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스물일곱명의 천사들이 서 있었습니다. 날개를 단 작은 천사들.

잿빛 하늘에선 하루종일 음울한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사람들도 울었습니다.
16일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 뉴타운은 온전히 슬픔의 타운이었습니다. 84번 도로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1마일의 지방도로는 어린 넋들을 추모(追慕)하는 외부인들의 차량으로 종일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경적(警笛)을 울리거나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날 저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있었지만 삼엄한 경계를 느끼기엔 납덩이같은 비통함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집니다. 마치 장례(葬禮)행렬처럼 천천히 앞차를 따라는 차량들. 다리 난간에 매단 커다란 현수막과 풍선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는 샌디훅 초등학교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붉은색 천에 쓰여진 ‘뉴타운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처치힐 로드로 접어들면 경사진 언덕 한켠에서 스물일곱명의 천사들이 나타납니다. 애담 란자(20)의 광기어린 난사(亂射)에 희생된 스무명의 어린 넋과 일곱명의 영혼은 노란색 날개를 단 천사가 되어 방문객의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까만 머리, 빨간 머리, 오렌지색, 금발의 형상을 한 천사들. 몇몇 천사들의 앞에는 누군가의 인형들이 놓여 있습니다.
상가들이 이어지는 마을 초입엔 산타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희생자 가족을 돕기 위한 모금함을 놓고 서 있습니다. ‘샌디 훅을 위한 산타들’이었지요.

각 방송국의 중계차와 취재차량의 주차 행렬속에 추모객들이 처음 다가가는 곳은 처치힐 로드와 워싱턴 애버뉴가 만나는 교차점입니다.
평소 타운 행사를 알리는 게시판 역할을 하는 이곳에 대형 9.11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명예의 깃발’이 내걸렸고 성조기 중앙엔 스물일곱명의 희생자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마치 제단(祭壇)처럼 오색의 작은 촛불들과 인형들과 장난감 꽃다발, 추모의 리본들이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너무도 좋아했을 곰 인형과 강아지 인형, 장난감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애처롭게 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어린 넋들을 위로하는 추모객들. 더러는 무릎을 꿇고 초에 불을 붙이며 하염없이 흐느끼고 또 더러는 부둥켜안은채 서로를 위로합니다. 대부분 백인이었지만 히스패닉과 흑인들, 아시안 등 애도의 물결엔 인종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속에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왔다는 구지은 씨는 “뉴욕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너무도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너무 놀랐어요. 쉬는 날이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오게 됐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그런 비극이 일어난게 믿어지지 않네요. 정말 가슴이 아파요” 하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샌디 훅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워싱턴 애버뉴 앞 다리엔 기증받은 인형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추도객들이 희생자를 애도(哀悼)하며 바치도록 배려하는 적십자사 사람들이더군요.
마을 중심에 있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는 ‘추모의 트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추모객들을 맞은지 불과 이틀도 안되었지만 사람들이 갖다놓은 수많은 꽃다발과 인형, 장난감, 카드, 흰 풍선 등이 주변을 뒤덮고 있습니다.

엄마곁에 있는 아이들처럼 두 개의 작은 트리는 천사의 옷과 풍선으로 장식된 채 앙증맞은 인형들과 산타 장식으로 수놓아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였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밀려 들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적막감에 싸여 있습니다. 경건함과 애끓는 추모의 분위기에 그 많은 취재진도 감히 말을 붙이지 못하더군요. 그저 한 두명 조심스레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아지와 코끼리 인형을 각각 안은 채 한 방송사와 인터뷰한 어린 남매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숨졌다는게 너무 슬퍼요. 하늘에서 외롭지 않도록 인형을 주고 싶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샌디 훅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도로 양 옆은 추도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인형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거대한 추모의 도로로 바뀐 워싱턴 애버뉴를 사람들은 말없이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통행이 허락되지 않은 샌디 훅 초등학교 입구를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았습니다.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주듯 몇몇 마을 주민들은 정성껏 구은 쿠키와 도넛, 샌드위치 등 먹을 것을 나눠 주었습니다. 마치 품앗이를 하듯 더 이상 남이 아닌 방문객과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픔과 감사를 공유(公有)했습니다.
하늘에선 여전히 회색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photo by 노정훈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5:54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