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에 못내려 인도에 딱붙여’
80년대 초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 시내 대로에 나가면 버스 정류장 부근에 세로로 쓰인 입간판(立看板)이 노상 세워져 있었습니다. 40대 이상인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를.
젊으신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지요. 이 간판은 경찰이 대중교통인 버스의 운전자와 승객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즉 승객들은 차도(車道)에 내리면 안된다는 뜻이고 운전자는 인도(人道)에 딱 붙여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걸보고 도대체 저렇게 싸가지(?)없는 말을 쓴 장본인(張本人)이 누구일까,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광화문과 숭례문 대로에서 반말짓거리로 시민에게 명령하는 것이 불과 30년도 안된 일입니다.
‘차도에 내리지 마세요, 인도에 딱 붙이세요’하면 어디가 덧나나요? 글자수가 길어서 문제라면 ‘차도에 못내림 인도에 딱붙임’하면 됩니다. 말이란게 ‘어’다르고 ‘아’다르다고 했는데 국민을 얼마나 ‘졸(卒)’로 봤으면 만인이 주시하는 공공장소에 반말 명령판을 버젓이 내놓았을까요. 그 입간판을 못찍어둔게 안타깝습니다.
▲ 당시 관련내용을 다룬 동아일보 칼럼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악착(齷齪)을 떨던 시절이래 양같은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많은 구호와 명령어속에 시달렸습니다. 각종 슬로건과 캠페인을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줄줄 꿰어지니 말입니다.
▲ 1965년 음담패설 책자 화형식을 하는 장면
전국의 수많은 육교마다 구호들을 휘갈긴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은 덕에 육교의 용도가 헷갈릴 정도였지요. 8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반말 교통계도판은 사라졌지만 국민의 불편따위는 여전히 ‘졸’로 보는 관가의 미개한 인식은 바뀔줄을 몰랐습니다.
86년 5월 어느날 신문을 읽다가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정치면 낙수(落首) 기사였는데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과천 정부청사에서 세종로로 이동을 한 모양입니다. 당시 국무총리가 대처 수상한테 이렇게 생색을 냈습니다.
“(총리)각하의 빠른 이동을 위해 교통통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과천부터 세종로에 올 때까지 적신호에 한번도 걸리지 않도록 논스톱으로 통과시켰다는 뜻입니다. ‘당신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헤헤거린 한국의 총리에게 과연 대처 수상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답은 맨 아래 넣겠습니다.
▲ 대처수상 방한을 보도한 매일경제 1면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국가적 코미디의 압권은 보신탕(補身湯)의 강제 개명과 뒷골목 추방사건입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한 당시 정부는 ‘국제동물복지기금’이라는 동물보호단체가 보신탕을 먹는 한국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자 보신탕 판매를 금하고 이들 식당들을 대로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옮기도록 강제했습니다. 보신탕이란 용어도 금기시됐지요. 사철탕 보양탕 자양탕 등의 이름은 그래서 생겨났습니다.
기실 보신탕도 개고기를 된장국에 말아먹는다고 해서 불린 ‘개장국’을 이승만 정권 때 외국인에게 혐오스럽게 보인다며 바꾼 것이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차라리 ‘눈가리고 아웅탕’이라고 했다면 재치있다는 칭찬이라도 받으련만 여름 한철 보신탕을 사시사철 먹어대는 사철탕으로 바꾼 것은 전국의 견공(犬公)들에게 도리어 불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철탕이 눈치보는 정권에 대한 야유라는데 생각이 미치니 문득 60년대 창단된 극단 ‘에저또’의 비화(秘話)가 떠오릅니다. 마치 불어를 연상시키는 에저또는 우리 말의 격조사 “에..저..또..”, 말할 때 잠깐 쉬어가는 군말인데요. 연극을 할때 깊이 생각하고 하라는 뜻으로 설명되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의미였고 진짜 속뜻은 예술도 총칼로 검열하는 당시 독재정권에 대한 통렬한 풍자(諷刺)요, 신랄(辛辣)한 야유였습니다. ‘에이..저~또’ 발음에서 힌트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대통령을 비난했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던 시절에서 세상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87년 이른바 6·29 선언을 한 날 서울의 한 찻집이 ‘오늘은 좋은 날’이라며 찻값을 무료로 한다는 소식이 도하 언론에 크게 실렸고 ‘나 이사람’ 노태우 정부는 ‘대통령을 유머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윤허(?)하는 일도 생겼으니까요.
그 시절 홍수 등 재해라도 나면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군관민(軍官民)이 합심하여...’ 라는 표현도 ‘민관군’이라고 순서를 바꿔주는 배려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관이 민을 제대로 대접해 준 것은 아니지만.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고 민주주의도 놀라운 발전을 한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초대형 국제이벤트라도 열리면 관가사람들의 기억회로장치는 과거로 회귀하는지 ‘국가적 대사’ 운운하며 남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버릇을 영 버리지 못합니다.
G20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서울 일원엔 을호 비상령이 떨어지고 검문검색과 교통통제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6일부터 G20 정상회의가 끝나는 날까지는 갑호비상령으로 격상돼 그야말로 준전시에 가까운 긴장감속에 시민들의 불편도 가중(加重)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 32개국 정상이 모이는 회의인만큼 혹시라도 있을 테러모의를 분쇄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고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들입니다.
며칠전 서울의 서대문구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운영을 G20정상회의 기간동안 일시 중단하고, 주민에게 쓰레기를 내놓지 말 것을 당부했다지요. 구청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서울 G20행사기간 중 음식물쓰레기 배출을 자제해주십시오’라는 홍보포스터도 곳곳에 붙였다가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전량 수거(收去)했습니다.
구청측은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에서 악취가 풍겨 각국 정상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기때문에 이런 해괴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쓰레기를 내놓지 말라니…. 그럼 G20 정상회의 기간 동안 밥도 해먹지 말거나 쓰레기를 안고 살라는 말인가요? 차라리 구청사람들이 소비도 줄이고 다이어트도 할겸 단식캠페인을 벌이는게 낫지 않을까요? 혹 누가 압니까. 따라할지.
각국 정상들이 쓰레기 냄새 맡으러 코를 킁킁 댈 일도 아니지만 '시민'이라는 이름의 '졸개'들은 영원토록 쓰레기에 코박고 살아도 된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각국 정상들의 경호안전문제를 이유로 서울 광화문 일대 집회도 금지됐고 G20 정상회의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예정한 학술행사를 대학 등 해당 기관들이 뒤늦게 불허 통보를 해서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인 집회 결사(集會結社)의 자유를 봉쇄한 것입니다.
요는 G20정상회의 기간동안 국민들이 생활의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하고 각국 정상들과 취재진을 향해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해요.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어요’하며 웃어주라는 것이겠지요.
‘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과공비례(過恭非禮)의 옛 말도 있습니다. 감춘다고 모를 그들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소수의 반대 목소리도 가감없이 들려주는 것이야말로 G20회의를 개최할만한 선진국이 되었다는 방증(傍證)입니다.
앞에선 협조해달라며 짐짓 머리를 수그리지만 뒤에선 육모방망이를 거칠게 흔들어댈 바에야 ‘차도에 못내려, 인도에 딱붙여’하는 독재정권이 차라리 솔직한 것 같습니다.
아참, 대처 수상이 뭐라고 했는지 답을 드리겠습니다. 한국 총리의 생색에 고맙다는 말 대신 걱정스런 낯빛으로 “그렇게 (교통통제를) 하면 시민들어 너무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했답니다. 한국 총리는 생색을 내려했는데 정작 대처 수상은 ‘나 때문에 한국시민들이 불편했겠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가졌던게지요. 이게 선진국과 후진국의 사고차이 아니겠습니까.
사족(蛇足): 진짜 코미디는 그것을 보도한 신문이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기사화하지 않았을테니까요. 혹시 그걸 은유적으로 풍자한게 아니냐구요? 당시 ‘전(全)비어천가’를 목놓아 부르짖던 신문들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