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간 진정한 사과를 촉구했지만 역사왜곡만 밥먹듯 하는 일본에 분개(憤慨)합니다.”
이옥선(87) 할머니와 강일출(86) 할머니의 표정은 결연했습니다. 4일 뉴저지 유니온시티 리버티 플라자. 미국에 건립되는 제9호 위안부기림비 제막식에 참석한 두 할머니는 70년 전의 일본군 만행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증언하며 분노했습니다.
위안부기림비 건립에 적극 나선 유니온시티의 브라이언 스택(Brian P. Stack) 시장과 지역 정치인들, 한인사회 관계자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리버티 플라자의 위안부기림비는 미주에선 통산 아홉 번째 상징물이지만 맨해튼 빌딩숲이 보이는 뉴욕의 관문(關門)이요, 두 개의 9.11 테러 추모비가 선 뉴저지의 성지 한가운데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 영혼의 자유로운 날개짓 나비 조형물
위안부기림비는 바위의 매끄러운 앞면에 동판(銅版)을 부착(附着)했고 위엔 피해 영령(英靈)들의 자유로운 날개짓을 상징하는 나비 형상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며칠전 검은 휘장을 쳐놓았을때 나비형상은 없었는데 이날은 예고한대로 나비조형물을 기림비 뒤편에 고정시켜 세워놓았더군요.
브라이언 스택 시장과 보드오브커미셔너, 시민들 명의로 새겨진 동판 문구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2차대전 전후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로 끌려간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의 수십만 여성들과 소녀들을 추모하며..’
뉴저지 상원의원이기도 한 브라이언 스택 시장은 “피해 여성들의 역사적 사실을 듣고 난 뒤 이 일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기림비는 2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당한 고초에 대해 올바른 역사 교육이 후손들에게 이뤄지도록 하자는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특히 9.11 참사를 기리는 이 자리에 인권 회복을 바라는 위안부 기림비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유니온시티의 위안부 기림비 건립에 공헌한 김자혜 허드슨문화재단 대표는 “지난해 워싱턴 행사에서 이옥선 할머니를 뵙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2차 세계대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인권 문제임을 알게 됐다”며 “유니온시티의 많은 이들에게 피해자들의 고통을 알려주고 인권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고문은 “유니온시티측에서 인권 문제를 잘 이해하고 9.11을 잊지 말자는 추모비 옆에 세워지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다. 미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 직접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더욱이 유니온 시티는 일본의 영향력이 매우 큰 곳인데 이런 곳에 기림비가 세워졌으니 일본도 할 말이 없을거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 유니온시티 기림비는 美9호 위안부 상징물
위안부기림비는 2010년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1호가 세워진 이래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에 2호, 뉴욕주 낫소카운티 현충원에 3호, 뉴저지 버겐카운티 청사에 4호,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미주 최초의 위안부소녀상(5호)로 이어졌습니다,
또 올들어 지난 1월 낫소카운티 현충원에 뉴욕주 상하원의 위안부결의안을 기념하는 기림비 두 개(6호)가 추가 건립됐고 5월엔 버지니아 페어펙스에 8호 위안부기림비가 세워져 이번 기림비는 건립지로는 7번째, 상징물로는 9번째입니다.
약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장엔 일본기자들이 20여명이나 몰려 취재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본 기자들은 지난번 페어팩스카운티 정부의 위안부 기림 상징물 제막식때로 비슷한 숫자가 몰렸는데 최근들어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목됩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엔 뉴저지 티넥의 나비뮤지엄오브디아트에서 열리는 ‘위안부초상화가’ 스티브 카발로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저녁엔 맨해튼 링컨센터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연극 ‘Comfort(慰安)’ 공연도 개최되는 등 뉴욕과 뉴저지에서 위안부 이슈가 하루종일 주목을 받은 하루였습니다.
등장인물 전원이 미국 배우들로 이뤄진 연극 ‘위안’은 지난달 5차례에 맨해튼 미드타운 주얼 박스 시어터에서 공연된 바 있습니다. 링컨센터 공연은 8일 마지막 공연이 올려진다고 하네요.
◇ ‘피에 젖은 마네킹 충격’
이날 유니온시티의 위안부기림비 제막식 현장엔 사실 위안부기림비보다 더 사람들의 시선을 끈 충격적인 조형물(造形物)들이 있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피흘리는 소녀 마네킹 12점이었습니다. 위안부 기림비를 중심으로 리버티 플라자 곳곳에 설치된 소녀상 조형물은 유니온시티 정부가 이번 행사의 교육적 의미를 최대한 강조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들입니다.
리버티 플라자는 3개의 도로가 교차(交叉)하는 삼각지 형태의 미니공원으로 꼭지점 부분인 정면에 기림비가 세워졌고 왼쪽 도로 건너편 공간엔 2007년과 2008년 각각 조성된 911 테러 추모비가 있습니다.
성지와도 같은 추모 공원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말해주는 마네킹 조형물들이 여기저기 설치되면서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속옷차림에 눈을 가리운채 피를 흘리는 소녀, 발가벗은 허리에 쇠사슬을 감은 소녀, 온 몸에 상처가 난채 피범벅이 된 소녀…. 입이 천으로 봉해지고 두 손과 두 발까지 새끼줄에 묶인 또다른 소녀상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중년의 여성은 “일본군대가 여성들에게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몸서리를 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조형물들은 설명문과 함께 한국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만들어져 위안부 피해자들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했음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안부기림비 건립에 앞장선 브라이언 스택 시장이 “2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당한 고초에 대해 올바른 역사 교육이 후손들에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일본 군대의 극악한 인권유린(人權蹂躪)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추모 상징물로는 부족하다는 강력한 의지인 셈입니다.
◇ 눈물 흘리는 할머니들
이같은 배려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느낀 이옥선(87) 할머니와 강일출(86) 할머니는 브라이언 스택 시장의 손을 잡고 감사의 눈물을 계속 흘려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는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는데도 일본은 지금도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도살장 같은 곳에서 인권 유린을 당하며 탄압을 당했다”고 증언하며 당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주름진 얼굴을 고통스럽게 찌푸렸습니다.
강일출 할머니도 “부엌에서 밥먹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보니 중국이었고 위안소였다. 그곳에서 당한일은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눈물지으며 “우리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기림비를 세워준 유니온 시티측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할머니의 증언이 이어질 때 모두 기립해 존경을 표했고 한인학생 이수빈 양이 공식행사장에서 추도의 하프 연주를, 김보선 양은 기림비 앞에서 오보에 연주를 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또한 연극 '위안(Comfort)'에 출연한 배우 캣 레인 씨가 추모시 낭송(朗誦)을 하는 등 1시간20분간 진행된 행사는 숙연함과 감동의 물결로 가득 했습니다.
두 할머니는 한국 나눔의집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국제평화인권센터 주관으로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7일까지 LA와 위싱턴DC, 뉴욕을 방문하며 일본군대의 만행(蠻行)과 일본정부의 비양심적인 행태를 질타(叱咤)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집에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89세라고 합니다. 많은 할머니들이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보다는 좀 건강이 나으신 편이지만 두 할머니도 이제 먼 거리를 다니며 위안부 범죄를 증언하기엔 무리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 이옥선 할머니(왼쪽)와 강일출 할머니 <이상 사진 교회일보 제공>
부디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사시기를, 그리고 일본이 진정한 참회와 뼈저린 사과를 함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를 옳게 돌리는 ‘천지개벽(天地開闢)’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10:4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