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因緣)’처럼 오묘한 단어가 없다. 뉴욕원각사의 대작 불사를 보노라면 세상은 인(因)과 연(緣)의 씨줄과 날줄로 얽혀진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이라는 인연법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뉴욕주 오렌지카운티 샐리스베리밀즈의 32만평(228에이커) 대지에 펼쳐진 원각사는 도량의 규모만으로도 미동부 최대의 불교사찰이다. 인근 풋남카운티 캐멀에 위치한 중국 사찰 장엄사(莊嚴寺) 역시 이름만큼이나 장엄하지만 원각사보다 조금 작은 225에이커의 부지를 갖추고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직계사찰인 뉴욕원각사는 지난 2010년 부처님진신사리탑과 청동석가여래좌상 건립으로 대작불사를 본격화 했다. 2011년 대웅보전 기공식을 시작으로 2015년10월 전통 대웅전 상량식이, 2017년 10월엔 무량수전 상량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는 10월 14일엔 동당(보림원) 서당(설산당)의 상량식이 동시에 이뤄지게 된다.

2011년 6월 12일 대웅전 기공식 장면
1974년 원각사 창건의 인연을 지은 법안큰스님은 1978년 퀸즈 잭슨하이츠에 법당을 마련했고, 1982년 맨해튼 17가 법당을 거쳐 1986년 현재의 부지로 이전하여 중흥의 토대를 닦았다. 법안스님은 이곳에 세계불교대학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1988년 그만 과로로 쓰러져 병상에 눕게 되었다. 이후 원각사는 2004년 정우스님(현 원각사 회주)과의 인연이 닿을때까지 오랜 세월 침체기에 있었다. 정우스님이 주지 취임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량 정비였다. 본래 퇴락한 유태계 하계수련원이었던지라 버려진 28채의 방갈로를 철거하고 곳곳에 쌓인 폐차와 타이어, 쓰레기도 치워나갔다. 정우스님이 한두 달에 한 번씩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솔선하는 모습에 불자들은 감동했고 원각사는 제2의 중흥기를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대웅전 닫집. 세밀한 조각이 예술

2015년 10월 상량식을 앞둔 대웅보전
따라서 대작불사는 정우스님이 대대적으로 도량정비에 나선 2004년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미주전법의 요람으로 삼겠다는 법안 큰스님의 원력을 정우스님은 미국속 한국전통대가람의 서원으로 계승하고 있다. 물경 1200만 달러에 달하는 원각사 대작불사는 해외 불사로는 사상 최대규모다. 원각사 대작불사는 단지 규모와 예산만으로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한국불교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난한 공정의 세월과 정교한 불교예술이 만나 미대륙에 길이 남을 국보급 사찰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100만배 기도회향으로 잘 알려진 제주 약천사 회주 혜인 큰스님은 2013년 뉴욕 원각사를 찾아 “세계적으로 이곳만큼 좋은 명당터를 만나기 어렵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제 대선사도 13대 종정 추대 직전인 2011년 도량을 둘러본 후 “참으로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불사가 마무리되면 훌륭한 대가람이 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주 최초의 한국사찰 캘리포니아 삼보사 주지를 역임한 범휴스님은 “원각사 불자들이 참으로 복이 많은 것 같다. 어려운 이민생활속에서 부처님 품을 떠나지 않은, 희유하고 귀하신 여러분들에게 감히 찬탄의 말씀을 드린다”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각사의 양일스님은 최근 원각사 초청 설법에서 당나라 고승 덕산스님의 금강경 일화를 전하며 “여러분이라면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어디에 점(點心)을 찍을텐가? 원각사가 대작불사를 하고 있으니 불사에 점 하나 딱 찍으면 되는거다. 원각사에 올때마다 나는 너무 기쁘다. 천하 명당이기 때문이다. 이런 절을 짓고 있는 자부심을 가져 달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원각사 전통 대웅 전 뒤편엔 예사롭지 않은 돌무덤 흔적이 있다. 오래전 이곳엔 원주민들의 기도터가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원각사는 2013년 백중기도 기간중 미대륙에서 희생된 원주민들의 천도재를 지내기도 했다. 보통사람의 안목에도 원각사는 비경(祕境)을 자랑한다. 대웅전 왼편엔 그림같은 호수가 펼쳐지고 오른편엔 좌대 포함 9m 높이의 청동석가여래좌상이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면엔 슈네멍크 산자락이 아늑하게 들어온다. 기막힌 풍치속에 조성되는 전통대가람은 가을단풍이 한창일 때 그 아름다움을 필설(筆舌)로 다하기 어렵다.

대웅전 법당들을 짓기 위해 세계 최고급 캐나다 밴쿠버산 전나무와 더글라스포 나무들이 무려 트럭 40대에 실려 왔다. 최고 수령 850년에 달하는 나무들로 사찰 건축물을 조성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조희환 대목장의 계보를 잇는 이광복 도편수(都邊首)는 “보통 이런 목재들은 최고급 가구로 쓰여진다. 밴쿠버에서 처음 목재들을 보고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출 지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지 지광스님도 “록키산에 가면 아로마세라피 효과가 있는 향기좋은 나무들이 있는데 마침 우리가 왔을때 프레이저 강물에 담궈놓은 최고급 목재들이 있었다”며 “옛말에 주목(朱木)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했는데 원각사 대작불사 원목들이야말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의 인연을 짓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지 지광 스님과 이광복 도편수
목재의 75%는 전남 나주로 운송돼 이광복 도편수와 김영중 부편수 이재복 대목 등 십수명이 1년반 동안 서까래와 포재(기와밑에 들어가는 나무) 등 15만재의 치목(목재다듬기) 작업을 하고 다시 미국에 실어왔다. 원각사 대작불사는 축조 방식에서도 미국 건축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는 방식이 도입됐다. 84평 규모의 대웅전을 비롯한, 무량수전(65평), 동당, 서당(이상 72평) 등 건축물 모두 오롯이 고려시대 전통 건축양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기둥만 18개, 서까래가 총 509개가 소요되는 대웅전을 못도 쓰지 않고 세운다는 얘기에 건축허가를 맡은 뉴욕주 오렌지카운티 정부는“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결국 미국 기준에 맞춘 수십장의 설계도를 제출하고 1천년이 넘는 한국의 전통 건축물을 예로 드는 등 끈질긴 설득 작업끝에 최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대웅전은 내부 공간에 일체의 기둥이 없는 세계 최대 법당이라는 진기록을 세울 참이다. 국내에 더 큰 법당들이 있지만 중간에 여러개 기둥으로 무게를 분산하거나 시멘트 기둥으로 천정을 떠받들기 때문이다.2만여개 기와가 누르는 수백톤의 하중(荷重)을 배흘림양식의 기둥과 서까래, 보의 정교한 맞춤으로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원각사 대웅전이 미국인들에게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15년 10월 대웅보전 상량식
풍경(風磬) 소리 그윽한 대웅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한 나무향기가 코끝을 감돈다. 공간 전체가 확 터져 실제 크기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 내부 양식도 지극정성을 들였다. 대웅전의 불단과 기단은 ‘불보사찰’ 통도사를, 문짝은 ‘승보사찰’ 송광사의 양식을 따르는 등 한국의 3대 사찰의 전통 예술을 만날 수 있다. 높이가 3m나 되는 대형 문짝의 창호살이 서로 다른 문양으로 만들어져 각각이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 5월 완성된 대웅전 닫집(불단 위의 목조구조물)은 한국 최고의 전문가 5명이 두달여간 열과 성을 다해 정교한 조각예술을 선보여 황홀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웅전과 무량수전에 이어 동당, 서당의 기와공사가 연내 마무리되면 원각사의 가장 큰 건축물들은 사실상 완성을 보게 된다. 남은 일들은 도량의 초입에 세워질 일주문과 천왕문, 삼성각,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외호할 당우(堂宇) 적멸보궁, 종각이지만 전작에 비해 큰 공사의 시름은 덜 전망이다. 앞으로 문화센터, 경내 도로와 주차장, 조경 등의 후속 작업까지 이어지면 원각사 대작불사는 2004년 정우 회주스님이 서원을 세운 이래 꼭 20년만인 2023년경 대미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대웅보전 상단의 닫집은 섬세함과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021년 봄에는 한국에서 주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상이 이운될 예정이다
만추지절의 절정인 오는 10월 14일, 원각사에선 동당, 서당 동시 상량식으로 또한번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이 펼쳐질 모양이다. 정우 회주스님이 지난 2010년 9월 청동석가여래좌상 점안식에서 행한 설법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부처님께서 2600년전에 계셨던 영축산처럼 이렇게 풍요로운 도량에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하게 돼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후 많은 중생이 깨달음을 얻었듯이 원각사를 창건하신 법안 큰스님의 원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은 복덕과 지혜의 공덕이며 우리 모두가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터뷰>
대작불사 현장지휘 이광복 도편수
“한국전통 사찰을 미국의 중심 뉴욕에 세우게 되어 무한한 자긍심을 느낍니다.”
뉴욕원각사 대작불사 현장의 총지휘자는 이광복 도편수(59)다. 그는 한국 고건축의 양대 계보인 조희환 대목장(작고)의후계자다. 신응수 대목장이 전통한옥의 대가라면 조희환 대목장은 전통사찰의 대가로 꼽힌다. 전남 목포출신인 이광복 도편수는 솜씨좋은 목수였던 선친(이용운)으로부터 대물림을 했다. 초등학교 졸업할때부터 나무를 다루는 솜씨가 워낙 좋았던 그는 목포공고 건축과에 진학했고 전국대회 기능장을 수상할 만큼 재주가 출중했다. 77년부터 건축과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현장 목수는 다소 늦게 시작했다. 그가 조희환 대목장과 사제지간으로 운명의 만남을 한 것은 99년 2월이었다. 조희환 대목장은 스승인 이광규 선생으로부터 사찰을 짓는 일을 배웠고 송광사 대웅전 공사를 할 때 지금 원각사 대작 불사 도감을 맡은 현고 큰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이광복 도편수는 낙산사 화재 복원공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은평진관사의 10개동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의 해체 수리작업도 그의 손을 거쳤다. 석촌호수에 자리한 불광사 대웅전 설계는 현대건축물 위에 전통한옥을 얹은 초유의 사찰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설악산 봉정암의 적멸보궁도 건립, 전통사찰에 관해선 최고의 대목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중국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의 워싱턴 DC의 한국정원을 조성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뉴욕원각사 대작불사는 ‘대목 인생’의 결정판으로 평가할만 하다. 이번 불사엔 그의 둘째 형 이재복 대목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더위는 수그러들었지만 동당과 서당 상량식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그와 대목들은 굵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광복 도편수(오른쪽)와 대목수들
이광복 도편수는 “상량식을 마치면 큰 작업들은 얼추 마무리된다. 대웅전은 난간공사 석공사 등이 남아 목수들이 특별히 할 건 없지만 도편수로서 관여는 해야 한다. 무량수전은 문틀 작업을 해야 하고 동당 서당은 겨울이 오기전 기와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전통사찰을 짓는 어려움에 대해 “언어와 문화, 관행, 법률상 차이로 힘든 건 이루 말할수 없다. 지금도 수업료를 치르고 있다. 한국에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로 속을 많이 끓였다”고 털어놓았다. 목재만 해도 캐나다에서 한국에 실어와 치목작업을 한 후 미국에 보낼때 검역 세관 과정에서 발목이 잡혀 부산항에서 두달간 오도가도 못하는 등 적잖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한국의 전통절집을 미국에서 짓다보니까 생기는 법적 규제, 사고의 충돌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서양 엔지니어들이 동양 전통구조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미국 법에 따라야 하니 우리것만 고집할 수도 없고, 미국 장비가 우리 스타일에 맞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우리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미국인들을 부단히 이해시키고 그것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시련을 겪은만큼 쑥쑥 올라가는 법당에 대한 감회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광복 도편수는 “한국의 전통건물을 세계의 수도 뉴욕에 그대로 심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준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힘주어 말했다.
* 이 글은 미주현대불교 2018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9년 4월 대웅보전 앞 동당 서당의 기와불사가 마무리 된 모습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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