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수년간 기자노릇을 하며 무수히 많은 글들을 썼고 기자의 역할상 비판적인 논조를 섞다보니 이따금 필화(筆禍)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글로 먹고 사는 일도 쉽지 않은게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예기치 못한 항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기억나는 두가지 해프닝을 소개합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란 말이 있습니다. 일이나 말이 제대로 가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질 때 쓰는 말이죠. 이것의 유래에 대해선 몇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지금은 없어진 진주~삼랑진 기차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해해군기지가 생긴 뒤 서울로 휴가를 나왔던 해군이 귀대하는 도중에 삼랑진(밀양)에서 진해가는 기차를 타지 않고 삼천포로 가는 기차를 탔다가 귀대시간이 늦어져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정작 삼천포 주민들한테는 무척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한번도 이것을 지역비하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80년대말 어느날 기사에 쓴 이 표현 때문에 점잖은 항의를 받았습니다.
이후 다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았는데 95년 삼천포가 사천군과 통합되면서 사천시로 재탄생한 것도 지역주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니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그럴까 이해가 갔습니다. 정작 저는 아름다운 항구 삼천포를 잃은 것같아 공연히 서운하긴 했지만요.
또한번의 일은 정말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김새다’라는 말때문입니다. 밥을 할때 김이 새면 뜸이 제대로 들지 않아 밥이 설익는 것처럼 어떤 일이 틀어져 실망스러울 때 쓰는 말입니다.
역시 80년대 후반 어느날 하루는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 기사에 김샜다라고 썼던데 그런말을 쓴게 무슨 저의요?” “네? 저의라뇨?” “김샜다는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아웃시킨다는 말 아니요?” “???”
정치칼럼도 아니고 스포츠 칼럼이었지만 ‘김새다’ 라는게 대체 왜 3김과 연관이 되는지 아직도 요령부득(要領不得)입니다. 당시 그런 말이 유행이라도 했던가요? 그분 논리하면 자칫 전국의 김씨 성 가진분들한테 혼찌검이 날 일입니다.
이처럼 말과 글은 오해받기 쉬운 것이지만 특히 그것이 고유명사와 관련이 된 것이라면 다중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신문사가 한때 대한매일로 이름을 갈아치운 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서울신문은 오랜 기간 ‘정권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들어 서울신문의 이미지가 영 마뜩찮았던 모양입니다. 신문이름을 개명하는 무리수를 두었고 결국 ‘대한매일’로 문패를 바꾸게 되었지요. 서울신문의 전신(前身)이 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 Ernest Thomas Bethell)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진영인사와 함께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라는 점을 고려한 작명이었습니다.
www.ko.wikipedia.org
대한매일신보는 그시절 최대의 민족신문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쳤지만 1909년 배설이 타계하고 이듬해 한일합병이 되면서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맛보았지요. 당시 정권으로선 서울신문이 90여년전 민족지의 창간정신으로 돌아가 새출발을 시키고자하는 의도였겠지요.
그러나 정작 여론은 호의롭지 못했습니다. “대한매일? 아니 구한말 신문이라도 만드나?”라는 냉소적 분위기였으니까요. 더구나 서울신문이라는 서울의 브랜드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간과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서울이라는 제호를 쓰는 유일한 신문인데 그걸 버리다니요. 제가 다 억울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제호가 아닙니다. 내용이 달라지면 되는것이니까요. 진보성향의 독립언론으로 공정성을 인정받는 경향신문도 한때 어용(御用)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다 정부가 지분에 영향을 미치는 소유구조때문이었지요.
언론이 공평무사한 시각을 갖고 국민이 우선인 보도를 한다면 믿지 말래도 믿고 싶어집니다. 권위는 절로 확보됩니다. 질곡의 역사, 부끄러움의 과거가 있다한들 그를 반성하고 진솔한 자세로 새출발을 다짐한다면 성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1일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꿨습니다. 한국의 정당사에서 이름 바꾸는 건 여반장(如反掌)이요, 일상 다반사(茶飯事)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째 이곳 사람들은 이름만 바꾸면 쇄신이 되는걸로 착각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www.ko.wikipedia.org
한나라당이 이름을 바꾼건 당의 이미지가 추락할대로 추락했기때문입니다. 보통의 국민들과 유리된 정당이라고 ‘딴나라당’, 하는 짓이 망쪼가 들렸다고 ‘당나라당’, 의원들의 잦은 추문으로 ‘성나라당’, 근자엔 ‘디도스당’ 등등 비아냥의 별칭들이 넘치는만큼 한나라당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그게 한나라당이라는 이름 탓인가요. 그 정당안에 있는 대단하신 분들때문에 생긴 일 아닙니까. 이름을 백날 바꿔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당장 연합뉴스를 클릭하니 새누리당이 어쩌구하는 기사가 뜹니다. 과연 참신한가요? 듣보잡 생경인가요? 어떤 쪽입니까?
네티즌들은 전국의 누리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나 기업 개인이 기분나빠서 개명할 판이라고 조롱합니다. “걸레 빤다고 행주 되냐?”고 비아냥댑니다. 탈새누리당, 새무리당, 김새리당, 풍자한 당명들도 쏟아집니다. 심지어 지독한 보수인 한 언론인조차 유치원이름이냐?고 혀를 끌끌 차네요.
벌써부터 새누리 당은 얼마나 갈지, 궁금하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맛이 훅 가버리면 ‘에라 이름 바꾸지 뭐’, 하면 되는 걸까요. 오늘날 한나라당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자성(自省)과 성찰(省察)의 진정성 없이 당명을 바꾸는건 국민을 정말 새 정도의 아이큐로 인식하는 우매한 짓입니다.
새누리당이라는 소식에 왜 자꾸 가수 싸이가 떠오르는지….
“완전히 새됐어!”