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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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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 사월에

사일구와 사일륙
글쓴이 : 로창현 날짜 : 2019-04-19 (금) 21:46:05

 

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사월은 잔인한 달이여..”

 

봄볕 속 오후의 나른함이 몰려 오던 사월 어느날. 저는 입시 실패로 서울역 인근의 재수종합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세계사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점심후 春困症(춘곤증)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창밖에서 들려오는 봄맞이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賞春客(상춘객)들의 들뜬 목소리가 우리들의 귀를 간지럽혔지요.

 

수업내용은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소리에 정신이 팔린 것을 선생님이 눈치 챘습니다. 재수생이 아니었다면 꿈많은 대학신입생으로 봄 볕 가득한 교정을 누볐을 우리들이 안쓰러웠던 모양입니다. 충청도 출신의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다 빙그레 웃으며 사월은 잔인한 달이여재치있는 한마디를 했던게지요.

 

,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T 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황무지(The Waste Land)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5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엘리엇이 사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을 저는 우울의 패러독스라고 해석합니다.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이라는 副題(부제)처럼 암울한 회상을 통해 서구의 정신적 황폐함을 통박했습니다. 약동하는 활기찬 봄의 상징, 사월을 시인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은잔인한 달로 묘사합니다. 차라리 겨울은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어 따뜻했다면서요.

 

오래도록 사월은 화창한 봄날, 입시에 포박된 스무살 젊음의 무력감이 스멀대는 잔인한 달로 기억의 창고에 남았습니다. 기실 사월은 유독 우리 젊은이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변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1960419일과 2014416. 54년의 間隙(간극)은 있지만 사일구사일륙은 비슷한 음운처럼 공통점도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의 희생속에, 민주혁명의 導火線(도화선)이 된 사일구는 이승만정권의 하야를 불러왔고 사일륙은 박근혜정권의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촛불혁명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사일구혁명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1960년 마산상고 신입생으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실종 한달만에 바다에 시신으로 떠오른 고 김주열 열사입니다. 당시 그는 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국민들을 戰慄(전율)케 했습니다. 활화산같은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사일구 혁명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4.16 세월호 참사는 시민들에게 집단 트라우마의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지금도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파는 생생한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세월호_침몰_사고_상공_촬영.jpg

이하 사진 www.ko.wikipedia.org

   

그날 저는 한국에 있었습니다. 아침 TV에서 속보로 전남 진도 인근에서 페리호가 좌초됐다는 자막이 떴을 때만해도 이렇게 큰 참사가 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TV 속 세월호는 기울었지만 바다는 잔잔했고 탈출할 시간은 충분해 보였습니다. 주변엔 어선과 해경 함정도 있었고 헬리콥터까지 날면서 구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두어 시간후엔 소수의 희생자를 제외하고 전원 구조됐다는 자막도 뜨더군요. 불행중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오보였습니다. 입체적인 구조작전을 총지휘해야 할 해경 함정은 세월호에서 탈출한 선장과 선원 그리고 일부 승객들만 구조했을뿐입니다.

 

배안에 있는 승객 대부분은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단원고 학생들이었고 그들은 선실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듣고 탈출하지 않고 있었지요. 아이들의 당시 모습은 휴대폰을 통해 시시각각 전해졌습니다.

 

사고 초기만 해도 아이들은 전혀 動搖(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배는 기울어갔지만 가족과의 통화를 통해 사고 소식이 전국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해경 함정과 구조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해경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반쯤 기울어 잠긴 배의 창문속에선 학생들이 해경 함정이 다가가자 의자를 들어 창문을 향해 내려치는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두터운 강화유리창을 철제의자로 깨뜨릴 수는 없었지요. 절박하고 안타까운 그 몸부림을 해경은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다. 대체 구조하러 가면서 창문을 부술만한 공구조차 없었단 말인가요. 아니, 구조를 하러 간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 자신들도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언필칭 정상 기능을 하는 국가라면 세월호 승객들은 대부분 구조되었을 것입니다. 악천후도 아니었고 육지에서 먼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배는 여러 시간에 걸쳐 서서히 침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만일 탈출 지시가 즉각적으로 있었다면 승객 대부분이 길어도 30분 안에 배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합니다. 배는 침몰했을지언정 승객들 절대 다수가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전체 탑승자 476명중에 무려 304명이 사망했습니다.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그 자리에 있다가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살다보면 불가항력의 사고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고로 희생되어도 원통절통한데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아이들을 가만 있으라고 방송해 죽음을 맞게 하다니요. ‘세월호는 해난사고다’, 이제 징글징글하다, ‘회쳐먹고 찜쪄먹고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고 막말하는 자들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1280px-Yellow_ribbons_for_memorial_of_the_sinking_of_MV_Sewol_(20140507).jpg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소리꾼 장사익이 목놓아 부르는 찔레꽃이 폐부를 찌릅니다. 이제 곧 찔레꽃 향기가 퍼져가겠지요.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되레 증오의 날을 세우는 사람의 몰골을 한 이들로 인해 사월은 더욱 슬픕니다.

 

그러나 사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부활의 달입니다. 아픔을 딛고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달입니다. 독재와 적폐를 일소하는 혁명의 달입니다. 거짓에 철퇴를 내리고 진실을 드러내는 각성의 달로 사월은 마침내 찬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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