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설이 끝나자마자 옆자리에 앉았던 유엔 인권담당 사무차장보는 "진정한 인권 연설이에요!(A real human right speech!)"라고 하면서 악수를 청해왔다. 의장국인 차드 대사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러 사람이 다가와 포옹과 악수를 청하였다. 여성 대사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미국 대사는 회의장을 나가면서 "안보리에서 들어본 가장 감동적인 발언이었어요(That was the most powerful statement I have ever heard in the UN Security Council. Ever)"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안보리에서 각국 외교관들에게 전하려 했던 우리의 특별한 생각과 감정이 잘 전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 연설을 내국인들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p.17>
유엔의 명연설가 오준 유엔 대사가 생애 첫 출간한 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펴낸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오픈하우스)'가 화제의 책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오준 대사는 지난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사상 처음 북한인권문제를 공식의제로 다룰 때 감동의 연설로 주목(注目)을 받은 주인공이지요.
마지막 연설자였던 그는 "한국인에게 북한주민들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고 그 분단의 고통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압니다. 겨우 수백 km 떨어진 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아무 죄 없는 형제자매인 북한주민을 위한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먼 훗날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맺었다.
그때 숙연(肅然)했던 회의장, 요르단 대사와 미국 대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날 연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오준 대사는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 800명이었던 페북친구도 5천여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메일 혹은 페북을 통해 젊은이들은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의 진로, 국가관, 인생관 등에 관한 질문을 하고 더러는 고민도 털어놓았습니다.
오준 대사는 1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짧은 이메일 몇줄로 답하기엔 많은 아쉬움이 남았어요. 그래서 지난 3월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11월에나 탈고(脫稿)를 할 수 있었네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엄격하게 말해 회고록(回顧錄)도 자서전(自敍傳)도 수필집도 아니지만 외교관으로 일생을 살면서 가졌던 삶에 관한 의문과 생각을 책을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는 크게 3가지 챕터로 돼 있습니다. 첫 챕터 '세상속의 하루'는 유엔대사로서 하루의 일과에 따라서 국제문제와 세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아침 산책 항상 마주치는 노숙인을 보며 불평등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환경에 관한 회의를 앞두고는 기후변화를 고심합니다. 유엔 광장에 있는 ‘꼬여 있는 총(knotted gun)’의 조각 동상을 보면서, 세계무역센터의 9.11 현장을 지나면서 전 세계의 폭력과 전쟁 문제를 진단하게 되지요.
두번째 챕터 '내가 살아온 세상'은 어릴 때부터 성인될 때까지 생각이 어떻게 확장 발전됐는지를 돌이켜 본 자전적인 내용입니다.
세 번째 챕터가 이 책의 제목을 잡게 된 '미카의 세상'입니다. 미카는 개미 이름입니다. 책에는 일산에 사는 준영이라는 중학생이 등장합니다. 준영이는 개미를 유리상자에 넣고 키웁니다. 개미들에게 준영은 신적인 존재입니다. 그중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하는 독특한 개미가 있습니다. 유리상자에서 나와서 일상에 만족해 살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넓은 세상)를 생각하는 상징적 존재이지요.
한승주 전 장관은 서평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미카의 세상'은 개미의 세계를 인간 세계에 비유해 세상과 삶과 신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얻고자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오준 대사는 "어렸을 때 읽었던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우리 내면에 간직한 가능성을 세상에서 찾으려 하는 젊은이들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책 제목을 '생각하는 젊음을 위하여'로 생각했다가 출판사와 협의해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로 하게 됐습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준형과 개미, 그리고 미카엔 약간의 비밀(祕密)이 있습니다. 일산에 사는 준형이는 조카이고 개미를 키운 에피소드는 오대사의 어린 시절 경험이거든요. "미카라는 이름은 개미를 거꾸로 한 '미개'를 살짝 변형한 것"이라고 웃음지었습니다.
서울대에서 불어불문학과 스탠포드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책학을 전공한 오 대사는 1978년 외교부에 들어가 뉴욕,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에서 근무하고, 다자외교조정관과 싱가포르 주재 대사를 지냈습니다. 2013년 UN대표부 대사로 부임해 UN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경제사회이사회 의장과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이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고 유엔 최초의 록밴드 '유엔록스(UN Rocks)' 드럼 주자이자 이제 젊은이의 멘토가 되는 등 오준 대사는 '팔방미인(八方美人)'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주목하게 하는 것은 유엔에서 연설을 할 때마다 드러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미려(美麗)한 문체가 돋보이는 화법입니다. 지난 7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 취임 연설에서도 그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 빗댄 또다른 '두 도시 이야기(the story of two towns)'를 통해 우리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대비시켜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 북한인권문제가 2년 연속 공식의제로 가결된 10일 안보리 회의장 연설에서는 10대에 북한을 탈출해 어머니와 동생을 구출하는데 12년을 바친 탈북여성 이현서씨가 "북한을 떠나는 것은 차라리 다른 우주를 떠나는 것과 같다..그 중력(重力)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영문 수기를 소개하며 "그녀의 중력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의 중력"이라는 또한번의 가슴 뭉클한 연설을 했습니다.
기실 오대사의 연설이 감동을 주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해답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나와 또 우리가 한번쯤 짚어봐야 할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인 화두(話頭)가 된 테러의 문제에 대한 그의 이야기처럼.
<수백만의 난민이 탈출하는 와중에 외부에서 시리아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크게 보아 완전히 상반된 두 종류의 그룹에 속한다. 즉, 테러 집단에 합류하려는 사람들과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 단체에 합류하려고 시리아로 들어간 사람들이 1만 명이 넘는다. 한편, 장기적인 전쟁 속에 신음하는 8백만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국제적십자 등 자원봉사 구호요원도 수천 명이다. 그중에 IS에 납치되거나 참수된 사람이 100명을 넘었다. 서로 반대되는 목적을 추구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생명을 걸고 자발적으로 시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인다..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