사람들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21-01-27 (수) 11:20:00


 

신념(信念)의 화신’, ‘신념의 강자

 

흔히 비전향장기수들을 이르는 표현입니다. 비전향장기수는 인민군 포로와 남파된 공작원, 반체체 운동가들로 장기 복역을 하면서 사상 전향(思想 轉向)을 하지 않은 이들을 말합니다.

 

남쪽에서는 98년까지 이들 장기수들을 회유하고 고문하며 소위 전향 공작을 해왔습니다. 사상 전향 각서라는 종이쪽지에 서명하면 쉽게 풀려날 수 있음에도 이들은 30년~40년을 감옥에서 살면서 전향을 거부했습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감언이설(甘言利說)의 회유속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킨 것입니다.

 



그 중 한 분이 23일 타계했습니다. 박종린(89) 선생님. 이날 새벽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인천사랑병원 장례식장을 서둘러 찾아갔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여 밖에 안되지만 당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은 온갖 형극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811월초 첫 방북을 앞두고 부평 전세방에서 홀로 살고 계신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선생님과 양부-양아들의 인연을 맺은 6.15남측위 김재유 공동대표의 주선 덕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담담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선친은 일제때 김일성주석과 함께 항일유격대원으로 활약하다 체포돼 일제의 고문을 받고 해방 이듬해 타계했다고 합니다. 혁명가 유자녀들이 다니던 만경대혁명학원 1기생으로 졸업하고 군입대후 소좌(소령)로 근무하던 1959년 신혼의 아내와 백일된 딸 옥희를 남겨두고 당신이 지도하던 공작원 대신 남파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쪽에 있는 조직원에게 지령만 전달하고 바로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한 조직원의 배신으로 체포되면서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모란봉간첩사건으로 엮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선생은 교도소내 인권투쟁을 벌이다 괘씸죄까지 더해 또한번의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쌍무기수(雙無期囚)’라는 기구한 별칭도 얻었지요.

 

혹독한 고문과 끝없는 회유의 전향 공작에도 굴하지 않은 선생은 중환자가 되고 나서야 병보석으로 출감할 수 있었습니다. 복역 34년만인 1993년의 일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 등 목회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명을 건진 그이는 그러나 또한번의 비극에 몸서리쳐야 했습니다.

 

북녘 가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중국에 살았던 형님 가족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극적으로 연락이 닿은 것이 도리어 화근이었습니다. 1997년 조카를 통해 남편의 편지를 전달받은 북녘의 아내(로인숙여사)는 남편의 기막힌 사연에 충격을 받고 그만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아내의 죽음도 2년이 지나서 알았다고 합니다. 외동딸 옥희가 어머니가 돌아가신걸 아버지가 알게 되면 충격을 받으실지 모른다고 중국의 조카들에게 당분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선생은 밤새 소주를 마시며 죽고만 싶었다고 합니다. 며칠을 방황하던 선생은 어떡하든 살아서 딸 옥희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2000년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으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그 속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통일부가 선생이 병보석으로 출감할 때 목회자들이 대신 쓴 신변각서를 사상전향으로 분류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또한번의 기막힌 비극이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당시 통일부가 그처럼 엉터리 결정을 내리지만 않았더라면 선생님은 41년만에 고향에 돌아가 딸과 사위, 두 손주와 함께 늦게나마 행복한 여생(餘生)을 보냈을 것입니다.

 

2차 송환이 될 것이라는 꿈은 기약없이 20여년 세월이 흘렀고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선생님은 지난해 가을 끝내 병석에 눕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 고문받을 때나 송환 장기수에서 제외되고 청천벽력같은 아내의 부음(訃音)을 들을 때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버틴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측 정부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되는 것을 보고 생전에 가기는 틀렸다고 삶의 의욕을 잃은 걸까요.

 

몇 달간 전혀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고 콧줄로 최소한의 영양으로 연명하던 선생님을 살리기 위해 풀뿌리통일단체 AOK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나섰습니다. 관련기관과 단체, 청와대까지 호소하며 1993년 위중한 장기수 리인모선생을 조건없이 돌려보낸 김영삼정부처럼 문재인정부의 결단을 탄원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습니다.

 



남북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나서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감동적인 연설로 평양의 15만 시민을 울리고, 민족의 성지 백두산까지 오르는 역사적인 순간을 연출하면서도 우리 대통령은 생의 마지막에 있는 노인을 돌려보내는 인도적 조치도 하기 어려운 자리에 있나 봅니다.

 

인천사랑병원 장례식장엔 주로 시민단체 진보단체 통일단체에서 보내온 많은 조화(造花)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상주는 중국에서 온 조카 내외가 맡았고 전체적인 영결식 준비는 장기수선생들의 모임인 통일광장(대표 권낙기)과 범민련 관계자들이 맡았습니다.

 

영안실에서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강철같은 분이었습니다. 지난 한달여간 피골이 상접하여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위중한 상태였지만 의식이 돌아올때마다 난 죽지 않아. 갈거야. 휠체어 타고서 고향에 갈거야하셨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이때라도 송환 결정을 했다면 선생님은 93년 리인모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기적처럼 일어나 여생을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도대체 인도주의 앞에 뭐가 그렇게 어렵고 따질게 많은지 우리같은 범부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상중에 올해 아흔둘 되신 안학섭 어르신이 일행과 함께 오셨습니다. 강제전향을 거부하고 감옥에서만 44년을 사신 분입니다. 95년 출소당시 김선명 선생(45년 복역)과 함께 세계 최장기 수형자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김선명선생은 20001차 송환때 북으로 돌아갔지만 개성이 고향인 안학섭 선생은 자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남쪽 생활이 고달프고 힘겨웠지만 칠순에 인연을 맺은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최근에 북을 여러번 다녀왔다고 소개를 드리자 안학섭 선생님은 미소지으며 따뜻한 손으로 악수를 청해주셨습니다. 연세를 드실수록 눈에 밟히는 곳이 떠나온 고향 아니겠습니까. 가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코앞에 있는 땅, 왕래라도 하면 될 것을 70년 넘게 혈육의 생사조차 모르고 한 겨레가 등지고 사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을까요. 유해(遺骸)조차 북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선 할 말을 잊었습니다.

 

비록 박종린 선생님은 가셨지만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 후학들, 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있기에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영결식을 치르고 나면 선생님의 유해는 종로구 금선사에 안치됩니다. 이곳엔 아직 고향에 가지 못한 다른 장기수 어르신들의 유해도 봉안돼 있습니다. 이분들이 부디 그립고 또 그리운 고향의 가족품에서 영면(永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하여 지금 생존 장기수 어르신 열한분(이광근, 문일승, 김교영, 이두화, 양원진, 최일헌, 박정덕, 박희성, 박순자, 김영식, 양희철)이 더 늦기전에 송환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박종린선생이 생전에 자택에서 평양에 있는 외동딸 옥희와 두 손주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중국 사는 조카를 통해 10여년전 전해받은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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