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가격리(自家隔離) 2일차, 오늘은 보무당당하게 외출을 했습니다. 자가격리 들어가면 14일간 꼼짝 못하는데 무슨 ‘빽’이냐구요?
제가 이뻐서 봐준건 아니구요 ㅠ 보건소에서 코로나19 진단을 받아야 했거든요. 19일 인천공항 도착후 안내문엔 사흘안에 인근 보건소에서 코로나진단을 받도록 돼 있습니다. 코로나 초기엔 공항 도착후 진단받고 음성 판정이 나오기전까지는 집이나 격리시설로 못갔는데 지금은 많이 여유로운 셈이죠.
첫날 공무원 한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주소지가 정확히 기재안됐다면서요. 공항에서 준 양식마다 빠짐없이 기재했는데 왜 이런 일이... 그런데 주소지로 지원 식량이 올거라고 하네요.
초기엔 현금 10만원과 물품중 선택을 하게 했는데 요즘은 다 물품으로 단일화된 듯 합니다. 다만 지자체별로 내용물이 다르고 일부 지자체는 지원제도가 사라졌구요.. 지난 여름 강남 모 구에서 자가격리 들어간 친구 하나는 아무것도 못받았다고 투덜대더군요.
아침나절 휴대폰에 모르는 전화가 뜹니다. 택배 안내입니다. 20분정도 지나니 커다란 상자 하나가 도착합니다. 쌀과 햇반 휴지 라면 참치캔 김 인스턴트갈비탕 과자까지 12종입니다.
근데 같은 지역도 내용물이 조금 다르더군요.
보름전 같은 지역에서 격리된 분은 9종이었거든요. 그런가하면 지난 9월 타지역의 지인은 아래 사진처럼 가짓수가 훨씬 다양했구요. 여튼 이렇게 물품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받은 택배입니다 (2020.10.21)
보름전 같은 단지 사는 분의 택배입니다 (2020.10.4)
타지역에서 격리된 분이 받은 택배입니다 (2020.9)
이날 담당 공무원에게서 처음 전화가 왔습니다. 친절한 여성 분이었습니다. 몇가지 신상정보를 확인하고 오전 10시와 오후 8시 자가격리앱을 통해 발열 체크 등 자가진단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공항 직원은 오전 오후 아무 때나 해도 된다고 했는데 원칙은 8시간 간격 두 번이랍니다.
휴대폰이 한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연락이 올거라는 말도 하네요. 과거에 휴대폰을 두고 몰래 외출하는 사례가 있어서 움직임이 없으면 일단 전화가 오고 연락 두절이면 무단이탈(無斷離脫)로 판단, 공무원들이 출동하게 되는거죠.
매일 두차례 건강상태를 체크해 보고하는 자가격리앱
역시 철저한 대한민국입니다. 요즘 미국의 경우, 한국에서 오는 분들은 주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뉴욕주에선 최근까지 자가격리와 같은 제한사항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2주간 자가격리를 권장하는 안내문은 공항에 붙어있지만 따로 얘기하지는 않거든요.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 그런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입국장에서 세계 각지의 승객들이 뒤섞여서 나오는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건 정작 국내 승객들은 기본적인 관리가 있는데요. 캘리포니아 등 뉴욕보다 위험한 것으로 평가된 31개 주의 승객들은 2주간 자가격리를 요구받고 서명도 하게 합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확인 전화도 오더군요. 하지만 위치추적 앱을 깐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서 자유롭게 다니곤 합니다. 이러다 혹시라도 적발되면 1만달러(1100만원)의 벌금을 물게되니 조심은 해야죠.
이날 오후 2시경 보건소로 출발했습니다. 이번 외출뒤로는 격리기간 해제까지 꼼짝을 못하니 바깥공기를 제대로 쐬어야겠다 마음 먹었죠. 걸어서 15~20분 거리인데 큰 길을 마다하고 산길을 타고 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운동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려구요. 음~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출발한지 10분 정도 됐을까. 휴대폰에 ‘격리 이탈’ 문자와 함께 확인하라는 표시가 뜨기 시작합니다. 위치 추적이 된거죠. '확인'을 누르니 사라집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또 격리 이탈이 뜨기 시작하네요. 담당 공무원한테 미리 말했지만 찜찜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격리이탈이라고 자꾸 뜨는데 어떡하나요?"
"보건소 가시는거죠? 그냥 무시하고 다녀오세요."
"^^"
마스크를 끼고 언덕길을 오르려니 조금 숨이 가쁘네요. 사람도 없었지만 꾹 참고 마스크를 벗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초까지만 해도 밖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간간 눈에 띄었는데 이젠 밖에서도 거의 100%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슬픈 생각도 듭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한 남성과 산책하는 강아지가 부럽기도 하구요. 적어도 동물은 답답한 마스크를 안해도 되니까요.
보건소의 선별검사소는 주차장 한켠에 컨테이너 박스로 오피스를 만들고 야외테이블 몇 개를 깔아놓았더군요..일회용 비닐장갑을 주고 서류에 서명하게 합니다. 아참, 선별진료소에 갈때는 여권과 탑승 티켓을 지참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온 입국자라는 확인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항공권 확인은 굳이 하지 않더군요.
여기서 두장의 서류에 기입을 했는데 이미 공항에서도 작성한 자가격리통지서를 또 쓰게 합니다. 쓰는건 별게 아니지만 입국자라는 사실도 그렇고 컴퓨터에 정보가 입력이 됐을텐데 왜 불필요하게 같은 일을 하는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진단 키트를 받아들고 컨테이너 박스 뒤로 돌아가니 한 남성이 투명한 창사이로 팔만 내놓고 구강(입)과 비강(코)에 번갈아 채취를 합니다. 검사할 때 살짝 아프다는데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간질간질 재채기가 날랑말랑 할뿐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간단하게 끝이 났고 결과는 최대 이틀, 빠르면 다음날 문자로 통보된다고 하는군요.
근데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네요. 안을 보니 새니타이저가 두종류 들어있습니다. 마스크와 재사용이 가능한 세척형 체온계도 있구요. 뭘 이렇게 주는게 많은지 울나라 좋은 나라 맞습니다. ^^
새니타이저와 체온계 마스크 안내문
돌아오는 길은 여래사 앞을 지났는데요. 정문 입구 상단에 얼마전 입적하신 구룡사 주지 각성스님의 ‘속환사바(速還娑婆)’를 발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환사바'란 다시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 오시라는 말씀입니다. 불가에선 보통 범부중생에게는 극락세계에 가시라고 ‘왕생극락(往生極樂)’을 축원하지만 정작 스님들은 ‘속환사바(速還娑婆)’라 하여 ‘중생들이 사는 고해의 사바세계에 돌아와 다시 제도를 해주십사’하는 마음을 담는 것이지요.
구룡사와 여래사 그리고 제가 다니는 뉴욕원각사는 ‘불보사찰’ 통도사의 직계사찰이고 회주이신 정우큰스님을 인연으로 한 자매사찰입니다.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싶었지만 자가격리 중 다른 곳에 갈 수 없기에 마음만 빌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여래사 입구엔 뉴욕원각사 앞마당에도 있는 천진동자불상이 있습니다. 똑같은 천진불을 접하니 떠난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뉴욕원각사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ㅠㅠ
뉴욕원각사의 천진동자불
일산 여래사의 천진동자불
오는 길은 호젓한 숲길이라 한결 좋네요..운동을 하는 중노년 분들이 제법 많았구요. 뉴욕보다 쾌청함이나 청량감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코비드 이후 환경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모국의 가을도 어렸을 적 그랬던 것처럼 눈부시게 맑은 풍경으로 돌아오길 소망합니다.
<뱀발 - 蛇足>
격리 3일차, 오전 9시에 문자 하나가 날라왔습니다.
“로창현님..코로나19 검사결과 음성(Negative)입니다..”
이틀 걸릴지도 모른다더니 몇시간만에 나오네요..ㅎㅎ
역시 우리나라 빠른나라~
음성 기념으로 오늘 맥주라도 한잔 할까요..^^
초록불인데 격리기간 줄여주면 안되나요~ 쫌 ㅠ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wr_id=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