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넘의 종편이 뭐길래,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고 피아(彼我)가 대립하는 일대 갈등의 혼전(混戰)이 우리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작가 공지영이 가수 인순이와 피겨퀸 김연아를 개념없다고 비난하는 바람에 인터넷공간이 한바탕 와글와글댑니다. 내용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간단히 설명 드리면 공지영이 지난 1일 한 트위터리안(트위터 사용자)이 “종편 개국 축하쇼에 인순이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고 한 글에 대한 답글로 “인순이님 걍 개념 없는 거죠 모”라고 올렸습니다.
또 김연아가 또다른 종편인 TV조선에 출연한 것에 대해서도 “연아 ㅠㅠㅠ 아줌마가 너 참 예뻐했는데 네가 성년이니 네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다. 연아 근데 안녕!”이라며 김연아의 TV조선 출연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여기서 종편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종편은 종합편성(綜合編成)채널의 약칭입니다. 케이블 TV 채널로 방송되지만 한 가지 장르만을 가지고 방송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케이블 채널과 달리, 뉴스·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할 수 있습니다.
결국 채널의 성격만 넣고 보면 지상파 방송이 한꺼번에 여러개 생긴 셈이니 향후 대한민국의 방송환경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수도 있는 엄청난 계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종편이 출범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지난 2009년 7월 국회에서 통과된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의해 신문의 방송사 겸업이 가능해지고, 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허용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데 따릅니다.
종편 허용은 메이저 종이신문들에겐 하나의 복음(福音)과도 같은 낭보(朗報)였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안그래도 막강하지만 방송이란 매체만 소유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휘두를 것 같은데 말이죠.
지난해 이맘때 종합편성채널의 신청서 접수가 시작되자 빅3신문 조중동과 경제지의 태두 매경이 기다렸다는듯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들 모두 예상(?)대로 종편진출의 꿈을 이루었지요. 보수정권하에서 보수언론이 막강한 미디어수단을 얻게 된 것은 진보와 보수가 적절한 견제와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하는 민주국가에선 충분히 우려할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의 연방 대법관을 보면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그리고 소수계까지 나름 합리적인 구성비를 갖지 않습니까? 종편도 허용하려면 그렇게 해야죠. 인위적으로 보수정권의 우군을 늘리려는 것은 충분히 냄새 나는 꼼수였습니다.
아무튼 종편 해설은 이쯤하구요. ^^ 다시 공지영-인순이-김연아로 돌아갑니다. 공지영은 요즘 팟캐스트 방송으로 진보진영의 막강기수로 자리매김한 나꼼수의 서포터스를 자임한지라 종편을 혐오스럽게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판국에 하필 국민가수, 국민요정의 대접을 받는 인순이와 김연아가 종편 개국을 축하하는 멘트와 몸짓을 했으니 열이 받았겠지요.
아다시피 공지영은 여러편의 베스트셀러로 주목받는 소설가이기도 한데다 얼마전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로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아 매스컴이 주목하는 뉴스메이커입니다. 요즘 어지간한 한국국민들의 일상사가 된 트위터를 우리 미디어들이 그냥 놓칠리 없습니다. 트위터란 그저 짧은 단문메시지에 불과하지만 그들을 따라다니는 트위터리안의 리트윗과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매체들로 인해 어마어마한 폭발력도 가집니다.
뉴스메이커 공지영이 그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뉴스메이커들을 ‘개념없다’, ‘근데 안녕’하고 조소(嘲笑)를 날렸으니 네티즌이 난리가 난것은 당연합니다. 한마디로 공지영은 제대로 뇌관(雷管)을 건드린겁니다.
저는 이 소동(?)을 보면서 막강한 힘을 가진 스타 트위터리안과 네티즌의 군중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매체들, 모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지영의 경우, 뭐 사실 그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슬쩍 까댄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팔로워들과 오늘도 센세이셔널한 사냥감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온오프라인 미디어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공지영이 이로 인한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습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호위(護衛)하는 국민가수, 국민요정도 ‘잘못한건 잘못한거야’ 라고 소신있게 지적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종편에 대해선 심각한 우려는 하고 있습니다만, 공작가가 이번 일은 좀 오바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가수의 입장, 스포츠스타의 입장을 너무 도외시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그들을 개념없고, “이젠 안녕”하며 폄하(貶下)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설사 종편에 대한 인순이와 김연아의 생각이 자신과 정반대라 하더라도 나름 예의를 갖추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태도가 좋았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단문메시지라는 트위터의 한계로 인해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면 언급한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물며 ‘개념없네’, ‘너 한때 아꼈는데 이젠 잘가라’ 한다면 당사자가 어떤 느낌을 갖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진보논객 진중권의 쓴소리는 눈여겨 볼만 합니다. 그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소신을 가지고 종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개념’에 찬 행동일 수 있으나 그런 소신이 없거나 또는 그와는 다른 소신을 갖고 있다 해서 ‘개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다. 아마”라고 슬쩍 비꼬았습니다.
진중권은 “대중과 뜨겁게 같이 가되 동시에 대중과 차갑게 거리를 취해야 한다”며 “대중'이란 게 원래 실체가 불분명한 거다. 공 작가가 거기서 살짝 미스한 듯”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공지영은 “충고 고마운데 전 그냥 제 맘대로 할 거다. 대중이 날 먹여주지만 얼마나 무서운지도 한다. 그렇다고 거리 적당 못한다. 실체도 불분명한데 거리는 어떻게? 아무튼 고맙고 심려 끼쳐 미안하다”고 대꾸했습니다.
요는 ‘내 소신대로 말하고 살겠다’라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인순이와 김연아는 작가 공지영을 무척 아끼는 독자였을수도 있다는 겁니다. 만약 그들이 이렇게 리트윗을 날리면 어떨까요.
“공지영님 걍 개념 없는 거죠 모” (인순이)
“공지영 아줌마 ㅠㅠㅠ 연아가 아줌마 참 예뻐했는데 아줌마가 중년이니 아줌마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아요. 공지영 아줌마 근데 안녕!” (김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