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호텔에 왔습니다.
평양(平壤)의 랜드마크 고려호텔이냐구요?
코로나19로 2년넘게 하늘길이 막혀있는데 평양에 갔냐구요?
놀라셨나요?
물론 아닙니다. 아쉽게도 그 고려호텔이 아닙니다.
제가 온 것은 온천으로 유명한 백암온천(白巖溫泉) 지구에 있는 고려호텔입니다. 하지만 이곳도 제게는 특별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 많은 추억이 서린 곳에 이십수년만에 온 것이니까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모국 방문을 많이 했습니다. 1년에 한두번씩 올때마다 두드러지게 느끼는 것은 모국의 모습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겁니다. 특히 도시재개발이나 수도권 외곽의 신도시들이 새로 들어서는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사라져가는 옛 모습때문이죠.
어린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과 오래 살았던 동네도 10년전, 20년전과 비교하면 너무 많이 달라져서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낯선 풍광에 두리번대다 옛 추억을 찾을 길이 없으니 못내 서운할 때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 제가 사는 뉴욕의 동네는 도무지 변하지 않습니다. 하이라이즈 빌딩들이 세워지는 도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미국 마을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50년, 60년 산 노인들도 어린 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는걸 보면 미국이야말로 추억찾기엔 제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백암온천은 이십수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구불구불 구주령(九株領)을 넘어 신선계곡 이정표가 반갑게 나오고 백암온천지구도 고려호텔과 주변 식당가 상가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가슴을 뜨겁게 자극한 것은 바로 고려호텔 간판이었습니다. 지난 2~3년 사이에 방북을 여러 차례 했을 때 늘 찾았던 평양의 고려호텔이 떠올랐으니까요. 백암의 고려호텔과 평양의 고려호텔은 규모와 성격이 너무나 다르지만 ‘고려호텔’이라는 이름 자체가 제겐 또하나의 특별한 감회를 안겨주었습니다.
2019년 12월 3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리는 새해 축하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중국 북경에 날아갔지만 비자발급이 하루 늦어졌고 결국 항공기 연결시간이 안맞아 5차 방북을 새해로 미뤘더랬습니다.
2020년 설날인 1월 25일에 맞춰 다시 방북을 준비했지만 바로 전날인 1월 24일부터 평양으로 들어가는 모든 하늘길, 철길, 육로가 전면 봉쇄(封鎖)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습니다. 당시만해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가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2018년 11월 첫 방북을 했을 때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는 평양시민의 말에 반신반의(半信半疑) 했습니다. 3개월만에 두 번째 방북을 했습니다. 그런데 평양은 제 예상을 한참 뛰어넘을만큼 바뀐게 많았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북을 적어도 계절에 한번은 가서 보고 바깥세상에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면 기자로서 직무유기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이 1년사이에 네차례나 방북하게 된 이유입니다.
만일 코로나로 인한 봉쇄가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다면 2년간 적어도 여덟 번은 더 방북 취재를 했을 것입니다. 3개월만에 가도 달라지는 것이 많은데 지금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요. 정말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번 겨울엔 백암의 고려호텔에서 또다른 추억찾기를 했지만 올해는 꼭 방북길이 열려서 평양의 고려호텔에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양 고려호텔 로비에서
그래서 고려호텔 1층 식당에서 평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비빔랭면(회랭면)과 불고기도 먹고 밤시간엔 꼭대기 회전전망대에 올라가 밤새 거대한 네온사인쇼를 펼치는 105층 류경호텔과 평양의 야경도 감상하고 싶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어나는 개성 남포 길도 달리고, 새롭게 전변한 백두산 삼지연도 올라가고,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도 찾아가고, ‘젊어지라 복받은 대지여’ 아로새긴 세포등판의 푸르른 초원에서 마음껏 뛰어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새해는 오랜 세월 이산의 고통에 살아가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고 양심수 선생님들과 평양시민 김련희씨, 납치되어 온 북식당종업원 처녀들이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고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이 열려 남녁 시민들과 기업인들이 자유로이 오가는 흑호랑이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개성 박연폭포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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