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2차강연을 마치고

6.15공동위 제주본부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디딤돌 사업’으로 마련한 방북강연회를 잘 마쳤습니다. 지난달 29일 1강에 이어 마지막 4강에 참여했으니 처음과 끝을 장식(裝飾)한 셈입니다. 두 번 다 코비드-19 시대에 흔치 않은 대면 강연이었기에 더욱 뜻 깊었습니다. 덕분에 1년에 한번 가기 힘든 제주를 한달사이에 두 번이나 가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6.16제주본부 김남훈 공동대표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강연은 ‘미리 가보는 북녘 역사유적과 문화예술’을 주제로 했는데요. 1~4차 방북취재과정에서 방문한 여러 역사유적지와 명승지, 문화예술 창작기지, 대중문화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후 국경봉쇄로 2년 가까이 방북을 하지 못했는데요. 그래선지 요즈막엔 취재한 자료들을 볼때마다 가슴 한켠에서 그리움 같은 감정이 피어오르는 느낌입니다. 1년 사이에 4차례 방북할 당시만 해도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로왔는데 기약없는 기다림속에 놓여 있다보니 과거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오랜 추억(追憶)의 한 장면처럼 여겨집니다.
방북할때마다 평양이 놀랄만큼 바뀌었는데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지 기자로서 너무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강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북을 자주 가게 된 계기는 2018년 11월 첫 방북당시 안내 ‘김 선생’이 “요즘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는 말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가을 제가 소속된 신문사의 뉴욕 지사 책임자로 발령이 나면서 팔자에 없던 재미동포가 된 이후 한가지 흥미로운게 있었습니다. 서울에 올 때마다 달라지는 것들을 피부로 느낀 것입니다. 2006년부터 봄, 가을로 서울에 왔으니 6개월마다 온 셈인데 없던 것이 생겨나거나 새로운 유행어와 문화가 달라지는게 보였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서울은 6개월마다 달라지더라”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평양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니, 정말일까? 반신반의(半信半疑)하게 되더군요. 그것이 기자로서의 취재욕구에 불을 지폈습니다. 처음엔 한번도 가지 못한 북녘 땅, 개인적으로는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기간중 성사된 남북통일축구와 90년대 후반 남북통일농구가 평양에서 열릴 때 가지 못한 수십년래의 안타까움을 풀수 있어 좋았지만 솔직히 자주 갈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평양이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는데 가만 있을 수는 없었지요. 방북을 마치자마자 다시 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새해 분위기도 취재할 겸 1월에라도 갈까 하다가 너무 촉박한 것 같아 3월말로 넉넉하게 잡았습니다.
그래도 석달여만에 재방북이니 그사이 평양이 바뀌어봐야 얼마나 바뀌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봄철 북녘의 풍경과 주민들의 일상과 관련한 모습들을 주로 취재하려는 마음을 먹고 경유지 북경(北京)에서 고려항공 비행기를 탔습니다.
1차방북때 경유지인 심양(瀋陽)에서 탈때는 샌드위치로 식사가 나왔는데 북경에서 갈때는 햄버거가 기내식으로 나오더군요. 한시간반 비행 끝에 도착한 평양. 두 번째 방문이지만 나홀로 방문이라 다소의 긴장감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국심사대의 여성직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에 그런 느낌은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1차 방북때 다른 팀 담당이었지만 몇 번 식사를 함께 한 덕분에 안면을 튼 40대 리선생이 저를 맞았습니다. 아는 얼굴이 나오니 더 마음이 푸근해 지더군요. 이른 봄 호텔로 가는 길. 평일 늦은 오후였는데 외곽도로에도 비교적 많은 시민들이 바쁜 걸음으로 오가는 모습입니다.
두 선대지도자의 초상을 그린 거대한 벽화가 보입니다. 하단엔 ‘불패의 일심단결 천만년 영원하리’라는 문구가 써 있습니다. ‘일심’과 ‘단결’은 세계 최대의 석탑인 주체사상탑 꼭대기 전망대에서 동평양 시가를 바라볼 때도 두 개의 건물 옥상에도 보였습니다. ‘한마음으로 뭉친다’는 구호는 지난 70여년간 북녘 사람들의 중심적인 슬로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무심히 스쳐가는 거리를 보는데 한가지 달라진 모습이 보였습니다. 흔하게 보았던 여성교통보안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안내 리선생이 놀라운 말을 합니다. 여성교통보안원들이 대부분 다른 직업으로 전환돼 평양 시내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겁니다. 말인즉 평양에 교통체증이 심화되고 격무가 일반화되면서 여성들을 남성들로 교체하고 있다는게 아닌가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택시들의 20%를 지방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1차방북 때 출퇴근 시간 일부 구간에서 교통체증(交通滯症)을 보고 놀랐는데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평양시내의 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양의 택시들을 줄이고 택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지방에 배차를 했다고 하네요.
또 자전거는 여전히 많지만 지난 몇 달사이에 전기자전거가 급속히 늘어난 모습입니다. 대략 다섯대중 한 대꼴로 전기자전거가 운행되고 있더군요.
그런데 안내 리선생도 그렇고 운전수도 그렇고 손목시계가 특별해 보였습니다. 한쪽 귀엔 이어폰 같은 것도 끼고 있구요. 세상에 스마트워치였습니다. 알고보니 평양에서 스마트워치가 대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저렴한 것은 50달러 정도 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귀에 부착한 블루투스 이어폰인데 이름하여 귀전화 였습니다. 앞서 1차방북에서 평양시민들의 필수품이 손전화(핸드폰)라는 것을 확인했는데 2차방북에선 ‘스마트워치 귀전화 열풍’이 불고 있는 셈입니다.
이 모두가 3개월여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다시 찾은 평양은 계절이 한번 바뀌었을뿐인데 없던 건물이 생겨난 것은 기본이요, 제도가 달라지고, 정책이 달라지고, 새로운 것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양 주민들이 “요즘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는 말을 할 밖에요.
만약 제가 3개월여만에 다시 북녘을 찾지 않았다면 지금도 1차 방북 이야기를 가장 최근의 북녘 소식이라며 떠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2차 방북에서 이렇게 많은 변화들을 목격하고나니 최소한 계절에 한번 북녘에 가지 않으면 이건 기자로서 직무유기(職務遺棄)라는 각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북녘을 기자의 눈으로 제대로 보고 취재하여 바깥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기자로서의 의무감에 그해 9월에도 가고 10월에도 가게 된 것입니다.
만약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적어도 6번은 북에 더 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많은 지역을 방문하고 주민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오늘의 북을 잘 전달했을텐데 안타까움이 몰려옵니다.
오늘도 저는 두루미가 상징인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날아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終熄) 되고 북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는 날 누구보다 먼저 날아가서 북녘 동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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