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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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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그러나

文정부 아직 기회는 있다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20-06-20 (토) 10:18:11


InterKorean_Summit_1st_v11.jpg

 

 

4.27판문점선언의 상징적 존재였던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됐습니다. 그간의 남북교착 국면을 마음졸이며 지켜봤던 사람들,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갈구해온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충격이고 가슴을 갈갈이 찢는듯한 아픔이 느껴질 것입니다.

 

문재인정부를 비롯하여 상당수 지지자들은 북의 거친(?) 태도에 당혹해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화가 난 것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남북화해의 상징물을 폭파시킬 수 있는지, 또한 문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몰상식하고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을 아는 사람들은 결국 올 것이 왔다고 혀를 찹니다. 4.27 판문점선언이후 22개월간 북은 그야말로 무한 인내로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의 빌미가 된 탈북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가 판문점선언을 위반하는 행위라는걸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 64일 김여정 로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삐라 문제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관련법 추진 등 남측의 때늦은 수선은 북을 더욱 격노케 했습니다.

 

그동안 관련 법이 없어서 막지 못했다는 것이냐는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2차 담화를 통해 남북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9일만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북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북측이 지난 26개월간 어떤 심정으로 있었는지 아래의 글을 한번쯤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박근혜' 시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의 훈풍(薰風)201811일 평창올림픽 참가를 시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불기 시작했습니다.


210일엔 김여정 제1부부장이 특사로 친서를 갖고 방남, 평창올림픽에 남북이 함께 입장하는 감격적인 순간이 연출됐습니다. 4.27 판문점에서 남북정상 회담이 이뤄지고 6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회담이 열리기까지 남북은 탄탄대로를 달렸지요.

 

남북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30분간 단독회동을 할 때도, 트럼프의 몽니로 싱가포르 회담이 무산위기에 처했을때 북측 판문각에서 남북정상이 긴급 회담(5.26)을 했을 때도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깊은 신뢰를 보였습니다.


InterKorean_Summit_1st_v1.jpg

 

북이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간첩혐의로 수감된 미국인들을 풀어주고 풍계리 핵시험장을 완전폭파하는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도 북미간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문대통령에 대한 돈독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북은 싱가포르에서 아무런 댓가 없이 6.25때 희생된 50인의 미군 유해를 반환하는 성의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이 한머리땅(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동시적, 단계적 방식이 아니라 북의 비핵화를 먼저 요구하는 강짜를 부렸지만 운전자’ ‘중재자’ ‘촉진자를 자처하는 문대통령을 믿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의 파격은 9월 평양에서도 이어졌지요. 문 대통령 부부를 수십만 평양 시민들이 연도에서 열렬하게 환영했고, 문 대통령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사상 초유의 연설을 하였습니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 올라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은 우리 민족의 일은 우리가 자주적으로 풀어나갈 것을 엄숙히 선언한 명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한달여 뒤 문대통령은 한미워킹그룹의 족쇄를 차는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문대통령의 순진함과 참모진의 경솔함이 빚은 비극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아마도 문대통령은 북미간 2차 회담이 이뤄지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단초(端初)가 마련되면 한미워킹그룹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북과의 대립에서 비롯되는 엄청난 분단의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최근 강경매파 존 볼튼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서도 언급되었듯 트럼프는 북과 진정한 관계 개선 없이 시간을 끌며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일관했습니다. 북미간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며 한치도 나아가지 않았지만 김위원장은 문대통령이 주도자의 위치로 나오기를 끈기있게 기대했습니다.

 

2019년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조건없이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문대통령에게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애당초 유엔의 제재와 무관한 것이었고 이명박근혜의 일방적인 결정을 무효화하는 선언만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떠준 밥술을 입에 물기는 고사하고 응답조차 하지 않는 비례(非禮)를 범했습니다. 트럼프 역시 223일간의 열차대장정 끝에 베트남 하노이까지 간 김 위원장 앞에서 트럼프 쇼의 허망한 본질을 노출하였습니다.

 

북이 민생분야 제재만 풀어줘도 영변핵단지를 폐쇄하겠다는 경천동지할 제안을 내놓았지만 미국은 수용 못할 요구를 추가하며 회담 테이블을 뒤엎었습니다. 애당초 미국은 북과 합의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하노이결렬이후 김위원장은 문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게 되었습니다. 남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사사건건 한미워킹그룹에 끌려다니는 것을 확인한 이상,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미국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면서도 2019년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고 공언한 김위원장은 7월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에 응하며 깜짝 회동을 갖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이날 문대통령은 철저히 조연이었습니다. 그전 두차례의 만남에서 적극적으로 포옹하며 반가움을 표했던 김위원장은 문대통령과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문대통령이 먼저 포옹하자 어색하게 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들어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와 11월 미국 대선이 시계 제로상태가 되면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북이 지난 3월 문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였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김정은 위원장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우리 국민들을 위로하고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는 격려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청와대가 구체적인 내용을 함구(緘口)했지만 김위원장은 이날의 친서에 마지막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문대통령이 미국 눈치를 보지않고 남북간 합의를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말입니다. 추정컨대 문대통령은 늘 하던 식의 원론적인 답을 했을 것입니다. 4월 총선이 잘 끝나면 좋은 일이 생길거라고 희망의 메시지도 섞어서 말입니다.

 

4월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음에도 문재인정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북의 임계점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다가오는 6.15선언 20주년이 오기전 방점을 찍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사실 64일 남정부의 책임을 물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첫 담화는 문재인정부에게 일말의 기회를 남긴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충격 행동을 할것인지 일일이 열거하면서도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절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청와대가 담화의 엄중함을 조금이라도 눈치 챘다면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되기전에 한미워킹그룹 해체를 통보하거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무조건 재개를 선언하고 3차 남북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판문점선언을 정면으로 위배한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못한 깊은 유감의 뜻이라도 전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북삐라는 백해무익하다며 살포금지법을 추진하겠다는 한가로운 입장만 내놓았을 뿐입니다. 대북삐라는 일과성 행위가 아닙니다. 북이 직접 명시한 것만 해도 2019년에만 10차례, 올들어 3차례나 됩니다. 판문점선언을 한 2018년을 포함하면 무려 30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삐라의 내용은 가관입니다. 김위원장을 입에 담지 못할 표현으로 비난하고 낯뜨거운 장면까지 담고 있습니다. 북의 최고지도자는 단순히 정치적 리더가 아니라 당과 군대 인민의 정신적 지주, 즉 수령의 개념입니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모독은 북 인민 전체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남쪽에서도 안하무인으로 초법적 행동을 합니다. 민족의 화합을 방해하고 전쟁을 조장하는 행위는 반드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올해 살포한 삐라는 코로나19로 북이 육상 해상 항공 등 국경을 철옹성(鐵甕城)처럼 봉쇄한 가운데 날려보낸 것이고 코로나균을 묻혀 퍼뜨리겠다는 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이정도라면 북측이 지금까지 인내한 것이 도리어 신기한게 아닌가요.

 

청맹과니같은 청와대 말고도 북을 어이없게 만든 것은 담화를 멋대로 해석하는 여당 의원들과 대북전문가들입니다. “북한은 자존심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좀 강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김홍걸의원) “종이떼기 몇개 날아간다고 북한 체제가 흔들리면 그 체제를 반성해야 된다”(박용진의원) “북한의 속내는 어려우니 한국이 나서서 도와달라는 뜻”(정세현 전장관) 등등 '관심법'을 방불케 합니다. 북도 오죽 답답하면 가을뻐꾸기 같은 소리 하지말라” 표현할까요.

 

전문가들이 상황을 낙관하며 눈여겨 보지 않은 것은 또 있습니다. 1차 김여정 담화이후 문대통령에 대한 비난기사가 북의 모든 주민들이 보는 로동신문에 게재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은 청와대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면서도 대외 매체를 통해서만 해왔습니다. 남북정상이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했기때문이지요. 그래서 북 주민들은 문대통령에 대해 지금까지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동신문을 통해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주민들은 옥류관 요리사의 비난처럼 노골적인 분노를 표하며 규탄시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젠 김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도 주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철거가 아닌 폭파로 해체한 것도 북의 관행상 크게 이상할게 없습니다. 북은 어떤 것을 실행할 때 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고 되뇌입니다. 그리고 한번 결정하면 단호히 실행에 옮깁니다.

      

지난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 공법으로 해체했고 풍계리 핵시험장도 폭파로 없앴으며,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GP초소도 남한과 달리 폭파를 선택했습니다. 없애기로 한 이상 폭파만큼 결연한 의지는 없습니다. 그게 그들의 방식입니다.

 

북은 에둘러 가지 않고 직설화법을 씁니다남측과 미국의 대북전문가들이 살라미전술이다’ ‘벼랑끝전략이다별별 소리를 지어냈지만 북은 꼼수와 어울리는 체제가 아닙니다.

 

북의 의도를 분석 할 때 어설픈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식 담화와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발표만 봐도 어떤 수순으로 나갈지 훤히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을 한번 겪어보지도 못한 전문가들은 모든 것을 일단 꼬아서 생각하고 멋대로 풀이해 헛다리 짚는 우매함을 수십년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북을 좀 안다는 일부 전문가들이 과거 잣대로 분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3년간 북은 손전화기(휴대폰) 보급을 통한 실시간 정보공유와 물가통일, 사회주의 시장경제 착근, 식량 전기문제 해법 등 가히 혁명적인 변화와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과 신망, 그리고 자신감은 밖에서 짐작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섭니다. 그런데 과거 북을 다녀온 전문가들은 옛 생각만 하고 구태의연한 관점에서 해석하며 오발탄을 날리고 있습니다.

 

삼일절과 광복절 등 기념사에서 대통령의 일부 대북 메시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천문학적 무기 수입과 변형된 한미군사훈련 등 남북정상간 합의와 어울리지 않는 행보는 청와대 내부에 북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고 미국식 이해와 사고에 갇힌 참모진이 많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잘못된 조언을 하는 참모진은 외부 전문가들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안타깝지만 북은 문재인정부와 다시는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다리를 건넌 것입니다. 일개 통일부 장관을 교체하고 외교 국방 라인업을 새로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지난 2년간 문재인정부가 되풀이한 실책과 실망으로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는 북이 무례하고 몰상식하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문재인정부는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그저 북과의 갈등, 대립의 재현이 아닙니다. 지난 2000년 우리 민족이 반세기만에 잡았고 지금껏 놓지 않았던 평화통일의 희망을 물거품으로 돌리고 완전 파탄으로 갈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279.19는 물론이거니와 6.1510.4 선언이라는 선대 대통령의 위대한 걸음마저 지워버린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것인지 엄중하게 묻고자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담대한 선언과 실천입니다. 모쪼록 단 한번만이라도 미국의 품에서 벗어나 민족자주적인 결단을 내려주길 간절히 또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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