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산지 만 8년이 되갑니다. 결코 긴 세월은 아니지만 기자로서는 대단히 다채로운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 본사가 있는 신문의 뉴욕법인 편집국장으로 파견을 나왔고 민영통신사의 1호 뉴욕특파원으로 근무도 했습니다. 뉴욕의 라디오방송국 보도국장에 이어 급기야 ‘글로벌웹진’ 뉴스로의 대표기자로 네티즌 여러분과 만나고 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일간신문과 통신사 방송국 인터넷신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미디어를 한번씩은 겪어본 셈이니 지난 8년의 세월이 속이 꽉 찬 알곡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자생활을 수십년 할 수는 있겠지만 매체를 골고루 경험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확실히 행운아입니다.
바쁜 사주를 타고난 덕분인지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신문사에서 16년을 일하는 동안 거의 모든 취재부서를 섭렵했고 사회부 데스크를 하다가 소속 신문사가 위성방송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6개월간 태스크포스 팀장으로 차출돼 사업권을 따내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편집국에 복귀해서는 최연소 대기자(大記者)의 타이틀을 달고 현장을 누볐습니다. 이 모두가 저의 일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
그런만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무수히 많은 기사들을 썼습니다. 굳이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지난 24년간 거의 매일 서너꼭지의 기사를 썼으니 적게 잡아 일년에 1천여개, 총 2만4천개 이상의 기사를 작성한 셈입니다.
한국의 언론계 풍토는 십수년을 현장기자로 뛰다가 차장 부장이 되면 기자들을 관리하고 기사를 데스킹하면서 뒷전으로 물러앉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사회부 데스크를 했을 때도 워낙 젊은(?) 나이여서 기사와 칼럼을 쓰는 예외적인 부장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뉴욕에 와서는 직접 취재하고 기사쓰는 일이 더 많아져 북치고 장구치는 편집국장, 보도국장으로 일복하나는 타고 났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느닷없이 왠 경력타령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기자 연조에 비해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 주실것으로 믿습니다. ^^
특히 ‘세계의 수도’인 뉴욕에서 기자생활을 한 뒤로는 굵직굵직한 뉴스메이커들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주류인사들은 생략하구요. 한국만 따져도 전현직 대통령을 취재한 것이 다섯 번은 되니 말입니다.
사실 한국의 대통령을 취재하는 것은 별반 매력이 없습니다. 살아 숨쉬는 기사보다는 보여주기식의 행사를 지상중계하듯 해야하기때문입니다. 거기에 특급 VIP를 보호하기 위한 경호실과 비서실의 통제와 잔소리(움직이는 동선까지 이래라 저래라...대통령이 나타나기 전 20분전부터 대기시키는등) 때문에 짜증이 날 때가 더 많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두차례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한 기자는 행사장 앞에서 사진있는 ID(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NYPD 패스를 들이대며 “사전에 취재신청을 했고 뉴욕경찰이 신분을 증명하는 ID를 갖고 있는데 왜 요구하냐?”고 입씨름을 벌이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을 취재하는데 그정도 협조는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행사장 안에서 단상의 노대통령 부부 사진을 찍고 취재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로왔으니까요.
www.ko.wikipedia.org
이명박 대통령이 UN 총회 등 일련의 일정을 위해 20일 뉴욕에 왔습니다. 당선자 시절 한번 취재한 적은 있지만 대통령 취임후로는 첫 기회인만큼 직접 취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뉴욕총영사관이 취재를 희망하는 뉴욕의 언론사에 신청 양식을 보내라며 연락온 것이 지난 13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취재 가능한 행사를 세 개로 통보했더군요. 세계지도자상 수상과 동포간담회, 그리고 부인 김윤옥 여사의 뉴욕한식서포터즈와의 만남 등이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나 여권번호(시민권자는 운전면허증번호) 등 신원조회를 위한 자료도 요구했구요.
그런데 이 대통령 도착을 만 하루도 안남긴 그제 오후 정말 황당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뉴욕의 언론사에 보낸 단체메일을 통해 “행사 취재는 ‘동포언론 기자단 풀’을 구성한다”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행사별로 취재가능한 4개 특정 언론사를 선정한 것입니다.
풀 기자단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면 특정한 행사(주로 외국출장)에 취재기자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거나 모든 언론사가 동행취재하기 어려운 경우 출입기자단에 의뢰해 대표로 취재할 수 있는 기자들을 선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풀 기자단 구성은 전적으로 언론사의 권한이며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정합니다. 이렇게 선정된 풀기자들은 독점 취재의 권한을 갖는 대신 모든 언론사에 자료를 공급하는 의무를 갖게 됩니다.
제가 황당했던 것은 대통령의 뉴욕방문을 취재하는 동포언론사들이 풀기자단을 구성한 전례도 없었을뿐더러 풀기자단 선정과 관련해 일체의 사전 협의도 없었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떤 자가, 무슨 권한으로(이메일 발송은 뉴욕총영사관으로 돼있지만) 특정 언론사 4곳을 선정해 통보했을까요.
뉴욕총영사관은 '취재신청한 기자가 많은 반면 장소가 협소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뉴욕에서 취재 여력이 있는 언론사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뉴욕 언론이 남극의 대통령을 취재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설마하니 일국의 대통령 행사를 좁아터진 플러싱의 식당 구석에서 하려고 했을까요?
설사 정말 취재할 자리가 4명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그 4명은 모든 언론사의 합의에 의해 추첨을 하든, 협상을 하든 자율적으로 선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전에 전혀 연락받은바가 없으니 누군가 멋대로 해당 언론사를 낙점한 것이라고 볼수밖에 없습니다. 풀기자단의 ABC도 모르거나 아니면 동포언론들을 우습게 봤기 때문에 이런 막되먹은 경우가 벌어진 것이지요.
애당초 뉴욕의 동포언론은 기자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풀기자단을 구성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전술했다시피 풀기자는 취재에서 제외된 언론사를 위해 실시간으로 기사와 사진, 영상을 공급할 의무가 있고 송고절차와 방법을 100%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총영사관은 ‘각자 연락해서 자료를 받고 취재언론사는 요청시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손을 털었습니다. 취재를 원천봉쇄해놓고 “취재못한 니들은 재주껏 받아라”고 한게지요.
한가지 궁금한게 있네요. 총영사관은 일부 동포언론사간에 반목이 심해 자료협조가 전혀 안되는 참으로 애매한(?)관계라는 것을 알았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몰랐다면 자격미달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안하무인입니다.
백보 양보해도 어이없는 일은 모든 동포언론사에 당연히 오픈해야 할 동포간담회조차 취재를 제한한 것입니다. 동포인사들과 대통령이 대화를 하는데 동포언론은 달랑 4개 언론사만 허용하고 서울서 동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솔직히 본국 언론은 동포간담회에 관심이 없어서 동행한 풀기자단에서 두세명의 풀기자를 보내는게 관행입니다)은 자유롭게 취재하니 주객이 전도되도 유만부득입니다.
개그콘서트 버전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참 대~단한 총영사관과 외통부, 청와대가 세트로 나셨다 그쵸?
누구의 아이디어와 지시로 이같은 전횡(專橫)이 자행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저는 어제 뉴욕총영사관에 정식으로 질의 공문을 띄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독자들께서 뉴욕에 온 대통령도 변변히 취재 못하는 한심한 언론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관련자료들을 첨부합니다.
(공문의 효과인지 혹은 다른 언론사의 항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몇시간전 뉴욕문화원-총영사관이 아님-에서 동포간담회를 취재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왔습니다. 사전에 풀기자를 정해놓고 왜그러냐는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더군요.)
정말이지 안타까운 것은 급변하는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에도 불구하고 뉴욕총영사관을 비롯한 관계부처가 수십년전 사고에 매몰(埋沒)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뉴스로와 같은 인터넷 미디어의 파워는 말할 것도 없이 1인 블로거의 뉴스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특종이 되어 이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뉴욕총영사관 첫번째 공문>
Sent: Tuesday, September 13, 2011 3:46 PM
Subject: 이명박 대통령 방뉴욕행사 취재 안내(2)
기자님들께,
신청해 주실때 취재를 희망하는 행사명을 함께 기재하셔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뉴욕총영사관 문화홍보관실
주뉴욕총영사관
2011. 9. 13 (화)
Tel: 646-674-6000 Fax: 646-674-6039 E-mail: press@koreanconsulate.org
담당 : 주뉴욕문화홍보관
이명박 대통령 방뉴욕행사 취재 안내
□ 이명박 대통령님의 방미 일정이 한국시각 9일 공식발표 되었습니다. 이번 뉴욕행사의 취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를 참고하시어 총영사관 문화홍보관실(646-674-6035, press@koreanconsulate.org)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o 신청기간 : 2009. 9. 14(수), 17:00pm 까지
- 신원확인 등에 시일 소요
o 구체시간․장소 및 비표 관련 안내 : 행사 담당자가 개별 통보
o 취재 가능한 행사
o 신청양식
- 성명 : 국문과 영문
- 신분확인위한 번호 : 한국국적자(주민번호 또는 여권번호), 미시민권자(운전면허증번호 또는 여권번호)
- 소속사명, 직책, 주소, 신청인 연락처 (끝)
<뉴욕총영사관 두번째 공문>
Sent: Monday, September 19, 2011 1:02 PM
Subject: 이명박 대통령 방뉴욕행사 취재 안내
유엔총회 계기 동포언론사 행사 취재 안내
VIP 방뉴욕행사 취재 관련, 다음과 같이 동포언론 기자단 풀을 구성, 취재 토록할 예정입니다. 취재를 하게될 언론사에서는 취재한 기사와 사진 그리고 영상을 다른 언론사에서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언론사 요청시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당초 많은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있었으나 장소와 시간의 제약상 본부와의 협의과정을 통해 부득이 제한할 수 밖에 없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언론사에서는 각 행사당 기자 1인의 명단을 바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청은 이메일로만 받습니다. 참고로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현재 알려드릴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스로 총영사관 질의공문>
뉴스로 제110920
1. 총영사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이명박대통령의 유엔총회 행사 관련, 총영사관의 9월 19일자 이메일 통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다음 사항에 대한 총영사관의 답변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전례없는 동포언론사 풀기자단을 누가 무슨 권한으로 조직했는지,
-뉴욕한인언론은 기자단도 존재하지 않지만 설령 임시기자단을 조직한다해도 모든 언론사의 총의에 의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구성되야하는게 아닌지,
-4개 특정언론사를 선정한 주체는 누구이며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
-풀기자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에 앞서 취재신청을 빙자해 주민등록번호를 비롯, 신원조회 등 전례없이 개인신상정보 파악을 한 배경이 무엇인지,
-신원조회는 취재를 전제한 협조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아무런 해명없이 뒤늦게 풀기자단을 선정하고 취재기자 명단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지,
-취재에서 제외된 언론사가 취재언론사에 개별적으로 기사와 사진을 요청하라는 것은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보라’는 식의 책임을 방기한 자세가 아닌지,
-이번에 선정된 일부 언론사들이 오랜 반목으로 상호 협조가 전혀 안된다는 것을 알고도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동포언론이 가장 관심을 갖고 당연히 모든 언론에 오픈해야할 동포간담회조차 취재를 제한한 이유가 무엇인지,
3.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는 대한민국에서 정식 등록된 언론사로서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Foreign Press Center에 통해 두명의 특파원이 취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뉴욕은 20명이 넘는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커버하는 핵심 지역이라는 점에서 뉴스로를 하나의 동포언론으로 취급하여 일방적으로 취재를 봉쇄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유감과 항의를 하는 바입니다.
4. 뉴스로는 향후 회원사로 소속된 한국기자협회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는 물론, 미디어오늘 등 관련 미디어에 이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고 뉴욕총영사관과 외교통상부, 청와대의 입장을 듣고자 합니다.
2011년 9월 20일 뉴스로 대표기자 노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